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글 쓰는 사람에 관하여

글 쓰는 사람의 효능
글 입력 2024.08.3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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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삶이 전업이 아니라면, 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할 당위는 없다. 들여야 하는 품에 반해 보상은 형편없거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효율의 논리대로 돌아가는 세상살이서 글 쓰는 삶은 치부되어야 마땅한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삶에는 낭만이 있다던지. 간지가 난다던지. 폼 재기 좋다던지. 가지각색 이유로 칭송받는 경향성이 있다. 소구하기 쉽지만 실상 소장하기는 어려운 경향성이다. 좋은 글을 써야만, 글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경향성이다.


비효율적인 행위는 언뜻 낭만적으로 보인다. 비효율의 실상은 치밀한 논리와 검증을 통해 이루어진다. 멀리서 보면 낭만적인 책과 음악과 영화의 창작 과정이, 가까이서 보면 이만큼 골때리는 일도 없다. 계산되지 않으면서 본능을 끌어내야 한다. 수많은 공식을 배우지만 새로운 공식으로 도출해야 한다. 새로운 공식으로 같은 결과를(흥행) 끌어내야 한다. 김영하의 소설과 이적의 음악과 봉준호의 영화를 대중들은 계산하지 못할지라도, 열광하는데.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창작자의 일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커피를 들이붓고 한숨을 발사하고 담배를 꼬나문다. 동네 백수나 히키코모리로 오인받는 시선들을 감내한다. 술기운에 썼던 글을 아침이면 삭제하기도 하며. 변기 위에서 얻은 영감을 옮겨 적으려 끊지 말아야 할 것을 끊기도 한다. 뮤즈는(영감)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온다는데, 뮤즈를 찾으러 온갖 헛짓거리를 다 한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과 음식, 장소. 뉴스와 영화, 소설을 글 쓰는 사람은 그래서 많이 알고 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라지만 의도와 달리 난장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다양해진 관심사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산만함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혼자 하는 일인 만큼,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기 십상이다. 더 좋은 글 대신, 더 긴 글이나 더 어려운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축적할지 모른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빠져봤을  이 지독한 무한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을, 내가 최근에 찾았다.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무슨 글을 쓰는지 읽어보고, 무슨 생각으로 쓰는지를 들어본다. 익숙한 것이 있고 새로운 것이 있다.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도 읽어보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쓰는지도 말해본다. 익숙한 것이 있고 새로운 것이 있다. 익숙한 것은 돌아보고 새로운 것은 찾아본다. 상대를 알아가는 만큼 나를 알아간다.


~하는 법, ~하는 팁, 과 같은 방법론을 기대했다면 이쪽은 방법론이 되지 못한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치부할 수 있는 안건을 치부하지 않고. 말한 만큼 들으며 나눈 한마디들 덕이다. 와닿는 한마디가 있고 걸리는 한마디가 있다. 마감 때면 은연중에 떠오르는 한마디들이 조금은 더 다른 글로, 조금은 더 좋은 글로 연결될 뿐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라는 목적은 뜻밖으로 달성한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조금은 더 좋은 글을 쓰게 한다. 글은 녹취록과 같아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애먼 사람에 화살이 될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래서 막중한 책임감을 전제로 한다. 막중한 책임감은 철저한 자기객관화로부터 근거한다. 책임감도 솔직함도 없는 글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자기객관화가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모진 인간인지를 알아야 애멀지 않은 비판을 할 수 있고, 내가 정말 바른 사람이라는 의구심이 있어야 양심의 가책 없이 글을 쓸 수 있다.


더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조금은 더 나은 인간으로 살게 한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익숙한 것은 돌아보고 새로운 것은 찾아본다.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긴장하고 살아가고. 뱉고 싶은 말을 쓰기 위해 조금 더 바르게 살아간다. 음지와 양지 경계에 서 있던 때 양지로 움직이게 한다. 더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조금은 더 나은 인간으로 살게 해서.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을 포기할 수 없다.


마감에 쫓겨 에헤라디야 글을 쓸까 싶다가도, 걸린 한마디가 걸려 자세를 고쳐 앉는다. 글 쓰는 삶의 비효율에 회의감을 느끼다가도 와닿은 한마디가 걸려 마음을 고쳐 잡는다.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조금은 더 좋은 글을 쓰게 한다. 더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조금은 더 나은 인간으로 살게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여전히, 글 쓰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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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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