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7월과 9월 사이의 그림자 -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도서]

글 입력 2024.08.2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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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8월에 의한, 8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하루 한 편, 한 달 한 권, 1년 365일의 읽을거리를 쌓아가는 ‘시의적절’ 시리즈, 한정원 시인의 8월을 만난다. 마냥 사랑할 수만은 없는 무더운 여름, 어쩐지 미심쩍고도 미진한 이 마음을 두고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 말하는 시인. 한껏 미움을 대신해 조금의 사랑을 말하는 시인, 그러니까 시인에겐 8월은 여름보다도 여름의 흔적으로 향하는 시선이다. 햇볕 뒤편의 나무 그늘, 여름비가 고여 든 웅덩이, 침묵으로 향하는 종소리 같은 것."] -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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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애증 어렸던 계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처럼 덥기만 했던 여름이 아니라, 계속된 덥고 습한 날씨 덕분에 찜기에 올려진 듯한 기분이 들어 평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도 다시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름이라는 계절이 단순히 날씨 하나만 가지고 ‘불호’를 외치기엔, 화려하게 피어나는 생명의 푸르름, 청명한 하늘 등 다른 계절이 흉내 낼 수 없는 생기 넘치는 자연을 보여주고 있기에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은 이런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여름이 아무리 불호의 감정을 안겨주더라도 결국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계절 중에 여름을 네 번째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여름을 제일 싫어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싫어한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네 번째로 사랑한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아무리 싫어도 결국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도, 한창의 여름인 7월도 아닌, 어떻게 보면 지는 더위인 8월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아무리 강렬하게 존재해도 결국 스러지는 생명의 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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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말고 존재의 그림자를 더듬는 흔적. 사람의 꼬리뼈와 세 번째 눈꺼풀, 고래의 뒷다리와 같이 절멸하고도 남은 선. 8월은 내게 그런 선이다. 그런 선을 꼭 쥐고 잠을 자고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다. 작은 더위와 큰 더위를 지나 잔서, 한풀 수그러든 열렬과 열심, 피로를 견디는 어떤 얼굴 어떤 지경으로 꾸려진 낮밤들. 이제 없는 것들의 기원에 골몰하고, 오로지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미래를 기다리는 하루하루. 일곱 달을 잃고, 나는 붓을 든다. 곧 가뭇없을 8월, 7월과 9월 사이의 그림자를 붙잡으려고. 그 시도는 실패가 자명하다. 어떻든 시간은 붙잡히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더라도. 없어질 한 사람을 이루만지듯이."] - 작가의 말, 잔서의 날들 中

 

이 책은 마치 작가가 날마다 기록한 일기를 보듯이 8월 한 달간의 시간을 기준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에세이-시-사진’구조가 반복되어 책을 구성하는 조금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완전히 에세이도, 시도 아닌 이 구조는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성이었는데,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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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구성의 책을 읽어본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다. 사건의 긴박함, 자극적인 인물 관계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익숙해져서 일면 ‘편식 독서’를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에세이를 접하면서, 작가가 자기 생각을 전하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자면, 자극적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충분히 감동과 생각을 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이 글을 읽는 나도 긴박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듯한 위로를 받게 된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처럼 내가 어떤 모습, 어느 상황에 있더라고 그저 괜찮다는 것처럼 잔잔하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람에게 이런 시야도 있다는 것을 전달해준다.

 

시는 정제된 언어로 본인 또는 누군가를 내세워 세상의 편린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문장, 단어에서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미를 곱씹으며 천천히 받아들인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고 가장 많이 배우는 부분이 바로 시 언어에 관한 것이다. 단어 하나가 전달하는 의미가 단어의 뜻 그 자체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 상징적인 행위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읽는 독자를 속이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나를 살린 적이 있다 내가 죽으려던 것은 내 고양이만 안다

나는 고양이를 살릴 수 없다 그건 나만 안다

그러기로 한다

 

- 8월 8일, 비밀 中

 

 

이렇게 시를 해체하는 과정은 마치 노래의 운율과도 같은 언어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끼게 해주지만, 시인의 생각 그 자체를 알기에는 조금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에세이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함께해 우리에게 그의 시야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에세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마치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누군가의 독백을 듣는 듯한 서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특징은 내가 작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고, 작가의 말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 더 깊게 해줄 여유를 준다.

 

더해서, 사진의 경우 사진작가 김수강 작가의 작품으로, 아날로그 중의 아날로그, 19세기 인화 기법 ‘검 프린트’를 이용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여러 차례 그려내는 사진과 시간을 통해 쓴 시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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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카를 구하게 되어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찍을수록 점점 옛날 카메라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명한 화질도 좋지만, 옛것이 주는 흐릿함과 따뜻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세상의 한순간을 박제하는 그 자체의 의미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8월을 마무리하는 지금, 우리에게 애증을 느끼게 해주었던 여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면서 다시 돌아올 여름을 조금이라도 사랑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시의적절 8번째 시리즈. 한정원 시인의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은 8월 15일 출간되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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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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