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리학은 조선시대 여성에게 삶의 답이 되었는가② [도서/문학]

김금원의 글을 통해 보는 조선시대 여성과 성리학
글 입력 2024.08.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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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임윤지당의 「극기복례위인설(克己復禮爲仁說)」을 통해서 조선시대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성리학적 가치관을 내재화하고 자신의 삶에 응용하는지 알아보았다. 조선 후기의 여류 성리학자였던 임윤지당은 여성의 입장에서 성리학을 탐구하며 남녀 구분없이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주장했다. 즉 보편적 인간의 고귀성에 가치를 둔 임윤지당의 글은 여성이 직접 성리학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주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여성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다는 것을 조명했다. 이번에는 1830년 조선시대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되던 여행길을 홀로 떠난 김금원의 여행기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이 성리학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었는지 알아보려 한다.

 

김금원의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는 금강산, 관동팔경 등의 유람기로 자신이 직접 유람하며 견문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유람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이는 김금원이 직접 그 이유를 서술하고 있는데, "어려서 병을 앓자 부모님이 부녀자의 일을 힘쓰게 하지 않고 글자를 가르쳐 주어서 경서와 사서를 통달했다"는 부분을 통해 김금원 또한 조선 후기 여성 교육에 대한 관심 증대의 수혜자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여자 같으면 발이 규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오직 술과 음식 만드는 일만을 의논하는 것이 옳다 했으나, 옛날 문왕, 무왕과 공자, 맹자의 어머니에게는 모두 성덕이 있고 또 성자를 낳아 이름이 만세에 드러났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김금원이 유교에서 제시하는 여성의 역할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여성 성인은 모두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로 남성은 도덕적 성취에 의해 성인에 도달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에 대한 내조를 잘할 때 성인으로 평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그가 여성의 내외법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면서 반례로 내세운 것 또한 가부장제 질서를 공고히 하려 했던 유교의 한 장치였던 것이다.

 

김금원은 "어찌 여자 가운데 무리 중 뛰어난 자가 홀로 없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규중에 깊숙이 살아 그 총명과 식견을 넓힐 수가 없어 끝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라고 서술한다. 이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김금원이 여성의 뛰어남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국가와 사회로 확장하지 못하는 슬픔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성리학적 이념이 내재화되어 있음과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종법질서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김금원은 남자가 되지 않고 여자가 된 것을 불행하게 여기며 여자로서 집안에서 머물며 내외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옳은지 내면에서 견문을 넓히고 싶은 충동과 사회적으로 내재화된 유교적 관념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자유를 즐기며 견문을 넓히고자 부모님께 간청한 김금원은 마침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견문을 넓히는 것 또한 논어에서 그 명분을 찾는다는 점에서 당시 성리학이 사상을 지배했던 조선시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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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을 떠난 김금원은 금강산, 관동팔경, 한양을 유람하며 보고 느낀 것을 시로 남긴다. 그는 아름다운 폭포를 떠나기 아까워 하다가도 아직 자신이 어리니 후일의 기약을 남겨둘 수 있을 것이니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며 다시 여행할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금강산 서술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경관을 감격적으로 보고 느꼈는지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자유로운 여행을 넘어서서 노트북 화면으로 지구 반대편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약 15년간 한 곳에서만 자랐던 소녀가 처음으로 금강산을 보게 되었을 때의 그 마음은 우리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유람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금원은 "여아의 남장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며, 하물며 인간의 정은 무궁할 뿐이다. (중략) 이제 내 장한 관광으로 숙원을 이루었으니, 이제 가히 멈출 만하다. 다른 본분으로 돌아가서 여공에 종사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라고 서술하는데, 이는 예외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기회인 여자로서의 여행을 마치고 성리학적 질서에 다시 편입되려는 모습을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김금원이 "남자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능히 할 수 있었으니 분수가 족하고 소원도 이룬 것이다"라고 말하고, 이 글을 써서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오늘의 금원이 있었음을 알겠냐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여실히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김금원의 친구들이 돌려가며 읽고 뒤에 서평을 붙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 이런 김금원의 유람기는 집안에만 머물러야 했던 여성들의 여행에 대한 선망, 호기심, 욕구를 대신 충족해 주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김금원의 여행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여공의 의무와 생계의 부담이 비교적 적은 양반 여성이었고 부모의 이례적인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김금원은 여행과 그 기록이란 창조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창작 욕구를 드러냈다. 하지만 성리학은 여성이 집밖으로 나가 여행하는 것도, 그 기록을 남겨서 전하는 것도 여성에게 허락한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그는 인간으로서의 창작욕,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성리학적 가치관이 강요하는 여성의 삶이 끊임없이 충돌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호동서락기」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여성들은 어떤 점에서는 성리학적 가치관을 내면화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국가적 지향점과는 다른 면모들을 보이기도 하며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갔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의 한 문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이 사료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생생한 삶이 궁금하다면 책장을 넘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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