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녹색과 안녕하는 계절, 녹색의 의미에 대해서 [문화 전반]

여름의 문학, 색과 계절의 언어
글 입력 2024.09.0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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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우연히 초록과 관련된 두 개의 시를 발견했다.

 

['햇빛 끝에 매달아 싱싱하게 살 채우는 진한 초록으로 서고 싶다.'] - 김미순, <찔레꽃> 중

 

['늦은 밤 혼자 극장을 찾는 사람. 왜 그런 사람의 그림자는 초록색일까?'] - 손미, <동화극장> 중

 

이 시를 읽고 보니 나 또한 뜨거운 낮에는 초록으로 서 있다가 해가 지는 밤에는 그림자마저 초록색인 청년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두 시에서 초록은 어떤 의미일까? 독자가 초록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 같지만, 어딘가 쓸쓸함이 남는다. 초록색이 갖는 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색이 언어가 된다. 녹색은 기호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알고 보면 정말 많은 의미를 전하는 공용어이다. 그런데 문화마다 녹색이 가진 의미에 차이가 있다.

 

사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깊이를 가진 언어로서 녹색은 어떻게 공용어가 되어 삶에 스며들어 있었을까? 떠오르는 작품이 <위대한 개츠비>와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였다. 영미문학에선 어떻게 초록색이 묘사되었는지, 내가 되고 싶은 초록의 의미를 구체화하고자 옛 필기들과 책들을 뒤적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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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자본주의와 욕망의 상징 녹색


 

<위대한 개츠비>는 질투와 욕망으로서 녹색을 작품에 녹여 내었다. 우리 문화권에서 새 생명과 자연 친화적인 의미를 담은 긍정적인 시어로서 녹색에 익숙하다. 반면, 서구 문화에서 녹색은 전통적으로 욕망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읽힌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악한 동쪽 마녀의 피부색은 녹색이다. <위키드>를 떠올려도 사악한 마녀는 항상 녹색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의 선물을 훔쳐 가는 악동 캐릭터 ‘그린치’도 녹색이다. 우리 문화권에서 녹색이 질투와 사악함을 지닌 시어로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돈의 색깔도 초록색임을 인식한다면 그럴싸한 비유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녹색은 가지기를 열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상징하는 색이 된다. 녹색이 무엇을 비추는지를 보면 전형적인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시어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메리칸드림은 그 의미가 조금 더 복잡하다. 주인공 개츠비가 강 건너에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볼 때 그 빛이 초록색으로 묘사된다. 우리 문화식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주인공 '개츠비'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의 그 '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결혼하고 싶어 했던 여인 ‘데이지’와 그의 남편 '톰' 집안은 패션 용어로 친숙해진 그 '올드머니'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들의 말과 행동양식은 출신, 교육, 환경, 집안부터 고결해야 진정한 상류층임을 알려준다. 이로써 개츠비처럼 돈만 많이 벌어서는 그 계급에 진입할 수 없는 냉정한 사회와 자본주의의 거짓말을 들추는 것이다. 여기서 초록색은 개츠비가 상류층이 되고 싶은 세속적인 욕망의 언어가 된다.

 

또한, 질투를 의미하는 녹색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개츠비의 표면적인 욕망의 기저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동기는 성공하고 싶다는 녹색 열망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였다. 그는 사랑을 위한 도구적인 가치로서 자본주의의 사다리를 이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대부분에게 이 욕구의 층위는 뒤바뀌어 있다. '데이지'는 사랑을 택하지 않았고 상류층의 다른 남성과 결혼했다. 그래서 녹색의 가지지 못함에서 오는 질투를 또 다른 녹색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개츠비는 그래서 초록의 빛으로만 이들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은 본래 희망적 가치지만 개츠비에게는 거짓된 희망이었기에 녹색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소설 곳곳에서 녹색이 언급된다. 그리고 불륜과 무르익은 사랑을 표현할 때는 가을의 계절감을 드러내는 색채어가 쓰였다.

 

초록빛을 비추는 것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되며 마지막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색이 등장하는 시점이라는 문맥에서 그 의미를 해석해보면 녹색은 탄생과 자연의 시어가 된다.

