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야간비행을 떠나는 모두에게 [도서/문학]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글 입력 2024.08.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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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작가로 유명하다. 따뜻하고 섬세한 문체로 사랑과 희망에 대해 논한 그를 많은 이들은 작가로서의 길만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실제 직업은 비행기 조종사였다. 유년 시절부터 비행기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온 그는 여름방학 때 집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비행장에도 자주 가곤 했다.


그가 어린 시절 쓴 시 중 ‘엔진의 노랫소리가 잠든 영혼을 달랬다’라는 표현은 비행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애정을 잘 드러낸다.


<야간비행>은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쓴 책이기에 비행에 대한 표현과 세세함이 두드러진다. 제목에서 나타난 바처럼 무서운 밤이 비행사에게 어떤 시선과 관심으로 다가오는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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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선택하고 나면


 

일단 해봐, 일단 만나봐 라는 말처럼, 우선 저지르거나 선택하고 나면 좋아진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책 속의 인물들 역시 비행을 하게 된 뚜렷한 계기는 없다. 일단 하다 보니 그 우연에 만족했고 그것만의 매력을 느끼며 그 일을 지속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까지 생긴 이들은 비행하는 일을 사랑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표 인물 중 한 명인 ‘리비에르’는 일을 처리하는 데 굉장한 엄격함을 지닌 인물이다. 일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 감정과 동정심은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다. 그런 감정을 내세우는 것은 일에 대한 방심만 키울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종사들에게 언제나 악천후에 맞서고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요구한다.


그의 명령을 따르는 조종사 중 한 명인 ‘파비앵’은 야간비행을 감행하는 사람이다. 상관의 명령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역시 비행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혼자 일어나 가족들을 남겨둔 채 높은 상공을 질주하는 밤은 마냥 찬란하고 들뜨지만은 않다. 늘 위험이 도사리고 기후의 불규칙한 변화에 손 쓸 수도 없다. 무섭고 불안한 밤이지만 비행을 멈추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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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상관인 리비에르와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파비앵의 공통점은 둘 다 비행하는 것을 너무나 애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로로 이 일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일을 하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직업을 갖고 그것을 해내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작품 속에서 리비에르는 일로 인해 인생을 감미롭게 해 줄 무언가를 미루어왔다고 말한다. 시간이 생기면을 전제로 미루어오다 보니 시간은 나지 않았으며, 집은 그에게 도피처도 안식처도 아니다.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에서 행복을 얻는 건 어렵지만, 행복의 의미가 맡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고 그 의무를 실현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임무를 완수했을 때 행복한 휴식을 얻게 된다는 리비에르의 생각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한다.

 

 

 

도시는 바다의 심연일 뿐이야


 

되묻고 싶은 게 있다면, 의무를 실천했을지라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이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이다.


늘 해왔던 대로 혼자 어두운 밤 속을 비행하던 파비앵은 밤과 악천후의 거대함에 굴복하고 만다. 그의 실종 소식을 접한 후 사무실로 찾아와 절규하는 아내를 두고 리비에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에 떠나는 건 멋진 일이라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파비앵에게 남은 건 그를 애타게 찾는 가족과 그럼에도 야간비행은 계속되는 잔인함이었다. 남겨진 가족, 그가 살던 집, 일터 모두 바다의 심연에 불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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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앵의 삶은 생텍쥐페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생텍쥐페리 역시 1944년 정찰비행을 나갔다 실종되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2000년에 들어서야 그가 탑승했던 정찰기의 잔해가 발견되었고 2003년 추가 발견된 정찰기를 인양하며 영면에 들었다. 비행을 사랑했던 어린 소년은 삶의 마지막까지도 비행기와 함께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야간비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야간비행을 하게 된 이유는 다른 회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리비에르는 기차나 배와의 속도 경쟁 속에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용기 있게 맞설 것을 주장한다. 비행사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사와 총책임자의 방침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행 조종사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어느 날 정비사와 함께 건설 중인 다리 근처를 지나가던 리비에르는 부상당한 인부를 보게 된다. 하지만 부상을 당했음에도 꿋꿋이 다리를 세우는 데 열중하는 그를 보며 정비사는 말한다.

 

["인간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처럼 행동하죠.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행동은 목숨까지 앗아갈 만한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행복을 얻으려면 임무를 다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니 과연 그들이 하는 일은 정말 행복과도 연결되는 것인가. 애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 치르게 될 대가는 이토록 위험천만한 것일 수밖에 없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간비행을 계속해나간 리비에르를 마냥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다. 오로지 전진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되뇌고, 부하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선 안 되는 그의 신념 속에서 고독하게 지켜내야 할 그의 책임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야간비행을 떠날 모두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생업을 위해서 혹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위험을 무릅쓰고 외로운 밤길을 활주하는 이들에게,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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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한 세기를 지난 인물일지라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진리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야간비행을 하며 느꼈던 심정과 책임, 그 속에서의 자유와 행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늘 고민하는 주제이자 풀리지 않는 미제와도 같다. 리비에르가 무수한 생명을 담보로 지켜낸 것은 과연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떠나간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남겨진 이들의 고독과 무거운 책임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을 백 번이고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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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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