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취향 앞에서 망설이지 마세요

글 입력 2024.09.0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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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는 성수에 위치한 문구 편집샵 포인트 오브 뷰에 다녀왔다.

 

원래는 강남역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고 바로 건대역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새 노트와 펜을 들이고 싶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이 싫증이 나서는 아니고, 내가 쓴 문장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평소에 제트스트림 0.38으로 글을 쓰는 편이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미끄러지는 문장을 쓰고 싶었고, 효율이나 계획이라는 이유로 생각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다.


대기 줄은 예상외로 금방 빠졌고, 1층부터 3층까지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1층은 주로 펜과 노트 등 문구류, 2층과 3층은 본격적인 ‘포인트 오브 뷰’가 드러나는 공간으로, 짙은 우드 톤의 인테리어와 재즈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전시회였던 것 같다. 바다 건너 넘어온 저마다의 이야기로 가득 찬 기록 도구들, 온갖 진귀한 것들이 가득한 전시회.


2층을 둘러보다가 내 취향의 노트를 찾았다. 비침이 심하지 않은 미색 종이를 지닌 노트였는데, 의외로 펜은 고르기 어려웠다. 단순히 ‘다른 펜을 고른다’는 관점이 아닌 ‘나도 몰랐던 펜 취향 찾기’라고 한다면, 시필을 많이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효율이나 계획을 제하고 펜과 노트를 찾아다녔다. 그러니 때가 탈 것 같다거나 얼마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실용적인 이유’는 전부 뺐다. 내 마음에 드는 취향 찾기에 몰두하며 찾아낸 펜은 파이롯트 쥬스업 0.4 클래식글로시 블루였다. 손에 착 감기고, 매끄러운 데다 자꾸 눈길이 가는 묘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깊이 있고, 은은한 윤광이 도는 조용한 색.


펜을 바로 사고 나왔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랬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망설이는 버릇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다음에 와서 꼭 사겠다고 생각하고 돌아가 버렸다. 가게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차분함에 그 자리에 오래도록 있으리라고 여겼다.

 

자주 입고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며칠 전에 다시 가보니 전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증발이었을까? 안정이 사라진 자리는 한없이 가벼웠다. 다른 색으로는 메꿀 수 없는 그런 질감이 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점원은 “언제 재입고가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답을 했다.


음, 불야성의 진열대에서 부서지는 흑연을 닮은 펜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을 뺏기지 않고서 매 순간 놀라워해야 한다. 그런 사랑이란 대단치 않다. 오늘 자 분량의 조소보다 약간은 더 흘러넘치는 감탄과 미련이 맥없이 교차하며 사라지기에. 그러니 마음을 움직이는 만남이라면 다음을 말하지 않기로 하자.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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