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파트 공화국'이 최선은 아닐 테지요 - 우리네 공간① [미술/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연결하는 집 :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글 입력 2024.09.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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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의 '수백당' 모형. 사진 직접 촬영

 

 

7살 터울의 늦둥이 동생이 과외 선생님도 와 계신 내 방구석에 아지트를 차려놓으면 기분이 어떨까. 붙박이장 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옹기종기 가전들을 쌓아가면서 말이다.


어렸을 적 나는 그 안에 꼼짝 않고 박혀있는 그 동생을 담당했다. 집 안에 있지만,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아기자기한 아지트가 필요했다. 어린 나에게 오빠의 방은 정글 숲을 지나 도착한 오두막처럼 특별하고 아늑해 보였다.


꼬마는 어느새 커서 사무실-집을 반복하는 직장인이 됐다. 어느 순간 집은 잠을 자는 공간 혹은 소중한 가족과 거주하는 수단으로 자리했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 자체보다는 사람이 중요했고, 그 배경은 집중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함께하는 기억의 한켠에는 항상 우리가 머무는 집이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나의 소중한 사람과 수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공간이다. 전시 <연결하는 집 :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그 공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생각해 볼 수 있던 계기다. 언제나 공식처럼 박혀있던 아파트의 형상을 지우고, 삶의 주체인 '내가' 백지상태에서 원하는 공간을 찾게끔 돕는다.


전시 정보 : 승효상, 조병수, 최욱 등의 거장부터 양수인, 조재원 등 중진 건축가, 비유에스 같은 젊은 건축가까지 다양한 세대의 건축가 30팀이 지은 58채의 집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 향유하는 저마다의 기준을 고려해 총 6개 카테고리 <1.선언하는 집, 2.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3.관계 맺는 집, 4.펼쳐진 집, 5.작은 집과 고친 집, 6.잠시 머무는 집>를 마련해 뒀다. 워크숍/영화/강연 등 연관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구성해 놓아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4.07.19 ~ 2025.02.02


 

 

거주자와 건축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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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료부터 생활자료, 모형, 사진까지 다채로운 요소들로 채워진 전시장. 사진 직접 촬영

 

 

전시는 2000년 이후, 이제는 도시에 얼마 남지 않은 소필지 위 집들을 조명한다. 연면적 100평 이하의 크지 않은 공간 속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집에 관한 고민을 일깨운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아파트도, 주택단지도 아닌 하나하나의 집에 눈을 맞출 수 있도록 이끈다.


전시장에서는 건축가들의 작업 노트와 실제 형태를 본뜬 모형, 사진을 한데 모아 살펴볼 수 있다. 설계 시점부터 거주하는 모습까지 온 과정을 톺아보다 보면 마치 그 공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제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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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리스건축의 '언덕위의집' 작업노트. 사진 직접 촬영

 

 

설계 노트를 관찰해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다수 접할 수 있다. 건축가의 설계과정을 담은 건축자료와 건축주의 삶의 흔적이 담긴 생활 자료가 한데 모여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관통하는 핵심 시설부터 집 안의 행복을 향유할 가족구성원 한명 한명까지, 건축가가 중시하는 가치와 이를 찾는 건축주 간의 교감이 담뿍 묻어있다.


일례로 전시에 소개된 '베이스캠프 마운틴'은 건축주와 건축가간의 긴밀한 소통이 집의 완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해당 집을 의뢰한 건축주 부부는 단 5분 안에 짐을 싸 바로 나갈 채비를 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집을 원했다.


김광수 건축가는 이에 화답해 2.5평 비닐하우스 2개와 12평 컨테이너 박스를 결합한 카페 겸 집을 고안해 내며 부부의 환상을 완벽히 충족시켜 줬다.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부부에게 이 집은 완공 2004년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록 든든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전시에 소개된 집들을 관찰하다 보면 집을 만든 건축가의 제작 의도보다 거주자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순간도 있다. 마치 연결하는 집들이 우리에게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요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전시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각자의 삶의 환경을 타인의 삶과도 연결해 볼 수 있길 기대한다." - 전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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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병수의 'ㅁ자집' 뒤로 관람객들이 전시 영상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사진 직접 촬영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능동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강조한다. 이러한 전시의 모티브가 가장 깊이 응축된 공간은 1부, '선언하는 집'이다. 건축가만의 단단한 심미적 기준부터 집에 반영하고자 한 철학까지, 집의 안팎에 강한 의지를 담았다.


