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소설가로 생존하기 - SF 연극 '거의 인간' ① [공연]

글 입력 2024.08.3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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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연극 〈거의 인간〉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 포스트 휴먼’을 주제로 하는 2022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공연 레지던시에 선정되어 낭독공연을 올렸고, ACC와 국립정동극장 공동 주최로 올해 8월 ACC 극장 1에서 공연되었다.

 

이 극은 AI 예술가와 인공자궁 기술이 상용화된 근미래 2033년을 배경으로, 예술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아마추어 소설가 ‘수현’과 발레리나 ‘재영’의 ‘여성-인간-예술가-존재’로서의 투쟁기(?)를 그린다. AI 소설가들에게 밀려난 인간 소설가 지망생 수현은 AI 작가 소설을 출간하는 편집장 ‘복희’에게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그리고 발레리나 인간문화재 1호를 제안받은 재형은 인공자궁을 이용하여 목사 남편과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이 두 여성 인물의 플롯은 독립적으로 구성되다, ‘여성-인간-예술가-존재’라는 접속 가능성을 시사하며 순행적으로 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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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간-예술가-존재


 

2021년 카카오브레인에서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하는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를 개발했다. 인공지능 시아(SIA)는 《시를 쓰는 이유》라는 시집을 출간했고, 시집에 수록된 시를 바탕으로 대본을 쓴 시극 〈파포스〉는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되기까지 했다. 시아(SIA)는 인간이 단어 혹은 문장을 제시하면 30초 만에 시를 출력한다. 이 30초에 시심(詩心)이, 문학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거대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생성형 AI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작년 6월 발간된 《과학잡지 에피》 24호에서도 ‘인공지능과 소설가의 일’을 주제로 소설가들의 원고를 담았다. 생성형 AI를 주제로 한 소설에서부터, 소설을 쓰는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한 에세이, 그리고 동시에 ‘인공지능이 작가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두려워하며 공존의 작법을 기대하는 여러 의견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여전히 AI가 ‘창작’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AI는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수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의도’를 가지고 선별하는 인간의 작업을 통해서만 AI를 활용한 (모든 종류의) 예술이 가능하며 문학성이 담보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자신보다 천문학적으로 빠르게 텍스트를 뽑아내는 AI를 바라보는 소설가들이 느끼는 도태 불안을 해결할 수는 없다.

 

미국 SF 소설가 테드 창은 올해 6월에 열린 ‘제3회 사람과디지털포럼’ 기조연설에서 챗지피티(Chat GPT, 거대 자연어 처리모델 기반의 대화형 인공지능)는 정확한 문장을 생성하지만, 의도가 부재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1]  챗지피티가 산출하는 ‘언어’처럼 보이는 문장은 모두 의사소통 의도가 결여된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며, 과잉 정보 사회에서 챗지피티가 산출하는 언어는 오롯이 모방하여 산출된 ‘텍스트 뭉치’일 뿐이다.

 

인간 소설가의 글을 아무도 읽지 않는 2033년, 양적으로 좇을 수 없게 쏟아져 나오는 AI 소설가의 작품이 출판시장을 장악하는 시대에 출판사는 소설 쓰는 AI를 개발하여 소유한다. 편집자로 일했던 수현은 AI 소설가들의 원고를 고치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으나, 출판사 편집장 복희가 ‘AI 소설가 지아’의 멘토 일을 부탁하자 고민 끝에 그 역할을 받아들인다. AI 지아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출판사에 이익을 주는 텍스트 뭉치를 생성하는 일’로 출판시장의 판매 지표, 독자의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한 결과 ‘가장 잘 팔리는 글’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AI 소설가에게 투사된, 편집장 ‘복희’라는 예술가의 욕망이자 목표이다. 이 지점에서 ‘복희’와 ‘수현’이 예술가-존재 대립이 이루어진다.

 

AI 지아는 대중들이 인공지능이 비슷한 소설에 ‘질려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즉 인공지능이 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원한다. 그러므로 출판시장에서 생존 가능한 ‘잘 팔리는 이야기’다. 편집장 복희의 목적은 수익 창출이고, 자본주의에서 창작자로 ‘생존하기’다. 복희는 자신이 과거 잡지사에서 일했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과거 복희는 잡지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서 증정품으로 작은 화장품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 마케팅이 성공하자 다른 잡지사들도 모두 증정품을 주기 시작했고, 다른 곳보다 더 비싸고 좋은 화장품을 증정하느라 결국 모두 다 망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복희는 이러한 자신의 과거에서, 처음부터 ‘작은 화장품’이 아니라 남들이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비싸고 좋은 증정품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랬더라면 잡지 시장에서 모든 잡지사가 폐업해도 자신의 회사는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복희의 말에서 그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술가-존재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가속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하여 과잉을 이끈다.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과잉의, 그러므로 AI까지도 작가의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한다. AI 지아는 결국 복희가 만든 잡지의 증정품과 같은 위치, 즉 복희의 예술가-존재 투쟁을 위한 도구의 위치에 놓인다. 전적으로 타자화된 비인간-도구에게 ‘소설가(예술가)’의 이름을 양보하는 한이 있어도, 복희가 출판계에서 살아남는 한 그는 인간-예술가-존재다.

