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젊음의 에너지, 이모셔널 오렌지스 내한 공연 [공연]

Emotional Oranges 내한공연을 다녀오며
글 입력 2024.09.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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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코로나로 인해 카페와 공원, 집만을 반복하던 대학생 시절 유독 자주 재생했던 노래가 두 개 있다. Emotional Oranges라는, 얼굴도 모르는 듀오의 'Personal'과 'West Coast Love'라는 곡이었다. 8월 28일 수요일, 이들은 20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의 공연을 100% 즐기고 올 수 있을 만큼 팬은 아니었다. 그들의 대표곡과 좋아하는 비트가 깔린 몇 곡만이 내가 아는 전부니까. 공연 당일날까지도 그들의 모습이나, 해외에서의 다른 무대를 굳이 찾아보려 들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거의 미팅과도 같은 공연이었던 셈이다. 열렬히 환호해야 하는 의무감이 섞인 공연이 아닌, 적당한 온기로 즐길 공연을 원했기 때문이라.

 

입장 시간 30분 전에 도착한 공연장은 제법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오렌지색이 눈에 띄었다. 티셔츠, 두건, 가방, 인형... 아무렇게나 도착한 내 모습이 조금 후회스러웠지만, 괜한 퍼스널 컬러를 탓해보며 무리에 끼어들었다. 마음이 들떴다.

 

행여 준비된 짐 보관함이 다 차버릴까, 친구를 세워두곤 부랴부랴 동전 교환기로 뛰어들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중 곧 예스24라이브홀을 방문할 예정이 있다면, 현금을 꼭 준비하되 보관함이 금세 다 찰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건물 바깥뿐 아니라 내부에도 넉넉하게 보관함이 준비되어 있다.

 

머천다이즈를 구경하기 위해 선 줄은 알고 보니 입장 줄이어서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입장을 했다. 스태프의 수가 많지 않고 공연장도 작아 줄을 세우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고 없이 무난히 안전하게 공연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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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시간은 설렘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인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주홍색 조명은 가수의 존재를 강렬히 보여주고 있었지만, 다리는 아팠고 할 일은 없었다. 어딘가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공연장이 작고 사람이 꽉 차 그럴 수도 없었다. 무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신체적 고통으로 바뀌어버린 순간이었다. 동행인이 없었더라면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지쳤을 게 분명하다.

 

오프닝 공연으로 그들과 함께 작업을 했었던 가수 Chiiild가 올라섰다. 기다림에 지친 관객들이 처음으로 환호하는 순간이었다. Emotional Oranges의 얼굴조차 몰랐던 나는 잠시 듀오 중 한 명이 먼저 무대에 오른 걸까 하는 착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게, Chiiild의 음악은 Emotional Oranges와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다.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요즘 음악스럽고, 신나지만 부드럽다. 덕분에 본공연까지 이질감 없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었고, 나는 새로운 가수를 알게 되어 기뻤다.

 

본공연은 예상보다 더 늦게 시작됐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마음이 조금 불안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트렌디함이 주 무기인 Emotional Oranges의 음악은 곡의 길이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세트리스트를 모두 마치고, 앵콜곡까지 완벽하게 끝났는데도 1시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을 적당한 시간과 더불어 집에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공연은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없다. 한편으론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 그들의 에너지가 주는 생생함이 시간의 흐름을 너무나도 빠르게 만들어서, 그 모든 즐거운 순간들이 찰나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L.A.를 그대로 본떠 가수로 만든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만큼, Emotional Oranges는 여유롭지만 활기가 가득한 음악과 무대를 꾸릴 줄 아는 그룹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선선한 여름날 파도가 치는 한적한 바다를, 뜨거운 여름날 그늘에서 바라보는 보랏빛 노을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거기에 진한 사랑이 기본으로 깔려있어야 한다. A와 V가 서로를 바라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어떤 고민도 사라질 만큼 사랑이 위대한 무언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아주 뜨거웠다. 가사가 많고 빠른 곡이 대부분이라 떼창이 적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곡을 잘 따라 부르고 있었다. 몇 곡의 후렴 빼곤 전혀 준비를 해가지 않아 조금 민망하기도 했는데, 곧잘 따라 부를 수 있게 가사를 띄워주어 노는데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정말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공연이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걸 증명하기 위해 매 세트리스트와 곡을 외워가는 일 없이, 순전히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나는 너무나도 오래 잊고 있었다. 신이 난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공연을 온전히 즐기는 가수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들었던 어떤 열정이 충전되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공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것이 멜로디와 곡의 정서를 향유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이상의 무엇을 얻기 위해 더욱 큰 금액과 시간을 지불하고 공연장에 향할까.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실물을 보기 위해서일 뿐일까, 아니면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일까?

 

Emotional Oranges의 내한 공연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은 게 있다면,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로서의 삶을 벗어날 수 없고, 또 그 안에서 안락함과 열정을 얻는다. 공연장에서 만난 2000명의 인원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강한 소속감을 안겨주고, 우리는 기분 좋은 안정과 에너지를 공유하는 하나의 무리가 된다.

 

집단을 이루는 경험은 우리가 서로 아주 닮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이해가 일치하지 않거나 관심사가 달라 말을 해본 적도 없고, 혹은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만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철저히 익명일 수 있으며, 철저히 친숙할 수 있는 곳. 공연장은 그러한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는 일종의 단기성 인류애 회복 공간이지 않을까.

 

너무나도 즐거운 문화적 체험을 하고 나면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감상에 젖고 곱씹을 수 있어야 하니까. Emotional Oranges의 공연도 내게는 이틀이 필요했다. 그리고 잘 몰랐던 만큼, 그들을 더 알아 갈 수 있는 시간이 몇 날 며칠이고 더 필요하다는 점은 거의 완벽한 기회이지 싶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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