가로 13.4m×세로 13.4m 정사각형 형태의 'ㅁ자 집(조병수)'은 마치 네모 박스 같은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천장에 개구부를 딱 하나 둔 채,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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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자집' 스케치. 대부분의 스케치에 집 너머 수풀이 흔들리는 모습을 그려냈다. 사진 직접 촬영

 

 

이러한 ㅁ자 집의 형태는 외부와 거리감을 이루면서도, 뚫린 천장을 통해 그 어느 곳보다 바깥 공간과 가까이 맞닿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는 함께하는 이와 온전한 시간을 누리고픈 건축가의 욕심이 담겼다. 그러면서도 모든 설계도에 경계 너머 수풀이 흩날리듯 등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집은 공간에 반영된 우리의 정체성을 표방한다. 나는 내 일상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가, 평생을 걸쳐 고수해 온 나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이웃과의 소통은 어느 정도 수준에 머물렀으면 좋겠는가, 가족과 함께 꾸려온 삶의 형태는 어떠한가.


나의 공간이 어떠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 떠올릴 수 있다면, 전시 기획자의 의도가 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 다채로운 시각


 

인구절벽은 최근 국가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거론되는 핵심 주제다. 고령화로 연령의 중심추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으며, 청년세대의 불안이 증폭되며 출생률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된 삶의 방식 변화는 크게 3가지 결로 맞물린 채 진행되고 있다.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핵가족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혼자서도 윤택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주변의 인프라는 점점 모여든다.


자연스레 거주 공간 역시 도심 안쪽으로 끊임없이 집중되는 양상을 띈다. 이는 '과밀화된' 도시 풍경을 만들어내고, 이어 일상과 휴식을 분리한 '주말 주택' 열풍으로 이어진다. 일명 촌캉스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열풍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회문화를 반영해, 전시 제목에서도 함의하듯 1부를 이은 전시의 나머지 공간들에서는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집이 소개돼 있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각각 급변하는 사회구조를 걱정하면서도, 수반되는 변화를 포용해 다방면의 해답을 제안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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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앤엘스튜디오의 '얇디얇은집' 모형. 사진 직접 촬영

 

 

특히 5부 '작은 집과 고친 집'에는 도시의 많은 것들이 깎여나가고, 때론 가차 없이 허물어지는 시대에 용기 내어 대응하는 건축물들이 소개돼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지어진 에이앤엘스튜디오의 '얇디얇은 집'이다.


이 집은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만들어진 이형 대지를 기반으로 둔다. 1:10에 불과한 가로세로 비율과 2.5m에 그치는 접도 폭의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젊은 작가들의 위트로 이러한 환경은 보다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원천이 됐다.


건축가들은 지하와 지상1층 공간을 건축주의 작업 공간으로 두는 동시에 2~3층을 거주 공간, 4층을 옥상으로 조성하며 깊은 대지의 특징을 온전히 살려냈다. 작가들은 이러한 집의 모습을 두고 "건물에 다양한 표정이 보이길 의도했다"고 표현했다. 일명 '자투리땅'이라 불리는 곳에 얇디얇은 집을 올려 그 쓰임새를 생생하게 부활시킨 것이다.


전시는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의 "집은 작은 도시, 도시는 거대한 주택"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집을 두고 "가장 사적인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와 외부가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라고 일컬었다. 달리 말해 내가 살아가는 집이 나와 사회를 이어주는 물꼬를 터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집이 가져야 할 역할을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 모른다.


 

 

예고편 [우리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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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관의 워크샵 공간. 사진 직접 촬영

 

 

그렇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집에 살기를 꿈꿀까. 어떤 시각으로 집을 바라볼 때 나다움을 집에 녹여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까.


이번 전시의 특별한 점은 다양한 집의 형상으로 채워진 전시관2로 시작해, 우리네 공간을 직접 만지고 꾸려보는 전시관1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반으로 내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으며, 주말마다 상영되는 여러 주제의 영상 시리즈를 통해 집에 관한 생각을 넓혀볼 수도 있다.


2편에서는 전시관1에서의 경험들에 주목해 본다. 2전시관에서 만나본 건축가들처럼, 직접 내 공간의 기획자가 되어보는 감상을 전한다.


이번 전시 카테고리 2번,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에는 '맹그로브 숭인'이 1인 가구를 위한 집으로 소개됐다. 맹그로브 숭인을 구축한 건축가 조성익이 집필한 책 <건축가의 공간일기>를 통해, 집을 바라봐야 할 시각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진정한 '내집마련'을 꿈꾸는 이들에게, 더 다양한 영감이 닿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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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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