[Opinion] 보잘것없는 인생little life이지만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8.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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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죽는다.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삶의 사건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를 채우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모두 다르다. 시작부터 끝이 그려지는 삶이 존재할까? 때론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보다 불행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그를 멀리서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순간이 있다. 그의 화목한 가족을 보았을 때, 그가 이룬 멋진 성과들을 보았을 때. 하지만 서둘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이서 본 그의 삶이 어떠한지 우린 아직 알지 못한다.


 

 

천 페이지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일


 

올해 6월부터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된 책이 있다. 작가 한야 야나기하라의 2016년 작품 <리틀 라이프>이다. 이번 여름 꾸준히 대중문화를 탐닉하며 지내왔지만,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한국에 잠시 놀러 오신 미국에 사는 이모 덕분이다. 이모는 미국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있던 이 책의 섬세한 인물 묘사를 한국어로 감상하고 싶으셨고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나를 통해 책을 빌릴 방법을 물어보셨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 제목을 검색하고 나온 결과는... 31명의 예약자가 존재한다는 정보였다.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이모의 출국일보다 대출 가능일이 빠를 가능성이 낮아서 빌려 읽기 힘들어지신 이모께는 즐겁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현재 대학생들의 관심에 놓인 책을 또 하나 발견했다는 기쁨을 느꼈다. 예상대로 대출 가능하다는 연락은 이모께서 출국하신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고, 독자는 바뀌었지만 책을 빌려왔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나라를 불문하고 자신의 우는 영상을 SNS에 올린다. 난 지난 1년 반 동안 전공과 큰 관련 없이 지냈지만, 늘 현시대가 공유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과 함께 베스트셀러를 늘 확인하고,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위주로 세태의 선택을 좇아 읽었다. 솔직히 늘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너무 자극적이기만 한 소설을 읽을 때면 영상물이 점점 고자극이 되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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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처음 <리틀 라이프>를 읽을 때 큰 기대 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한 이유이다. 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읽는지 답을 찾는 것이다. 이건 왜 사람들이 우는지와도 관련된 목표이다. 책을 예약해놓은 후에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볼 수 있는 자료들을 먼저 살펴봤는데, 핵심 이야기들을 피해서인지 모두 울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마치 인터넷으로 구매한 영화가 시작할 때 뜨는 영상물 등급 안내 -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의 기준 - 처럼 말이다.


 

그는 모든 게 다 무서웠고, 때로는 모든 게 다 무서워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면이 지긋지긋했다. 두려움과 증오심, 두려움과 증오심. 때로는 이 두 가지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자질들 같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증오심.


<리틀 라이프 1> 2부 포스트맨, 172쪽

 



직접 읽고 있는 <리틀 라이프>


 

<리틀 라이프> 리뷰 영상들은 하나같이 눈물 젖은 눈으로 주의 사항을 이야기한다. 어떤 영상은 설명란에 이렇게 작성해두었다. 콘텐츠 경고: 자해, 자살 충동, 자살 시도, 섭식 장애, 미성년자 신체적 학대, 가정 폭력, 장애가 있는 인격 학대, 약물 남용 / 중독, 성폭행 / 강간, 소아성애, PTSD, 미성년자 강제 성매매. 하나의 책에 등장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불행 요소다. 처음 영상에 쓰여있는 이 문구를 보았을 때 과연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이 생겼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리틀 라이프> 총 두 권의 책을 합한 1,056 페이지 중 620 페이지 즉, 한 권만 모두 읽은 상태이다. 책을 모두 읽지 않고 글을 먼저 써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끝까지 다 읽으면 전체 이야기를 요약한 독후감상문을 쓰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완독한 상태가 아니라 확신으로 말할 수 없지만 앞에 나온 콘텐츠 경고의 다수는 한 인물이 겪은 것이다. 그의 이름은 '주드'이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누가 주인공인지는 2부가 되어서야 드러나지만 '주드'가 주인공인 것을 알면 1부를 읽기 수월할 것이다. 나도, 내가 본 리뷰 영상도 책의 처음인 1부가 가장 읽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1부에서 주드를 포함한 4명의 친한 친구들에 대해 한 인물씩 시점을 고정하여 그들의 삶 전반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 명씩 자세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보량이 많고 집중력은 떨어진다. 이 부분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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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가 눈물을 흘린 이 책의 대략 59%를 읽은 내가 현재까지 눈물을 흘렸는지 묻는다면 '그렇다'이다. 나도 현시대를 발맞춰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생각과는 달리 괴로워서 - 정말 힘든 장면에서는 눈물보다는 열과 화가 났다 -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과 감사함에 더 가까운 눈물이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영화 <라푼젤>을 보며 풍등 장면에서 오열한 과거가 있다. 눈물의 이유는 라푼젤이 영화에 등장한 후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에게도 오랜 시간 드러나지 않았던 주드의 처음 15년에 걸쳐 발생한 일들이 하나씩 독자들에게 전해지면서 현재의 그가 겪는 상처들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읽는 동안 주드에 대한 나의 마음은 애통함과 대견함이다. 책 밖에 있어서 직접 그 마음을 전할 수 없는 환경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감사하게도 더 사랑받아야 하고 그 사랑을 받는 법을 알길 바라는 주드를, 나보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주드에게 전하는 따뜻함이 소중하다.

