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송은 시청자에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영화]

시청자는 방송에 어디까지 바라나?
글 입력 2024.09.0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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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고’는 사실은 기존 방송 포맷과 규칙에서 벗어난 예외적 상황을 뜻하는 단순한 단어지만, 그것이 발화될 때는 어째서인지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동영상 플랫폼에 ‘방송사고’를 검색하면 주로 뉴스와 같이 포맷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엄숙한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가벼운 사건들부터, 사람이 쓰러지거나 상해를 입는 등 심각한 사건까지, 다양한 영상들이 나온다. 아예 그런 것들을 모아 놓은 영상들도 있다. 다시 말해 ‘방송’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이벤트라고 할까.

 

한편, 업계에서 말하는 ‘방송사고’는 조금 다르다. 화면이 갑자기 나오지 않거나 오디오가 비거나 하는 기술적 상황을 방송국에서는 방송 ‘사고’라 칭한다. (물론 스튜디오에서 앵커나 패널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는 사건도 사고가 될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신호 문제인가?’ 하고 말 작은 문제가 스튜디오와 기술팀에서는 난리가 나는 거대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말했듯 대중에게 ‘방송사고’는 또 하나의 콘텐츠다. 시청자들은 이미 흥미로운 즐거움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에서 마저도 지루함을 느끼다 못해, 거기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예외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방송사고’라는 말에는 (요즘 표현으로는 ‘도파민’이라 불리는) 더욱 큰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의 욕망이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런 대중의 욕망을 극대화한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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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토크쇼


 

한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심야 토크쇼 ‘올빼미 쇼’. 이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차 뜸해진다. 방송 제작진과 출연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화려했던 과거만큼의 수치를 회복하지는 못하며 프로그램은 폐지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중 방송국에서는 ‘올빼미 쇼’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영매, 최면술사 등을 초빙해 ‘오컬트’를 컨셉으로 하는 회심의 라이브 쇼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그램 생방송 중 알 수 없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방송에 보여서는 안 되는 장면들이 전파를 타게 된다. 현장에 있던 방청객과 전파를 통해 사건을 목격하게 된 시청자들은 눈앞에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모두 패닉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그리고 47년이 지난 현재, 시간이 지나 잊힌 그날의 방송 테이프가 공개된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는 과거 발생했던 방송사고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영상을 발굴해 ‘보여준다’는 것과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방송인 ‘잭 델로이’의 캐릭터에 더욱 방점을 찍고 나아가는 영화다. 이는 사건 당일의 방송본을 보여주기에 앞서, 70년대 미국의 혼란스러우면서 화려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잭 델로이가 ‘올빼미 쇼’를 맡기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상당히 자세하게 보여주는 인트로에서 잘 드러난다.

 

다소 긴 설명에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문제의 방송을 보(여주)기 위해 빠질 수 없는 맥락이기도 하다. 사실 방송은 사회의 맥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현실을 잊기 위해 방송에서는 어떤 것을 도전해 왔는가? 그에 대한 답을 일부 보여주는 것이 ‘올빼미 쇼’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걸어온 길이다.

 

또한 영상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이미지도 방송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한때 한국의 방송가에서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주요 예능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그것은 하나의 권력이 되고 ‘라인’이 되었다. ‘국민 MC’가 된 자의 인생까지도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호감도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잭 델로이의 삶은 그러므로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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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라는 환상


 

영화는 시작부터 ‘미공개 테이프’를 ‘공개’한다고 자신 있게 설명한다. 이런 인트로를 보며 <악마와의 토크쇼>를 보는 관객들은 무언가 날것의, 실제 있었던 일을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전체적으로 관객들이 바랄 내용을 선별해, 아주 깔끔하게 포장한 또다른 방송 편집본에 불과하다.

 

다시 영화의 인트로로 돌아가자. 대뜸 70년대 미국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 역시 계획적으로 선택된 영상들이다. 대중에 드러난 잭 델로이의 삶에 대한 내용 역시 철저하게 계획된 내용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암 투병을 하다 이별하게 된 잭의 아내의 이야기와 영상이 나오고, 기가 막힌 시기에 방송에 복귀한 잭과 그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이 모든 영상의 끝에는 TV 쇼에서 중요한 게스트가 나옴을 관객에게 알리듯 문제의 테이프 영상이 공개될 것임을 큰 자막으로 소개한다.

 

이런 종류의 파운드 푸티지, 특히 방송에 관련된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관객(대중)은 생각보다 더 날것의 영상에 대해 항상 갈망하고 있고, 기존의 방송 포맷은 매우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악마와의 토크쇼>와 같은 작품의 존재가 허상과도 같은 ‘실제’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대중의 욕망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러나 영화에선 당연히 이런 대중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눈앞에서 최면을 걸고 사람이 구토해도 그저 효과음과 같은 탄식을 낼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대중매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그저 대중의 환상을 채우기 위한 영상의 향연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환상을 채우는 영상물이기에 더욱 흥미롭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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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편의 존재들


 

크리스투는 모든 악몽이 시작되던 시기에 올빼미 쇼에 나타난 출연자다. 그는 영매로써, 자신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 주장한다. 올빼미 쇼의 방청객들은 그의 능력을 반신반의하며 그를 지켜보고, 다른 패널은 회의론자를 자처하며 크리스투가 하는 모든 행동이 거짓이라 비웃는다. 처음엔 제법 진지한 듯 보던 방청객들도 그를 사기꾼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는 강한 영혼을 매개하던 중 영혼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영상으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가, 특히 스튜디오 등의 촬영 현장은 다른 많은 업종과도 같이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가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크리스투와 같이 방송을 위한 장치로 사용되다가 버려지거나 그냥 그렇게 사용되기만 하는 존재는 수도 없이 많다. 방송의 목적상 더 각별한 대우를 바랄 수도 없지만 일회성으로 사용되고 스튜디오 뒤편으로 사라지는 존재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크리스투라 느껴졌다.

 

그러는 한편 카메라는 끝까지 잭의 파멸을 렌즈에 담는다. 그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이 모두 카메라에 담긴다. 분명 이것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환상에서 벗어나 살인까지 저질러 버리며 망가져 버린 잭의 모습을 부감으로 잡는 카메라의 모습에서 다시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상에만 주목하는 방송 카메라의 잔혹함을 보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영화의 시놉시스가 참 인상적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스케줄을 표시한 ‘큐 시트’ 형태로 스토리를 설명하는데,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일단 틀고 보는 방송국 놈들’이라 언급한다. 시청률 경쟁을 둘러싼 방송국의 잔인한 행태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카메라가 주목하는 대상을 확인해 보면 오히려 방송 산업에 대한 노스탤직한 애정까지 보이는 듯하다. 70년대 사회적 배경과 미디어를 다루며 큰 주제로 시작했지만 방송인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끝나는 구성이 아쉽지만 ‘방송국 놈들’ 답게 볼만한 거리를 알차게 보여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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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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