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시간이 지나고 머금어지는 것

글 입력 2024.09.0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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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머금어지는 것이 있다. 마지막 모임으로부터 한 달이 지났나, 아니 두 달이었나. 시간이 참 정신없이 흘렀다. 오늘은 문득 생각이 났다. 더위는 한풀 꺽이는 듯 여전한데 잘들 지내시려나.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반가운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총 넷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났고, 그 중에 한두 번은 사정으로 못 오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을 두고 멀리서 지켜보며 서로의 글을 읽었다. 만나는 날에는 같이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눴다. 충분한 시간 텀을 두고 만나는 느슨한 관계가 부여하는 긴장을 느끼며 읽고 쓰고 함께 고심했다.


글을 쓰는 방식은 그 주체의 윤곽을 명확히 하고, 오랜 시간 써온 글은 필자의 성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우리는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새겨온 나이테를 더듬어보며 각자의 지난 시간과 글에 대한 태도를 감각해볼 수 있었다.


각각의 현재가 궁금해 짧은 시간동안 함께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가 만나서 시도한 40분 글쓰기-단어나 문장을 골라 짧은 시간동안 함께 쓰기-는 주제와 소재의 선정부터 표현양식까지 개인의 개성을 쉽게 드러내준다. 그래서 함께 글을 쓰고 각자의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이 꽤나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피드백은 스스로는 익숙해져 보지 못하는 관점들을 타인의 시선을 경유해 확인하는 좋은 경험이 된다. 글을 쓰고 나누면서 실제로 가진 강점이나 스스로 과대평가했던 부분들이 드러났다. 때로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내 글의 윤곽을 파악할 뿐 아니라 칭찬과 지지를 얻기도 했다. 그 중 한 명이 전해준 내 글에 대한 감상은 지금 내가 나의 글을 명확히 감각하는 단서가 되었다.


요즘 나는 새로운 글을 연습하고 있다. 글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중이다. 쓴다는 행위에 시간을 주는 절대량을 늘려보면서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본다. 그럴 때 기억나는 건 재밌고 잘 팔리는 글을 쓰기위해 노력한다던 다른 이의 말이다.


나도 역시 그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두부터 독자를 잡아끄는 후킹과 흥미로움이 살아있는 글. 집중력이 흩어지지 않도록 주제가 명확하고 적절한 분량으로 서술하는 그런 글. 하루아침에 다 되지는 않을테니 연습은 마저 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짧게 끝마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또 다른 한 명은 글쓰기 습관과 태도에 대한 대화에서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안 좋은 일은 그냥 잊어버리려고 하지 기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어느 슬픈 날 썼던 문장을 보면서 ‘이 문장은 너무도 정확해서 언제고 다시 그때를 떠올리게 만들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나는 감정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기록하는 일이 현상을 붙잡아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지 않고서는 무언가를 쉽게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쓰는 만큼 그 사건에 오래 매여있기도 했는데, 왜 지난 일을 있지 못할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일종의 해답이 되었다.


슬픈 일은 술이나 먹고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도록 둔다던 그 사람의 말이 가끔 떠오른다.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지금의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기록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 어떻게든 문장을 써내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던 지난날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피드백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것들이 어느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타자라고 생각했던 새로움들이 어느새 내 안으로 편입되어 필요한 순간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머금어지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너와 나는 그렇게 조금씩 섞여들어가고, 우리가 된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각자에게 필요한 순간에 그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일렁이며 섞여들어간 흔적을 보는 일이 퍽 마음에 들어 나는 바람 부는 계절에 당신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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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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