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시시포스의 형벌

글 입력 2024.09.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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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는 것은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상징한다고 하던데, 비극마저 그러할 줄은 알지 못했다.

 

*   *   *

 

삶이란 게 무어냐는 따분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거듭 경험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하는 여정이라고. 삶의 매 순간에선 언제나 더하기를 지향했고,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도 상승과 하강이라면 전자를 그려왔으니까. 계단을 오르듯, 혹은 매끈한 산을 오르듯 상승 기세를 보이는 그래프를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짓밟고 커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 질문을 열아홉 해를 살고 처음 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나를 가로막는 제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기차의 선로가 중간에서 뚝 끊기듯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금세 이것만큼은 유효함을 깨달았다.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평생도 지금과 같이, 덧붙이고 더하고 쌓아가는 모습이 되어야 함을 알았다.

 

깨달음은 더욱 큰 제약이 되었으나, 일종의 설렘도 심어주기도 했다. 상승 그래프를 오르는 만큼 더욱 큰 돌덩이가 머리를 짓누르지만, 그것이 더욱 높은 꼭대기로의 도약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러한 경험이 모여 ‘나만의 삶’이라는 근사한 것이 될 것이니까. 온전히 내 힘으로 쌓아낸, 유려하고 아름다운 직선을 상상했다.

 

기대감은 당장의 아픔도 이겼고, 지속되는 자기비판도 불사했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반증이었다. 인생은 장기전이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까. 가끔은 정말로 벅찬 보상이 돌아왔다. 그러면 이전의 혼란과 슬픔은 모두 견딜만해 보였다. 그런 성공이 모여서 상승세를 만들고 있으니까. 그것을 위해서라면 참는 것이 마땅하니까. 진주는 진흙 구덩이에서 자라나는 것이 마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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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의 전반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길한 기운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은 학교에 있었다. 마감 기한이 멀지 않은 자기소개서가 아무래도 써지지 않아, 집중력을 다잡고자 도서관에 가 앉은 지 3시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결점마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신의 특성을 흐름으로 묶어 기술하기 어려운 것은 알고 있지만, 유달리 다음 줄을 적을 수가 없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고 내용을 정리하고 적당한 논리구조를 마련해보아도, 그 내용을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다. 분명 내 이야기를 해야 맞을 텐데, 그리고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일 텐데, 점점 더 다듬고 정제할수록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거짓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는데 결국은 진실하지 못하다는 죄책감, 이 활동을 추천해준 사람을 위해서라도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포털사이트의 그들의 후기처럼 대단한 스펙은커녕 도무지 부족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감정에 휘말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 비하는 곧 자기연민으로 이어질 테고, 그렇다면 또다시 실패하는 인간이 될 테니까. 곧장 자리를 일어나 다른 층을 쏘다니며 관련한 책을 뒤졌다. 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수습하고 돌아가면 다시 마음을 붙잡고 일할 수 있다고 되뇌면서. 도서 검색대에서 몇 차례 검색을 거듭하고 적절히 참고할 만한 책 세 권을 껴안고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다시 앉아 책을 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글자가 머릿속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분명 글자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머리 한쪽으로 들어온 지식이 곧바로 머리를 통과하여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완전히 집중력을 상실한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이러지 말고 다시 빨리 집중해서 잘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자기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동시에 이럴 시간조차 없이 집중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뭉쳤다. 감정이 겹겹이 머리를 채우고 시야가 희미해졌다. 현실감각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차올랐다.

 

나도 시시포스와 같이,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지만, 그렇게 채우는 시간이 쌓이면 거대한 무언가가 되어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마침내 이번 순간에서야 무겁게 쌓인 돌덩이는 비탈길을 따라 곤두박질쳤고, 나의 마음은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돌덩이와 함께 몸도 마음도 이리저리 구르며 내동댕이 쳐졌다.