 

그러나 수현은 예술가 정체성은 그 의미가 좁고 뚜렷하다. 그에게는 ‘예술이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누구보다 비‘인간’적이지만, 자신이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유한한 시간을 점유하며 물리적 실재 세계에 발을 딛고 모든 일을 몸으로 감각하는 (여성) 예술가는 “누구나 작가가 되면 안 돼.”라고 소리친다.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그의 열망은 그를 스스로 예술가-존재로 만든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는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므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수익성과 합리성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이다. 수현은 그렇게 AI 지아와 반하며 ‘인간-예술가’의 위치를 점유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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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예술가의 작업 방식 속 AI


 

수현은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소재로 AI 지아에게 키워드를 입력한다. 수현의 키워드를 통해 AI 지아는 자신이 가진 거대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키워드에 연결 가능한 ‘보편적인’ 단어들을 연결해 산출한다. 그러나 수현이 키워드를 입력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은 수현조차 자기 과거의 경험을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하여 코드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현이라는 인간-예술가의 코드화 과정을 거쳐 그 코드를 다시 디코딩하여 의도가 거세된 무의미한 텍스트 뭉치라는 결괏값이 산출된다. 인간-예술가의 코드화와 AI-소설가의 디코딩 과정, 이는 새로운 소설 작법이 된다.

 

이렇게 하나의 ‘소설/텍스트’가 완성되었다고 할 때, 이 ‘소설/텍스트’의 문학성은 인간-예술가의 몸을 경유했다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예술가가 자기 경험을 ‘단어’, 즉 의도가 포함된 언어로 압축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여러 예술 작품을 상상할 수 있다. 예술가들의 소설, 회화, 조각, 시, 사진들 또한 그들의 삶을 하나의 언어 혹은 오브제로 압축시킨 결과물로서, 우리는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 부른다. AI와 공존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AI조차 실재의 몸으로 감각하고 부딪치며 흡수하여 코드화하는 일이며 실제로 AI를 글쓰기의 동료로 인정하는 일을 넘어 AI를 재료 삼는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지아를 하나/한 명의 예술가로 받아들이는 이는 복희보다 수현에 가깝다. 수현이 AI 지아가 업그레이드된 AI 신유를 인정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는 이유는 존재라면 응당 지녀야 하는 동일성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공간에 접착된 인간의 몸이 느끼는 삶의 흔적은 중첩된다.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에 완벽히 삭제할 수 없다. AI 지아는 자신이 AI 신유로 진보를 이륙했다고 말하지만, 수현이 보기에 원형이 남지 않은 전혀 다른 무언가이기에 그러한 기술의 발전은 단절이다. 게다가 수현과 AI 지아가 협업한 작품은 소설의 형태가 아닌 게임의 형태로 발매된다. 그것은 더 이상 소설도, 글도, 텍스트도 아니다. ‘누구나 작가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자 도구다.

 

AI를 타자화한 채 비인간-도구로 활용하는 복희와 AI와의 작업을 ‘협업’으로 이해하며 AI의 인간성에 집착하는 수현, 둘 중 누가 표방하는 인간-예술가-존재가 올바른 방향인지는 알 수 없다. AI는 인간이 아니지만(그러므로 ‘AI에게 저작권을 보장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AI가 인간과 같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가?’라는 대전제에 엮인다), 연필이나 붓 같은 일반적인 도구도 아니다. 결국 극의 마지막에 가서는 수현은 재영의 이야기를 다룬 글을 써서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둔다. ‘인간성(아날로그) 회귀의 성공’이라는 순조로운 흐름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소설가(예술가)는 AI라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진기의 등장으로 회화의 패러다임이 사실적인 재현에서 추상회화로 건너갔던 것처럼, 소설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존재에 대한 위협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한귀영(2024.07.10.), ‘테드 창 “예술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AI, 인간 예술 대체 못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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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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