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둘에서 하나로

글 입력 2024.08.3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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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_민들레.jpg

 

 

5개월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한 후 이틀 뒤인 목요일에 너와 두 달 만에 만났다.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대륙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제일 최근 기억으로 간직한 채.

 

처음으로 내 앞에서 하염없이 우는 너. 슬프고 두려워서 그 모습을 보면서 숨이 턱턱 막혔다. 다 식어버린 족발과 막국수를 앞에 두고 휴지 더미를 적시는 너를 보며, 우리의 엔딩이 가까워졌다는 확신만 들었다.

 

족발집에서 나와서 걷는데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어봤다. 이미 헤어진 사이가 된 것 마냥 마음은 이미 낭떠러지로 떨어졌지만, 공식적으로 이별한 커플은 아니니 계속 손과 팔을 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슬프고 두려워서 자꾸만 미소를 지었고 장난을 쳤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캔디처럼 굴었다.

 

자주 갔던 청계천에 오랜만에 가서 실없는 농담과 장난을 쳤다. 아름답고 행복했고 선명히도 서글펐던 밤.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재치 있는 척 장난스러운 말투로 이제야 숨겨온 진심을 꺼냈다. 그럼에도 너의 표정에는 우리의 헤어짐이 걸려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가올 미래를 가뿐히 제치고 자꾸만 더 가까이 갔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부채질을 해대며, 미니 선풍기의 뚜껑이 청계천으로 떠내려가는 걸 보고 팔을 뻗어 다시 주워주는 너를 보며.

 

다음날 내가 너를 위해 먼저 안녕을 고했다. 생살이 찢기는 듯 세상이 잠시 붕괴됐다. 그 순간은 시공간이 모두 비틀어진 걸 감각했다. 통곡인지 오열인지 발악인지도 모를 괴성을 내며 구르고 또 굴렀어. 아아- 소리를 내며. 너무 아픈 가슴에 “아파”라며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너의 소중함과 내 안에 더 커진 사랑을 가장 깊이 실감할 때, 너를 보내줬다. 너를 진짜 사랑한다고 느낄 때. 두 달 전 머나먼 대륙에서 함께 만든 평생 못잊을 추억을 품은 채로.

 

오늘까지 금, 토, 일이 지났는데 지금 당장 내 3일간의 기억이 없다. 온 신경이 우리의 추억에 쏠려서 정신이 반쯤은 과거로 날아가 버렸다. 너하고만 사랑하고 너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그러다 다시 좋아 죽을 것만 같았고. 너의 세계에 빠졌던 모든 순간들이 다 내 세포를 이루는 것만 같았다. 헤어진 직후 ‘행복한 끝말잇기’로 카톡 프로필 뮤직을 바꾼, 네가 선택한 노래를 듣는데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평소 노래 가사를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멜로디가 좋으면 프로필 뮤직을 바꾼다고 했던 네가, 이번에는 과연 나를 신경 쓰면서 노래를 걸었을까 상상하면서. 그렇게 듣고 또 들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어가고 싶던

지지 않기 위해

유리한 말을 쓰던 우린

단어로 표현하기엔

할 말이 많던 사이

벅찬 화를 참기엔

아직 서툴렀던 아이

지금보다 화려한 서로를 위해

지금이 추억이 됐으면 해

 

노래 ‘끝말잇기’ - 토일, 지스트, (feat. 스키니 브라운)

 

 

함께 지난 3년을 성장했지만 이제 앞으로는 더 높고 큰 산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나도 더 빛나는 멋진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화려한 서로를 위해 사랑했던 지금을 기쁘게 추억으로 남겨야겠지. 정말 추억으로 끝나는 걸까.

  

에이블리에서 새 옷을 사고, 폰 케이스를 바꿨다. 왜 이제야 이 쉬운 것들을 했나. 나를 더 사랑스럽고 깔끔하게 만드는 것들에 왜 이리 소홀했을까 스스로가 미련하다 느꼈다.

 

내게 맞는 패션 스타일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너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 이뻐 보이려는 노력을 그다지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는 걸 실감한다. 말을 필터링 없이 쏟아서 상처를 준 것도, 조바심에 의심과 불신의 말로 비수를 꽂은 것도 너무 미안하다. 왜 그랬을까 후회된다. 나를 보러 한국에서 머나먼 대륙으로 비행기를 타고 돈과 시간까지 쓴 사람이, 나에 대한 확신이 무너진 그 사건을 계기로 이제 너를 예전처럼 볼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서글프다. 먹먹함, 후회, 자책, 원망, 억울함 등의 백 가지 감정을 어떤 비율로 나눴지도 모르게 아프고 쓰리다.

 

다시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낼 우리를 기약하며 너를 볼 수 없었던 해외 생활에서 나는 기다리고, 인내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이틀 뒤 너를 보내게 될 줄이야.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 딱 두 달 전 그 넓디넓은 대륙에서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정말 우리의 인연이 그 대륙에서 다한 거라면 너무 잔인한 선고다. 그렇게 황홀한 기억만 남기고 홀연히 너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사랑과 믿음을 느끼는 순간에 너를 다른 사람에게 가도 되는 이별의 길로 놓아준다니. 이제 나는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벌벌 떨릴 만큼 두렵기만 하다. 이렇게 나를 사랑한 사람도, 한 순간의 계기로 마음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누구를 만나도 얼마나 오래, 많이 사랑한지와 관계없이 떠나가는 걸 바라만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또다시 ‘시간밖에 없다’는 시지프스의 형벌, 시지프스의 감옥에 왔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기억 세포들을 잠시 없애면 편안해질까. 이것도 다 호르몬 때문이라는데, 이 호르몬을 잠시 동안만 뇌 속에서 다 건져올려서 폐기하고 싶다. 급기야 사람으로 이 모든 감정과 정서를 느끼는 게 원망스럽다. 차라리 개미나 거미였으면 이런 쓰라린 슬픔과 고통을 알기나 했을까.

 

시간에 퉁치는 해결은 지긋지긋하다. 삐뚤어진 마음으로 ‘시간이 약이다’와 같은 진부한 공식이 너무나 얄밉다. 원망스럽다. 찢기고 후회하고 떠올리고 울고 상상하고 달리고 덮고 다짐하고 무너지고 발악하고 씩씩거리고 아닌 척하는 이 지독한 굴레를 무한대로 반복할 일만, 남았다. 불 보듯 뻔한 앞으로의 매일이 선명히 그려진다.

 

매번 이별만 하면 아무와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 결국 그 끝은 쿨하지 못하게 미련함과 미성숙을 탓하며 나를 결국 파헤치는 나만 남기 때문이다. 재채기나 바이러스 감염처럼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도 그 질감이나 온도마저 너무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이나 호르몬 따위가 왜 인간에게 딱 달라부어서 우리를 끝내 불태우고야 마는지 싫증이 난다.

 

이렇게 가장 사랑할 때 보내줘야 하는 불합리한 안녕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진유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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