 

*   *   *

 

아무래도 눈물을 참을 수 없다는 직감이 떠오르고, 도서관 건물을 나섰다. 멀리 걸어 나갈 힘조차 없어 입구 바로 앞의 정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켜고 친한 사람들의 번호를 헤아려보았다. 하나, 둘, 연결음이 이어지다 -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건 전화가 두세 번의 연결음 만에 가 닿았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쌓여있는 줄도 몰랐던 댐이 무너져 내리며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는 많은 것을 듣지 않고도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는 마음을 들추어보기라도 한 듯, 내 혼란의 핵심을 꿰뚫어 보았다.

 

“누구야, 내가 이전에도 너에 대해 생각했던 건데. 너는 책임감을 많이 느끼잖아.”

 

인생이 숙제 같다 느끼지 않을 리 없다. 오늘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나, 내일을 만드는 것은 의무와 책임이었다. 오래도록 가슴을 뭉근히 눌러줄 행복은 찾을 수 있을지 감감했고, 그럼에도 버티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 미래를 향하는 길목에 놓인 모든 것에 열중할 수 있도록.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 무겁기도 한 것 같아.”

 

맞아, 무거웠어. 그런 내가 한심했고, 평생 무거움을 견뎌야 한다는 게 무서웠어. 그래서,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언제든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도태되지 않도록, 그들이 말하는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그것은 성공하는 미래를 그리는 한편으로, 지금껏 올라온 산 아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 무게를 참지 못하면 넘어질 거야, 그러면 금세 데굴데굴 굴러서 바닥으로 떨어질 거야, 그러면 몹시 큰 일이 일어날 거야, 아주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거야. 막연한 불안을 심어주는 방법은 효력이 좋았다. 나는 금세 조바심을 냈고, 항상 열심히 하겠다 다짐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건 너무 힘들잖아.”

 

힘들었다, 무서웠고, 여전히 불안했다. 오늘이 즐겁지 않았고, 내일이 설레지 않았으며, 오늘 밤 침대에 누워선 마감 기한이 가까워져 겨우 숙제를 제출한 듯한 찜찜한 기분에,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막막한 긴장감에 편안하지 못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었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냐는 듯. 내가 삶을 숙제처럼 살고 있다는 것도, 자기 삶을 즐기라는 말이 우습다는 것도, 아주 사소한 책임마저 끔찍이 싫다는 것도. 그렇지만 인생은 성장과 더하기의 연속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하자 있는 사람 취급을 받을 텐데. 그럼에도,

 

“조금 내려놓고 살아도 돼, 가볍게 살아도 괜찮아.”

 

품 안의 것들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매일 살면서 매일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그들의 말이 정론이라 믿었던 내게, 정반대의 제안은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기꺼이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그러나 믿고 아니고의 문제를 생각하기도 전에, 다시금 눈앞이 흐릿해졌다.

 

*   *   *

 

나는 평생에 걸쳐 시시포스의 형벌을 모방한 삶을 살았다. 아래의 경사면을 짓이기면서 오로지 꼭대기를 향해, 살살 굴리면 크기를 키우는 눈덩이 같은 돌덩이를 받치고선. 이곳에 사는 모두가 그런 모양의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게를 견디는 것은 그럴만한 마땅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무튼 버티는 것만이 정답이라 자위했다.

 

그렇지만 그 전화 한 통으로 내가 인간임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신의 명령이나 운명 따위에 시시하게 휘둘리는 인형이 아니다. 하나의 방향을 향해 힘차게 행진하는 병정 인형도 아니고.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깨달음이 그리도 어려웠다.

   

다만 어렵지 않은 방법이라면, 적당히 내려두자는 것이다. 아주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내면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규격화된 방법이 있지는 않겠지만, 빼기와 덜기, 내려두기가 내 삶의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을 만큼만 내려놓는 것이다. 시시포스와 달리, 내가 오르는 것은 인간 세상의 산이니까. 중간에 평지도 있어 쉬어갈 수 있고, 울퉁불퉁 제멋대로 구르기도 하는 산. 그런 산이라면 아주 끔찍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분명 나무와 수풀이 자랄 구석도 있고, 산짐승들이 노니는 공간도 내어주었을 테니까. 그러다 아주 지칠 때는 잠시 주저앉아 오늘의 산행을 즐길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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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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