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옛것이 가장 진보적일 때 - 뮤지컬 금란방

글 입력 2024.09.0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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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뮤지컬을 애호하는 입장에서, 뮤지컬 <금란방>에 대한 소문은 초연 때부터 무수히 들어왔다. 관극 예절로 '조용함'을 추구하는 뮤지컬과 연극계에 어느 날 나타난 금란방에 대한 소문은 마치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존재 같았다. '배우들이 관객들 사이에서 춤을 춘다더라, 술을 따라준다더라, 공연 시작 전과 시작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더라' 같은 무대 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었고, 이에 더해 종종 SM 플레이가 나온다더라, 여공남수 이야기가 나온다더라 등의 파격적인 주제들도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내가 알고 있는 뮤지컬, 특히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시대극과는 거리가 참 멀었다.

 

2024년 8월 29일부터 삼연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금란방에 대한 정보를 하나 둘 수집하며 관람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크기변환]금란방 4절_0628(최종본).jpg

 

 

 

조선시대에도 금란방에는 디제잉이 있었다!

 

금란방은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작가무극이다. 2018년에 초연을 올리기 시작하여 2022년에 큰 인기와 입소문 사이에서 재연을 마무리했으며, 2024년, 재연으로부터 2년 만에 삼연으로 돌아왔다.

 

금란방은 강력하게 금주령이 내려진 18세기 조선 영조 시대에 있었을 법한 밀주방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조선시대'라는 키워드와 '클럽'이라는 키워드, 서로 멀리 있을 것처럼만 느껴지는 두 개의 키워드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그 무엇보다도 유쾌하게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들에게 찾아왔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화려하면서도 편리하게 개량된 한복을 입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 그들은 최근 유행한다는 춤을 섭렵하여 무대 안에서도, 밖에서도 신나게 몸을 흔든다. 무대에서 조금 더 시선을 올리면 위에는 소극적인 관람객들조차 몸을 흔들 정도로 신나는 사운드로 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클럽 디제이와 라이브 밴드가 있다.

 

'꿈꿔도 좋아, 금란방에서'라는 금란방의 핵심 문장을 노래하며 반복되는 리듬을 따라 관람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즐거움에 몸을 맡긴다. 술도, 이야기도 모두 금지된 그들의 세상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술과 이야기를 추구하며 말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성


 

금란방을 구성하는 주 캐릭터는 총 다섯이다.


첫 번째, 김윤신이다. 세상에는 '이야기와 술을 강력하게 금한다'라고 이야기했으나, 막상 본인은 외설적인 소설에 푹 빠진 왕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신하 김윤신. 그러나 김윤신은 이야기 속 캐릭터에게 이입을 하기에는 너무도 메마른 로봇과도 같은 사내였고, 이에 화가 난 왕은 조선 최고의 전기수(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사람) 이자상에게 이야기 읽는 법을 배울 것을 어명으로 내린다. 그렇게 김윤신은, 이자상이 있다는 소문의 금란방으로 몰래 잠입하게 된다.


두 번째, 그런 김윤신의 딸 매화다. 김윤신의 보호 아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매화는 집안에서 정해준 혼약자 윤구연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분통을 터뜨린다. 그녀에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혼약하여 백년해로해야 한다'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비윤리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마음속 깊이 흠모하는 자가 있었다. 전기수 이자상이다. 결국 그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풀러 가기 위해 어김없이 전기수 아자상을 보러 금란방을 향한다.


세 번째, 영이다. 영이는 매화의 몸종이다. 철부지 같은 자신의 주인아씨를 어떻게든 행복하게 해드리고자 그녀가 택한 방법은 바로 윤구연과 실제로 만나게 하여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 그렇기에 영이는 매화 몰래 윤구연에게 '금란방에 당신의 운명을 바꿀 자가 있다'라는 서신을 전하고, 그 둘을 만나도록 하고자 자신의 주인아씨 매화를 따라 함께 금란방으로 향한다.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네 번째, 매화의 혼약자 윤구연이다. 기가 막힌 운명으로 마침 윤구연은 밀주단속특별수사대 팀장이다. 금란방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사람이 있다는 서신을 받은 뒤 고민한 그는 하나의 결론으로 도달한다.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정도로 엄청난 밀주 단속 제보가 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금란방으로 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네 명의 인물이 각자의 이유로 금란방에 모인 그날, 금란방에는 언제나처럼 중심에서 빛나는 사내가 있다. 그가 입으로 읊으면 없는 존재도 눈앞에서 생생히 전달되는 것만 같다는 전설의 전기수, 이자상이다. 고운 외모와 특유의 카리스마, 아낙네들을 위한 팬 서비스까지 확실하게 하는 조선시대의 진정한 연예인이다.


금란방이라는 작은 밀주방에서 이루어지는 다섯 명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괴상한 만남은, 요란한 소동이 안 날래도 안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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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옛것이 가장 진보적일 때


 

전통적이고, 그렇기에 가장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진보적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묘한 희열과 함께 통쾌감까지 느끼게 되는데, 금란방이 대표적이었다. '현대판 SNL'이라는 김 사다함 한복인의 묘사처럼 금란방은 성적으로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이다. 동성애, SM 플레이, 스님과 과부의 잠자리, 여공남수 등등 다양한 요소가 이 다섯 명의 인물들과 함께 벌어진다.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단어와 함께 극단적인 성에 대한 배척이 무엇보다도 당연시 되었던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어떻게 이런 요소들이 활용된 것일까.


예전, 김 사다함 인플루언서가 '한복을 입고 다니는 본인은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일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퀴어 퍼레이드에 다녀온 소감과 함께 풀어낸 이야기였는데 나는 금란방을 보며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어쩌면 그렇기에 전통이 때로는 진보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전통에 대한 명맥이 얇게 이어져오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은 어쩌면 굉장히 소수의 것이고, 그렇기에 억압되어 있다고. 그렇기에 오히려 그 존재를 드러내며 성장을 갈망한다고 말이다.


 

 

현재와 전통의 적절한 조화


 

금란방은 실제로 관람객들에게 전기수 이자상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공연한다. 이때 현대적인 요소가 이자상의 판소리가 더불어져 굉장히 매력적인 공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과 고수 한 명이 있다. 관람객들은 오직 소리꾼 한 명만을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금란방에서 판소리는 그 틀에서 깨부수고 현대화를 하며 판소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라이브 밴드의 다수의 사람이 판소리의 효과음을 내고, 소리꾼의 옆에서 실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어서 현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뮤지컬'의 형태를 함께 혼합시켰다. 이 전통과 현대의 혼합은 관람객들에게 판소리의 매력을 일깨우는 데에 충분했으며 필자에게는 오히려, 이런 구성의 판소리를 계속 보고 싶다고 갈망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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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지으며


 

결국 금란방의 이야기는 하나다. '내가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도록'이다. 세상으로부터 금지된 것들이 과연 정말 금지되어야 하는 것들인지, 그로 인해 우리는 틀에 갇혀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꿈만 같은 이야기 속에서 나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 뮤지컬 금란방은 9월 28일까지 공연한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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