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전거가 있는 동네 [운동/건강]

자전거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순기능
글 입력 2024.09.0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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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원의 행복


 

3만 원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니. 몇 달 전 얻은 자전거를 한참 타던 와중에 든 생각이다. 여기저기 녹슬어 있고 브레이크와 체인을 따로 손봐야 했지만, 굴러가기만 하면 아무렴 상관없다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중고 거래가 존재하는가 싶다.

 

유독 햇살이 쨍쨍하던 날, 동네 성당 앞에서 체구가 작은 할머니를 만나 이 자전거를 샀다. 내 키에 비해 좀 작은가 싶지만, 중고 거래 현장의 어색함과 부주의한 성격 때문에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선 타고 그 길로 그대로 집까지 돌아왔다. 그렇게 만난 3만 원짜리 행복은, 매일 아침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마다 1교시 수업에 대한 짜증을 이마에 맞는 시원한 바람으로 날릴 수 있게 도와주곤 했다.


이렇다 할 전문 지식은 하나도 없지만, 생각해 보면 자전거를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 친구들 동생들과 자전거로 동네를 누비며 즐거워하던 유년기, 강물 위 윤슬을 바라보며 고즈넉한 숲길을 자전거로 지나던 여행, 자전거가 제1의 교통수단이 되었던 유럽에서의 교환 학생 경험까지, 자전거 위에서의 행복은 매번 소중한 추억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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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지역사회에 갖는 순기능


 

그런 나에게 자전거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이 글에서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차원에서 지역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순기능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인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이는 자전거를 통해 중단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특성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자전거 문화는 지역 공동체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동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연구에 따르면 실제 공식 지역사회의 범위와 지역 주민들이 동네로 인식하는 범위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동네를 '잘 아는' 혹은 '친숙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행정적 경계와 심리적 경계가 불일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동네가 친숙함을 근거로 구획된다면, 내가 잘 아는 지역 범위가 넓어질수록 내가 인식하는 동네도 넓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리학자 이 푸 투안은 추상적인 공간에 가치와 애착이 부여되면 장소가 된다고 썼다. 나는 자전거가 생기고 나서야 집 주변을 둘러보고 잘 알게 되었고, 비로소 동네를 사랑하게 됐다. 자전거가 없었을 때는 집과 편의점만 오가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주변은 온통 낯선 것들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게 된 이후, 근처 카페와 공원을 자유롭게 탐방하면서 서서히 동네와 친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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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혹자는 꼭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걷기를 통해서도 충분히 지역을 잘 알게 된다고 말하거나, 그건 교통수단이 아닌 잘 알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문제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물론,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데다가, 역시 걷기만 한 게 없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가 가지는 강점은 여전하다. 걸어서 가기에는 모호한 중단거리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자전거로 체력과 의욕을 보존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걸어서 40분은 귀찮아서 가지 않는 편이지만, 자전거로 10분이라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자전거는 자유롭고 빠르기에 주변을 잘 알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준다는 효율성도 지닌다.

 

또한, 단순히 이동 범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전거는 탑승 시 주변 환경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자동차, 버스, 지하철은 탑승자가 아닌 탑승자가 탄 칸이 움직이며 칸의 안팎이 엄격히 분리된다. 예컨대 기차 안에서는 기차가 빠르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기차를 바깥에서 바라보면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즉, 칸의 안팎은 공기와 시간의 흐름조차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에는 벽이 없고, 몸으로 직접 바람을 맞고 지나가기에 주변 환경과 같은 공기 그리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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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속적인 연결을 위해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더 멀리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을 통해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 속도가 너무 빨랐던 나머지, 나와 먼 곳의 연결은 연속적이기보다는 불연속적이다. 개인, 지역사회, 국가, 세계가 손에 손을 잡고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파편화되어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연결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 때문에 해외에 친구가 있지만 정작 가까운 이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면이 애매한 자전거가 좋다. 걷는 것보단 편하지만 자동차보다는 힘들고, 걸을 때보다 멀리 갈 수는 있지만 자동차만큼은 갈 수 없고, 빠른 듯 느린 듯, 먼 듯 가까운 듯,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극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자전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연속적인 연결을 위해서.

 

 

 

남겨진 과제


 

이러한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단란한 공동체를 꿈꾼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아쉬운 점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릉이와 같은 공유자전거를 포함한 자전거 타기를 일상화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법과 제도는 미비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차도와 접한 자전거 전용도로에 불법 주정차하는 경우는 질릴 만큼 많이 봤다. 자전거 도로가 막혀 있으면 위험한 차도 혹은 내려서 턱을 올라 인도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다는 네덜란드에서는 자동차와 자전거가 차도에서 함께 다니는 것조차 무섭지 않았는데, 이는 자동차는 자전거를 최대한 배려하고 자전거 운전자들도 수신호 사용을 준수하는 등 상호 매너를 지키는 문화 덕분이다. 특히 깜빡이가 없는 자전거를 탈 때 수신호는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자전거의 방향을 예측 가능하게 한다. 물론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도 수신호 사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비물질문화가 물질문화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을 '문화 지체'라고 한다. 공유 자전거의 등장, 지자체 차원에서 자전거 사용을 장려하며 대폭 늘린 자전거 도로 등 물질문화는 발전했지만,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비물질문화는 여전히 아쉽다. 이 점이 개선되어 자전거의 순기능은 누리고 위험과 걱정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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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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