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세상과 화해하지 않고 떠날 거야 - 연극 이방인

극단 산울림의 연극 이방인
글 입력 2024.09.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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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뫼르소


 

8월 26일, 모든 사람이 나를 바삐 스쳐 지나치는 월요일에 연극 <이방인>을 만났다.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극단 산울림의 화제작.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그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이 담고 있는 강렬하고 선명한 인물들의 이미지와 극적인 사건들을 원작에 충실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이 가진 연극성을 극대화하여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인공 뫼르소. 같은 피를 가진 프랑스인들에게조차 이방의 사람처럼 낙인찍혀 있는 사람이었다. 작품의 배경은 알제리, 뫼르소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살아가는 ‘프랑스인’이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지나치게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 빛’에 이성을 잃고 알제리 사람인 어떤 아랍인을 다섯 발의 총격으로 사망하게 한다. 이후 관련한 사건에 대해 재판을 받는데,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삶에 대해 고뇌하다 형을 집행당한다.

 

 

 

뫼르소는 무감하지 않았다


 

뫼르소의 주변인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고, 밀크커피를 마시고, 바다에 놀러 가 연인을 만나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그를 비난한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실체로서 구현된 뫼르소의 표정과 몸짓, 태도와 말씨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절대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감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이 어쩐지 낯설고 두려워 식사를 권하는 경비의 권유를 마다할 수밖에 없었고, 입에 음식이 들어가지 못하니 밀크커피라도 마신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쏟아지는 감정들이 버겁고 착잡하여 담배를 태운 것일 테고, 느끼고 싶지 않아도 쏠려 내려오는 슬픔을 잊어내고자 바닷가에서 연인을 만나고 함께 영화를 본 것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겉으로만 표상되는 행위와 언어들은 내재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하니 말이다.

 

 

 

모든 상식이 옳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끼던 뫼르소는 ‘태양 빛’에 의해 극심한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다. 여기고 태양 빛은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장례식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어머니의 장례 날, 유독 극심하게 내리쬐던 그 햇빛. 그 햇빛을 마주하거나 떠올릴 때마다 뫼르소는 그 태양빛이 곧 자신을 ‘죽일’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결국 레이몽과 그 연인의 사건으로 대치하던 아랍인들 중 한 명을 총격으로 살인한다. 이때도 뫼르소는 당시 아랍인이 들고 있던 칼날에 반사된 ‘태양 빛’이 자기 이마를 찌르고 눈을 파버릴 것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죽음을 떠오르게 하고 결국 뫼르소가 아랍인의 죽음을 건져 올리게 만든 태양 빛. 그것은 뫼르소 나름의 슬픔과 애도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살인자 혐의로 재판에 선 뫼르소에게, 사람들은 ‘아랍인을 죽였음’보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결국 뫼르소는 사형에 처한다. 여러 죽음에 발을 들이며, 뫼르소는 비로소 삶과 죽음을 실감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오히려 삶에 대한 열정을 의식하게 된 뫼르소는 자신의 부조리함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넘어 삶 자체가 가지는 부조리함, 즉 어차피 죽음으로 귀결되므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 자체가 던지는 가장 심오한 질문을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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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과 화해하지 않고 떠날 거야


 

연극에서 나에게 있어 가장 인상 깊던 대목은, 뫼르소가 감옥 방 침대 아래에 뒹굴어 다니던 한 신문에 나 있던 체코 소녀의 이야기였다. 소녀는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환경을 부정하고 간절히 꿈꿔오던 바다에 대한 집착 어린 동경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타국으로 물 건너간 오빠를 원망하고, 결국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체코 소녀가 세상에 대한 원망을 울부짖으며, ‘나는 세상과 화해하지 않고 떠날 거야’라고 외친다.

 

이 대목이 소설 속에서도 존재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으나, 이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아마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자가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체코 소녀의 경우 뫼르소에게 비교한다면 세상에 아주 강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자신이 좇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인에게 우리 사회에 속해 있으나, 어쩌면 가장 분명하고 명확한 ‘이방인’으로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뫼르소의 지나친 삶에 대한 권태와 냉정 역시 그의 외부를 구성하는 세계의 주변인들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낯설고 지나치게 다른 ‘무엇’이다. 그의 주변인들이 느끼는 뫼르소의 ‘부조리함’은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가 타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조리함은 오롯이 뫼르소 혼자만이 만들어낸 부산물일까? 연극과 카뮈의 원작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해 골몰하게 만든다.

 

극단 산울림의 연극 <이방인>, 9월 22일까지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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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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