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사람]

내가 너를 미워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이유가 필요했을까
글 입력 2024.08.31 22: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pexels-cottonbro-6756093.jpg

 

 

미움은 중화되는 감정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지만, 대신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지기는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줄어든 농도의 자리를 동정이나 연민이 채운다. 그래서 미움의 테두리가 쪼그라들며 공간이 생긴 곳에, 그것들이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차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미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웠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나.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난 내가 미워하게 된 사람들을 여전히 옅게나마 미워하고 있다. 쪼그라든 테두리 안에 연민과 동정이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면서 그 내부를 주인처럼 부유해도, 나는 내가 처음 가졌던 미움을 절대 잊지 않는다. 그걸 잊지 않아야 다시 상처받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미움과 비미움의 비율이 어느 순간 역전한대도.


미움을 잊지 않을 뿐 미움을 자주 사용하진 않는다. 미움이 내 마음을 여기저기 굴러다니면서 막 묻어있으면, 결국 나를 미워하게 되니 말이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죄가 좀 있는 사람이다. 아직 이십 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죄가 아주 많은 사람이라고는 못 하겠다. 다 아는 척하지 않기로 약속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 목과 어깨의 접합부부터 빠른 속도로 뻣뻣해지는 기분이다. 미움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경직되어 이대로 굳어버릴 것 같은 기분. 그 기분 진짜 끔찍하다. 그래서 난 누구를 많이 미워하기는 싫다.


그럼에도 살아가다 보면 미운 사람들이 생긴다. 미움이 쪼그라들다 보면 미움이 묻어있던 마음의 어느 조그마한 부분이 살짝씩 굳는다. 그럼 그냥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거다. 거동에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중학교 1학년일 때부터 정말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았고, 늘 붙어 다니지는 않았어도 아주 친했으니 그 애의 아픈 부분들을 알고 있었다. 몇 번 부딪힌 적 있지만 그건 그 애랑 나 둘 중에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으니까 그걸로 그 애가 밉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은 고등학교까지 갔는데,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면서는 그 애에게 힘겨운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가까이에서 위로하며 지냈다. 걔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 애, 나한테 진짜 소중했다.


스물이 되기 직전 열아홉의 겨울부터 서로 소식이 조금 뜸해졌다. 그때가 내 인생의 진정한 사춘기가 시작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내부적인 에너지의 문제로 피곤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친구는 나에게 서운한 것이 많았나 보다.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친구는 열렬하게 나를 비난했고 내가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내 인생에서 사라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려고 했다.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고 그 애는 말했지만, 사실 나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그 애의 그 분노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무엇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 그리고 나도 그걸 내 마음에 이고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괜찮은 척 그 애를 참아왔고, 그 애도 나를 생각하면 늘 그런 기분이었을 거라는 것.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미 너덜거리는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려는 건 어쩌면 오만이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미움을 마음에 들인지 이미 오래되어서, 그게 각자의 마음을 슬쩍씩 저미고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매번 그 애를 보면 마음이 숨을 헐떡였나보다 싶었다. 미운 마음을 명명하지 못하고 그것에 계속 휘둘려서 말이다. 정신 차리고 깨달은 이후에는 마음 군데군데에 많이 그 애에 대한 미움이 배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부분들은 그 상태대로 굳어있다 지금도.


그때 깨달은 것 단 하나는 소중하다는 말과 미워한다는 말은 배척된 관계에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워하지만 너무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다. 너무 소중해서 되려 서서히 미워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굳은 마음을 다시 녹일 수가 없다. 급속히 냉각된 그것을 다시 녹일 수 있는 열렬한 원료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세계라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서.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황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