 

 

"해럴드, 고마워요."

"물론이지, 주드.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그는 부드러운 매트리스 위에 누워 깃털이불을 둘둘 말고는 창문이 하얗게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깨어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꿀럭대는 소리, 해럴드와 줄리아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소리, 둘 중 하나가 어디론가 가는 소리들이 들리다가 마침내 모든 게 조용해졌다. 그 순간 그는 그들이 자기 부모이고, 자기는 로스쿨에 다니다 주말 동안 집에 온 아들이고, 여기가 자기 방이고, 다음 날 일어나면 성인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상상을 했다.


<리틀 라이프 1> 2부 포스트맨, 190쪽

 

 


그 순간 그저 그의 옆에 있고 싶어서


 

앞서 콘텐츠 경고를 보며 예상했듯 주드의 불행이 드러나는 장면이 과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읽고 있고 끝까지 읽을 마음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00쪽이 넘는 분량 동안 쌓아 올린 인물의 배경과 서사로 그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책 속의 가상 이야기임에도 불행의 묘사는 주드와 친밀감이 쌓인 만큼 나의 아픔과 불행처럼 여겨진다. 그 과정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존재가 되어 계속 읽어 나간다.


사실 결말을 몰라서 아직도 마음을 편하게 놓지 못한다. 주드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 기쁜 소식을 듣고, 그에게 좋은 상황일 때조차 온전히 편안하지 못하다. 독자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가 지금만큼 안온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라며 한 권의 책조차 다 마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번 장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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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드의 인생을 알아갈수록 그가 느끼는 '두려움과 증오심.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증오심'이 무엇인지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자아를 형성하는 어린 나이에 겪은 일들로 품은 거머리처럼 딱 붙어서 그의 내면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은 위험한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언젠가 그날의 일들이 누구에게는 그저 지나간 과거가 될지라도, 그것이 한 사람의 세계 전부였다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가려지지 않는 흉터로 남는다.

 

책을 읽으며 그의 아픔에 동정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의 성장을 동경하는 순간도 존재한다. 주드는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아이 같은 모습과, 대학을 진학하고 로스쿨을 다니며 법의 길 위에서 큰 걸음들을 내디뎌 나가는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타인의 인생과 감히 비교한다는 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의 인생을 들으며 나도 전진할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정서적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 그것이 모두 건강하지 못할지라도 그에게는 최선이었을 - 모든 상황에 맞서 치열하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주드 본인은 '보잘것없는 인생little life'이라고 말한다. 내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일들을 - 열정적으로 임하는 일, 자신이 마련한 집, 사랑하고 사랑받는 안정적인 관계 - 모두 채운 그가 그 인생을 '보잘것없다'고 한다.

 

* * *

 

이제 남은 한 권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대학생 이후 현재까지 주드가 살아온 인생과 지금까지 그의 밝혀진 과거만으로 충분히 가슴이 미어졌기에, 앞으로 어떤 일들을 더 듣게 될지 두려운 마음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스포일러를 듣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1권만 읽고 글을 써서 나도 뒷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한다. 주드가 지난 일들을 디딤돌 삼아 앞으로의 일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해결해가기를,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과거를 더 이상 혼자서만 안고 살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1권의 시간 동안 주드의 정신적 신체적 보호망이 되어준 윌럼, 해럴드, 앤디 고마워요. 여러분을 통해 주드를 향한 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책이 끝나는 순간까지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이 더 생기길 간절히 바랍니다. 곧 다시 만나요.


 

자기가 이 우정을 이렇게 치우치게 만들어서, 그가 달아날 때도, 근원을 밝힐 수 없는 문제들로 도움을 요청할 때도 한 해 또 한 해 윌럼이 너무나 오랫동안 그의 옆을 지켜줘서 눈물이 났다. (...) 그는 상처 받고 또 상처 받겠지만 - 모두가 그렇다 - 노력하려면, 살아 있으려면, 더 강해져야 했다, 준비해야 했다, 이게 삶이라는 거래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어야만 했다.


<리틀 라이프 1> 4부 등식의 공리, 608~609쪽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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