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찬실이는 복도 많지 - 복 많은 찬실씨 [영화]

글 입력 2024.09.01 10: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찬실은 복잡하다. 우울하고 혼란스럽다. 영화 pd로 일하던 찬실은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감독의 사망과 함께 일자리를 잃게 된다. 영화만 하다 늙을 줄 알았던 찬실은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이 믿기지 않는다.


직업적인 의미로나, 영화를 사랑했던 마음으로나 찬실의 실업은 그의 인생 전반을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촉발제로 작용한다. 왜 일만 하며 살아왔는지, 어째서 연애는 뒷전이었는지 등등 회의로 시작된 후회는 끊임없이 찬실을 괴롭힌다. 영화를 하지 못하니 당장 먹고살 돈마저 걱정인 찬실은 일 하기를 원한다. 어떻게든 먹고 살 노동 말이다.


친한 동생인 소피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시작한 찬실은 열심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와 바닥을 쓸고 닦는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 먼지를 쓸어버리고 바닥의 때를 지우고 쓰레기를 버리는 찬실의 행동은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청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h232IXp4Xk8969KuAaiJng.jpg

 

 

오랜 시간 동안 생계의 수단이었던 영화는 찬실을 이 순간 더욱 힘들게 한다. 찬실은 마치 처음부터 영화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던 것만 같다. 찬실이 당장 원하는 것이 영화를 다시 하는 것인지, 돈을 버는 것인지 자신조차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더욱 답답했는지 모른다.


원치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은 누구나 겪는 현실이라지만 좋아하던 일을 생업으로까지 하던 찬실에겐 그가 겪는 시련은 자아의 측면에서 더욱 고통스러워 보인다.


찬실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도 같은 상황이 혹여 외로움 때문은 아닐지 생각한다. 그러던 중 소피의 집에서 프랑스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단편 영화 감독 김영을 만나게 되고 찬실은 자신의 불안함이 외로움 때문이라 확정 지어 버린다.


김영을 처음 만난 날, 찬실은 그와 정전기가 통하게 되는데 이것은 김영에게 첫눈에 반한 찬실의 심정을 은유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정전기는 찬실이 자신의 현 상황을 외로움으로 빠르게 치부해 버리고 사랑으로 환기하려는 발버둥이었을지 모른다. 영화와 하던 오랜 사랑이 끝나버린 것만 같아 사랑할 대상을 찾아 마음을 쏟으려는 노력 말이다.

 


P_t8Ev2b6yrClAuQhEPZtw.jpg

 

 

하지만 김영과 찬실이 이자카야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찬실이 영화를 놓고 싶어 하지 않음을 관객은 느낄 수 있다. 관객은 오지 야스지로 감독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어렸을 적엔 홍콩 영화와 장국영을 좋아했던 찬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김영은 오지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는 지루하다고 말하지만, 찬실은 김영의 말에 반박한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마냥 울적해하던 모습과는 달리 영화 얘기를 하는 찬실은 어딘지 모르게 반짝거린다. 찬실은 인지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아직 영화를 잊지 못했다.


주인집 할머니의 죽은 딸의 방에 귀신인지 수호천사인지 모를 국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 방은 영화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마치 한 사람의 소중한 추억과 마음으로 채워진 것만 같은 영화의 방은 노을 지는 저녁의 끝자락과도 같은 조명을 은은히 비추며 주인집 할머니의 딸과 찬실이 동시대를 거쳐 온 영화광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찬실을 영화를 사랑한 그 순간으로 다시 데려간다.

 


lEiHDV8mK8YCOkp-mcrHpg.jpg

 

 

국영은 찬실에게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내주게 되는데 그 이후 찬실은 자신을 찬찬히 짚어본다. 찬실은 영화의 방에서 가져온 라디오에 꽂혀있던 테이프를 재생하곤 영화를 처음 하기로 결심했던 <집시의 시간>을 떠올린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찬실은 깨달은 것이다. 영화를 사랑했던 것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내면 깊숙이 녹아 있는 현재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와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부터 찬실의 인생은 영화 같다. 그 후, 국영은 찬실을 떠난다.


어쩌면 국영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찬실의 속마음이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한 과거는 예상치 못하게 답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엔딩씬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찬실이 걸어갈 삶을 상상하게 하는데 손전등으로 불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가는 찬실과 동료들은 마치 영화관의 영사기를 연상시킨다.


특히 찬실의 손전등 불빛이 스크린 속 영화로 전환된다는 점이 그러한데, 그 영화는 터널을 지나온 기차가 설경을 맞이하며 달리는 일인칭 기차 시점을 보여준다. 찬실이 깨끗한 눈처럼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했던 그때의 마음을 다시금 발견하여 어둠 속을 빠져나온 상황과 겹쳐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xZ5vR4tMvorbKjnZiaRLmA.jpg

 

 

영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찬실의 삶에 있었다. 찬실은 이 사실을 영화 후반부에 깨닫는다. 그리고 찬실의 옆엔 함께 불을 비추며 걸어갈 동료들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찬실은 이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찬실은 분명 동료들과 함께 다시 영화를 할 것이고, 찍을 것이다. 매 순간이 영화 같을 순 없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찬실의 마음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찬실은 복이 많은 것이 맞다. 사랑하는 일이 있고, 그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찬실의 복이다.

 

 

 

IMG_2294.JPG

 

 

[이선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