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F90.0MHz – 젊은 ADHD의 슬픔 [도서]

당신의 코드는 고유한 헤르츠가 된다
글 입력 2024.09.0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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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라디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정답은 소통하는 데 주파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알맞은 음역을 설정하는 것이 관건. 그래서 우리는 라디오의 다이얼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원하는 방송을 찾는다. 그때 스펙트럼에 신호가 없는 채널을 맞추면 ‘치지직’ 듣기 싫은 소음이 흘러나온다. 따라서 내게 맞는 떨림과 박자를 정확히 알고 사용할 수 있는 건 사회적 동물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소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는 보통의 고래들이 사용하는 12~25Hz에서 벗어난 52Hz로 노래한다. 배가 고프다고 사정을 해도, 심심하니 같이 놀자고 말을 붙여도 알아듣는 친구가 없다. 마치 소수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 같은 쓸쓸한 모습일 거라 상상된다. 나만 아는 말을 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비자발적 고립이다. 그것이 바로 ADHD다.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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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마 시절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여기저기서 선생님, 경찰관, 연예인 등 각자의 찬란한 미래를 그려보곤 했을 것이다. 무조건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사회를 경험하며 내 한계를 확인받고 점점 현실과 타협한다. 남에게 빚지지 않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만 해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ADHD를 겪는 사람들에겐 그 ‘내 몸 하나 건사’가 가장 어렵다.

 

화장실을 가다가 싱크대 속 설거짓거리가 보이면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려놓고 그 사실을 잊어버려 이미 옷이 말라 있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 생겨서 검색하다가도 갑자기 일기를 쓴다. 도무지 일을 제때 완수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꽂히는 일이 생기면 밥도 먹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초집중 상태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어떤 일의 마감 기한을 지키거나 약속 시간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본다면 계획 없이 너무 게으른 혹은 타인을 만만하게 보고 무시해서 책임감 없이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라 볼 수도 있다. 나는 도대체 왜 남들 하는 만큼 일을 완수해 낼 수 없는지 자책하게 된다.

 

ADHD에 대해서 궁금해진 필자는 귀엽지만 다소 정신없는 표지의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읽게 됐다. 책의 저자는 나와 닮은 점들이 많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얼렁뚱땅 빙글빙글 실수 연발에 데드라인이 다가왔을 때 일을 처리하는 충동적인 모습까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정신과에 자기 발로 찾아갔다는 점이다.

 

금연을 위해 찾아간 병원은 마법 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갑자기 증상이 없어지는 약을 받을 순 없었다. 다만 담배에 중독되는 성향에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소견과 함께 ADHD 판정을 받게 된다. 다분히 정상이지만 조금 덜렁대는 성격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하루 아침에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의 장래 희망은 억만장자도, 돈 많은 백수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새하얀 밤과 깜깜한 낮


 

MBTI가 유행했던 배경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몇 가지 질문만으로 자아를 규정할 수 있다는 명료함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상외로 너무 큰 자유를 만끽했을 땐 어쩔 줄 몰라 한다. 적당한 밀폐감이 있는 틀이 안정적이라 느낀다. 저자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구천에 떠도는 심리 테스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스스로 통계 속에 정의되길 바랐다.

 

그럼에도 ADHD라는 이름표가 붙었을 땐 무너지고 도망치길 선택했다. 술과 함께 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애인에게 의존하며 인생을 책임져 주길 바라곤 혼자 실망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너무나 흔해서 모욕적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미 상처받고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에서 받은 위로는 당사자에게 위선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진심이 담긴 문장이었다 한들 “정상인”이 “환자”에게 건네는 적선으로 들릴 테니. 타인의 호의를 호의로 받을 수 없고, 작은 소리도 위협적으로 들릴 만큼 사람이 예민해진다.

 

동시에 우울증과 수면장애가 동반된다. 집중력 결핍으로 일을 그르치면 우울해지고, 슬퍼서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게 두려워진다. 그리곤 겹겹이 쌓인 걱정의 무게에 잠이 들지 못하는 밤과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침대 속을 파고드는 낮이 반복된다.

 

 

 

비공개 천재의 태제


 

격주 토요일마다 정신과에 가는 저자는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다. 그때 증상 기록을 제출하기 위해 A4용지 3장 분량의 글을 제출하며 상담사에게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책을 쓸 수 있을까 의심했던 그녀에겐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자기 고백적인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작가 정지음이 환자 정지음에게.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하단 생각이 들자, 왠지 절실히도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건 이상하게 눈물 나는 감각이었다. 나는 허접하고 추하고 멍청하고 사랑스럽지 않은데 왜 하필 나 자신을 원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남이 되길 원했다면 소설을 시도했을 거다. 하지만 나 자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에세이를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를 원했다기보다 나 자신을 구하길 원한 것 같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병은 원심분리기를 돌려도 분리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현실의 천재가 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만 아는 “비공개 천재”라는 후천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건 가능했다. 그녀는 깜빡 잊기의 천재, 누워 있기의 천재, 할 일 미루기의 천재, 머리 박기의 천재 칭호를 얻었다. 천재 사냥꾼이 그 천재성을 노리지 못하게 아주 은밀하고도 스릴 있게.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무책임한 긍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나만 아는 내 능력이기에 이젠 남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 헤르츠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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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비공개 천재라 마음속에 공표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 설계자가 될 수 있다. 내가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른 관점에선 강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은 그저 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며, 그것들이 모여 나의 정체성을 이룬다.

 

주변에 관심을 두는 산만함은 영역을 넘어서 다른 분야의 정보를 연결하는 창의성이 될 수 있으며, 재고 따지지 않는 즉흥성은 자발적인 적극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모든 능력이 고르게 발달한 육각형 캐릭터보다 몇 가지 스탯에 능력치가 몰빵 된 캐릭터가 더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개인을 고치라 하는 건 잘못된 말이다. 예컨대 사투리를 ‘고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건 사투리라는 항목을 부정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필요한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부끄러워하며 고쳐야 할 것이 절대 아니다. 이처럼 ADHD의 특성들도 일상에 지장이 있다면 의지에 따른 조절이 필요할 뿐, 반드시 바꿔야 하는 치부라 할 수 없다. 이것은 가령 ADHD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세상에 정상이 되고 싶어 하는 모두의 이야기다.

 

ADHD라는 명칭이 붙게 된 건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튀는 싹을 솎아 내기 위한 명분이 아니다. 정상인이라고 굳게 믿던 내가 사실은 학계에 아직 보고 되지 않은 결정적 결함이 있을지 모르는데, 누군가를 낙인찍고 선을 긋는다는 게 무의미하다. 우리는 고유한 값의 주파수로 자신만의 라디오에 DJ가 되면 된다. 채널 간엔 주관적인 선호가 있을 뿐 우열이 생기지 않는다. F90.0이라는 코드는 그들을 환자로 구별하는 코드이지만, 누군가에겐 찾아 듣고 싶게 특별한 값의 헤르츠가 되기도 한다.

 

“나는 무가치하고 무규칙적이며

무방비한 데다 무계획적인가?

무례하다는 점으로 보아 무식하고

무책임해서 무능력한가?

(중략)

나는 무궁무진하고, 어떤 면에선 무고하다고.

무미건조한 일상은 무사함의 증명인 거라고,

단지 상상력 하나로 머릿속에 무성영화 상영관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무수히 많은 날을 살며

그래도 무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무용함과 무용은 한 끗 차이라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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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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