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말을 아는 책을 읽게 되는 이유 - 이터널 선샤인 [영화]

미셸 공드리, <이터널 선샤인>(2004)
글 입력 2024.08.30 21: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FRO-074.jpg

 

 

만약 당신이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 봤다면, 기억이 신의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격언에 공감해본 적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한번쯤 당신을 괴롭히는 그 기억을 삭제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봤을 테다. 도무지 망각할 수 없는 지리멸렬한 추억을 증오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그토록 괴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뇌가 간직한 기억이 아닌, 기억이 간직한 감정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이제 조금은 낡게 느껴지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것은 기억인가, 감정인가, 습관인가.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을 잃고 이에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무의식을 부유하는 경험을 공유한다. 그 복잡한 무의식 세계의 탐구가 정의 내리는 사랑과 기억의 관계성은, 역설적이게도 현재라는 시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은 사랑의 정의를 내린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33_37.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32_42.jpg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보통의 연인이다.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를 원하고 위해주다가도 결국엔 깊게 상처 주고야 마는, 지리멸렬한 관계의 굴레에 갇혀버린 보통의 연인이다. 서로를 다치게 하는 잔인한 독설을 쏟아낸 뒤 드디어 이별하게 된 그들은 상대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한 회사를 찾아간다. 그 회사의 이름은 '라쿠나'로, 잊고자 하는 기억을 지워줌으로써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잊고 싶은 상대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꺼내보세요.’


기억 소거를 위한 시술의 첫 번째 과정은 내가 가진 상대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꺼내게 된 상대와의 기억은 끔찍하고 볼품없다.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를 떠올리며 내뱉는 언어들엔 존중과 사랑이 없다. 그가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 또 그라는 인간이 얼마나 한심한지, 창피한지, 지루한지. 가장 가까운 상대였기에 내뱉을 수 있는 지독한 말들이 내뱉어지고, 시술자는 점차 무의식의 세계로 이끌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방금까지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차 상대를 비난하던 시술자 조엘은 기억 소거 시술 중에 돌연 이를 중단할 것을 외친다. 바로 이별을 선언하던, 비교적 최근의 끔찍한 추억에서 시작되어 상대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알게 된 순간과, 사랑의 정점을 이뤘던 애틋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어버렸기 때문. 조엘은 그렇게 잊고자 했던 클레멘타인과의 추억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깊고 사적인 무의식의 세계로 그녀와 도피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29_03.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30_25.jpg


 

추억을 지우고자 결심한 가장 최근의 기억들은 나의 기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대의 ‘결과화’ 된 모습들이다. 조엘에게 있어 클레멘타인은 한없이 가볍고, 상식이 부족하고, 그렇기에 조금은 창피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며, 클레멘타인에게 있어 조엘은 답답하고, 비겁하고, 한심하고, 지루한 사람이다. 나의 언어로 쉽게 판명되어 버린 상대는 가볍고 제멋대로이며 한심하고 지루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지독한 언어들로 판명 되어버린 상대와의 추억들이 지워지고, 조엘이 마주한 것은 그들이 함께 마주했던 클레멘타인의 아주 내밀하고도 소중한 기억이다. 이때 처음으로 조엘은 더 이상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고, 당장 시술을 중단할 것을 외친다. 혼란스러운 무의식의 추적을 통해 과거의 추억들을 재경험하며 지금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순간들이 지닌 소중한 관계와 상대의 본질들을 깨닫게 된 것.


현재와는 맞닿아있지 않은 과거의 순간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쩌면 허상일 과거를 억지로 현재의 순간에 위치시키는, 일종의 판타지적인 가능성이다. 때문에 자신의 기억들을 부유하며 과거의 '좋은' 추억들을 현재의 것으로 소유 하고자 하는 조엘의 시도들(이를테면 추억을 잃지 않기 위해 클레멘타인의 손을 잡고 더 깊은 무의식 세계로 도피하는 것)은 현실의 기억 소거 작업에 의해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27_25.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23_36.jpg


 

결국 그 모든 소중했던 사랑의 순간들이 지워지고, 조엘이 도착한 곳은 클레멘타인을 처음 만났던, 관계의 첫 순간이다. 클레멘타인과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자, 아마도 가장 후회되었던. 클레멘타인을 거대하고 어두운 저택에 홀로 두고 나왔던 그때의 기억 속 조엘은 더 이상 기억을 잃지 않고자  도피하지 않는다. 소유하는 대신 그 순간을 직접 살아보기로 결심한 그는 무너져가는 기억의 틀 안에서 클레멘타인의 곁을 지키며 기억 소거의 마지막 순간을 직면한다.


이번엔 떠나지 않아 보는 것이 어떠냐는, 기억 속 클레멘타인의 목소리는 아마 조엘 자신의 목소리일 것. 과거의 순간들을 부유하며 도망치기 바빴던 그는 기억 속 가장 후회되었던 상대와의 첫 순간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과거라는 현재를 다시 살아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순간들을 현재의 순간으로 억지 위치시키며 이를 소유하고자 했던 지난 시간의 조엘과는 달리, 기억의 마지막이자 첫 순간의 조엘은 그 무의식의 추적 과정에서 유일하게 현재의 순간을 살아내게 된 것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24_42.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85X9LW-2024-08-30-22_22_39.jpg


 

많이 사랑한 만큼 괴로웠던, 연인 클레멘타인을 지우는 과정에서 조엘은 역설적이게도 그녀를 자신의 가장 순수하고 내밀했던 순간으로 데려간다. 사실 나는 당신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알아주기 바랬던 것임을, 내가 당신을 상처준 것은 나를 알아주지 않음에 대한 치기 어린 화풀이였음을, 그 혼란의 추적을 겪어낸 관객과 조엘은 마침내 이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깨달음마저 조엘의 의식에선 곧 지워진다는 것도 함께.


그 모든 무의식의 여정이 끝난 후,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본능적인 이끌림에 서로를 다시 만나게 된다. 사랑이 운명이라면 이런 극적인 재회도 믿어지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사랑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로맨티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을 운명적으로 재회시킨 뒤, 그들이 서로를 증오했던 그때의 순간을 다시금 끄집어 내곤 묻는다. 이래도다시 해볼 것이냐고. 결말을 알고도 읽게 되는 책이 과연 존재하느냐고.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기로 결심한다. 내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가 아닌, 내가 그를 증오했던 이유만을 편취하여 알게 되었음에도 말이다.

 

결국 <이터널 선샤인>이 말하는 사랑은 이런 것이다. 마구잡이였던 조엘의 무의식 세계처럼, 이성의 언어로는 납득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가득함에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어쩔 수 없음'을 그저 인정하는 것 말고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차수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