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부침개 한 장 드시고 가세요

식탐과 구토와 부침개
글 입력 2024.09.01 12: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월부터 4월까지, 겨울을 떠나보내며 추위가 풀리는 동안 첫 번째 글쓰기 피드백 모임을 마쳤고, 5월부터 8월까지, 여름의 더위에 달려들며 두 번째 피드백 모임을 마쳤다. 분명 두 모임 사이에 공백은 없었는데 도저히 그 사이의 봄은 기억나지 않고 오직 겨울과 여름만 남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춥다. 여름날 프랜차이즈 카페의 에어컨이란 그런 것이다. 방심하고 겉옷을 챙겨오지 않는 바람에 더 그렇다. 추위를 많이 타고 특히 에어컨 바람을 힘들어하는 나에게 여름은 추위와 더위를 동시에 겪어야 하는 끔찍한 계절이다. 밖에서 받았던 열을 내 몸에 저장해두었다가 실내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열기와 냉기를 섞어 적정 온도를 찾고 싶은 순간은 여름을 나는 때만이 아니다. 사람들과 모여 있을 때의 훈훈한 온기, 타오르는 열기를 잘 받아먹었다가 나 혼자 있을 때 하나씩 뱉어내며 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이것은 은근한 형태로 현실에서 이뤄지기도 하는데, 말이야 좋지만 실은 보기 흉한 식탐과 구토일 뿐이다.

 

 


Part 1. 식탐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회적 관계의 온도를 기준으로 하자면 오히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고 하는 게 알맞을 것이다. 사적인 약속은 이주에 한 번이 적절하고, 불가피하게 하루에 두 탕 뛰게 되기라도 하면 그 전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피드백 모임을 포함해 교류를 위한 장에 종종 나가는 이유는 내가 사회적 추위를 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어느 정도의 온기가 달갑고 어느 정도의 열기를 닮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대화라는 밥상이 차려진다. 관심 없는 사람들의 관심 없는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는 입맛에 맞지 않아 괜히 찬을 몇 번 뒤적여보는 게 전부이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관심 있는 주제로 이야기하면 나도 열심히 수저질하게 된다. 클리셰와 클래식, 가벼움과 무거움, 글쓰기를 향한 증과 애, 그리고 사람마다 장르마다 다른 스타일. 냠냠.


식탐은 ‘음식을 탐내는 것’. 탐내는 것은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어하는 것’. 그들이 나눠주는 반찬을, 아니 생각을 탐낸다. 하지만 배가 아무리 불러도 주워 먹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 남이 나눠준 것이든 던져준 것이든 흘린 것이든, 남들의 생각은 남, 바로 그들에게서만 나와서 나 혼자 있을 때는 이걸 만들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식탐을 부려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답지 않게 말을 많이 해도, 답게 횡설수설해도.

 

 

 

Part 2. 구토


 

모임이 시작된 지 세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체력이 밑바닥인 나는 이미 시들한 몸과 파들대는 정신을 끌어안고 간신히 앉아 있을 뿐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에서 카페인 수혈로 내일의 힘을 조금 끌어다 쓰고, 운 좋으면 식사 자리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알코올로 모레의 힘을 당겨올 수 있다.


그렇게 머리와 마음이 흥분하여 과열된 상태로-동시에 탈진한 상태로-과식한 뒤 집에 돌아오면 샤워하며 열을 내리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곱씹어 본다. 혼자 남은 나는 내가 선호하는 적정 사회적 온도에 들어섰지만, 식탐의 업보는 남아있다.


탐낸다는 데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제 그릇을 모르고 지나치게 먹었다가는 소화불량을 얻는다. 심하면 급체, 더 심하면 구토를 하게 된다. 그가 한 생각이 좋아서, 그가 한 표현이 좋아서 나도 써먹으려고 뱃속에 담아뒀던 대화를 뱉어내지만 그것은 이미 본모습을 잃었다. 어렴풋한 대화의 분위기와, 받아적은 주요 단어 몇 개만이 남은 토사물을 만지작거리면서, 아 이게 아니었는데. 이것보다 더 맛있는 무언가였는데.

 

 

 

Part 3. 부침개


 

저기 저 파란 줄기는 무엇이냐. 청경채나 미나리나 쪽파. 어쩌면 배추의 푸른 잎. 어쩌면 그도 아닌 다른 무언가. 이제는 알아볼 수 없다. 내가 대충 파란 무언가를 한 번 먹었다는 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아, 하나 더, 내가 저걸 맛있게 먹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난 맛없는 건 먹지 않으니까…….


하지만 맛있다고 들고 온 저것이 이제는 파르족족한 토사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미련이 남아 계속 조물조물 만져 본다. 아 진짜 맛있었단 말이다.


글 쓰기가 내 직업이라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직업병 같은 게 하나 있는데,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붙들고 치근덕대며 내 것인 양 이리저리 만져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는데 나 혼자 홍익인간 정신이 강해진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 좀 먹어봐야 한다며, 어떻게 다시 식탁에 올릴 수 없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이 저런 직업병을 가진 이유, 그러니까 자기 것도 아닌 걸 계속 조몰락거리는 이유는 한참 그러고 있다 보면 실제로 내 것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남의 걸 먹고 토해두었던 그것도 어떻게 잘, 기름 두르고 구워내면 뭐, 부침개도 되고 그러는 것이다.

 

 

fons-heijnsbroek-abstract-art-6_ZSeLr9LUw-unsplash.jpg

 

 

 

Part 4. 다시 식탁 위


 

내가 만든 부침개가 상에 올라간 것을 보면 죄책감이 들긴 한다. 처음의 그 식탁에 올라왔던 것, 내가 먹었던 것, 맛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주고 싶었던 것, 그것은 그 부침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부침개를 잘 먹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꽤 좋다. 어느 누가 갑자기 “어 이거 부추로 만드셨네요” 하면 아 그때 내가 먹은 게 부추였구나, 하고 겉으로는 태연하게 “네 맞아요 부추예요”라고 할 수도 있다.


부침개를 여러 장 부치다 보면 내가 그때 맛있게 먹었던 밥상도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부침개였으려니, 알게 된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거리낌없이 식탐을 부리고, 구토하고, 부침개를 부치고. 맛있게 드세요. 저도 잘 먹겠습니다. 냠냠.

 

 

 

김지수_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jpg

 

 

[김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