 

단어의 형태를 읽는 것과 그 의미까지 제대로 읽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위대한 개츠비>는 색의 언어를 알아야만 주인공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분석하는 데 필요한 법칙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작가의 마음에 더 연결되기 위해서 색이라는 언어적 문법을 알아봐야 함을, 제대로 읽을 줄 몰랐던 다양한 형태의 언어가 이 세상에 더 많음을 느껴 겸손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인간의 욕망이 남기는 흔적을 상징하는 녹색


 

녹색은 빛의 스펙트럼에서 중간에 있다. 그래서 선과 악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일까? 무조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없는 색이다. 그래서 녹색이 ‘도덕’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면 조심스럽게 녹색의 의미에 다가가게 된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인간의 타락과 명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 무겁게 다룬다.

   

작자 미상의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1400년대 중세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서왕 전설로 기사인 가웨인이 녹색 기사를 만나 기이한 일을 겪게 되는 영문학판 영웅담이다. '그린 나이트 (2021)' 영화는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녹색'이 가지는 상반되는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땅과 생명의 색인 동시에 부패의 색이다.”] – 가웨인.

 

[“사람은 집을 녹색으로 꾸미고 옷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바닥에 이끼가 피면 재빨리 닦아내고 살 속에 푸른 고름이 차도 밖으로 빼낸다…. 빨간색은 욕망의 색깔이고 녹색은 욕망이 남긴 흔적이다. 심장 속에 자궁 속에 녹색은 열정이 죽고 우리가 죽었을 때 정열이 사라지며 남긴 흔적…. 죽으면 풀이 발자국을 덮어요. 이끼가 비석을 덮고 태양이 떠오르면서 녹색이 사방으로 퍼지죠. 온갖 색조와 빛깔로. 녹청이 검과 동전과 성벽을 뒤덮고 당신의 모든 것을 굴복시킬 것이에요. 당신의 피부, 뼈, 당신의 미덕.”] - 성주의 부인

 

녹색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성한 녹색의 의미와 ‘녹색 허리끈(가웨인이 부정한 방식으로 얻는 것으로 기사도 정신과 반대되는 가치를 상징)’과 같이 세속적이고 타락과 같은 유혹의 의미 둘 다 가지고 있다. 인간은 녹색이 가지는 대조적인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세속의 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은 ‘신’과 다르게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선택하기에 인간은 욕망에 더욱 집착한다.

 

인간은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들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선택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가웨인의 선택을 통해 녹색의 의미를 구체화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남기는 흔적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말한다. 어떤 녹색을 선택하는지는 순전히 가웨인의 몫이며 가웨인의 선택은 이야기는 인간의 흔적으로 남아 지속될 것이다. 가웨인이 녹색 벨트를 마지막에 제거했기에 그는 명예를 얻고자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 타락한 의미를 가진 녹색 허리끈은 버림으로써 명예롭고 신성한 의미의 녹색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영화 제목이 이끼 형태로 바위에 쓰인다. 또한 해가 비추자 이 이끼는 더욱 퍼진다. 가웨인의 이야기가 현세에 흔적으로 남아 이야기는 후대에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녹색은 그 이야기가 인간이 결국 남기는 흔적의 색이다.

 

욕망의 흔적이 남듯이, 한 사람의 이야기는 남는다. 인간이 죽기 전까지 현세에 남기는 흔적은 명예가 될 수도 있고 타락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생명일지도 모른다. 또한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인식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며 인간의 흔적은 단편적이기보다 양면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에 녹색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한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시간을 기억하는 데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테지만 ‘색’이라는 언어도 있다. 무언가를 상징한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공통된 가치로 인정받는 축적의 과정이다. 사람들에게 의미 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기까지의 초록색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아왔는지의 시간의 스펙트럼을 걸어보게 했던 과정이었다. 분석하는 데 필요한 법칙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작가의 마음에 더 연결되기 위해서 색이라는 언어적 문법을 한번 알아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올여름은 어떤 색으로 기억될 것 같은지 이쯤에서 기분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 여름에는 쉽게 볼 수 있었던 푸릇푸릇하던 녹색과 다음해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시기가 왔다. 여름의 절정을 나타내는 푸른 잎들은 가을로 넘어가면서 울긋불긋하게 익는다. 새로운 다채로움을 더 잘 맞이하기 위해 나의 여름을 잘 놓아주고 싶다. 특별했던 푸릇함이기에 그만큼 소중하게 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서 여름이 내게 준 녹색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신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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