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난에 대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9.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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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모든 행동의 이유가 되고 모든 생각의 근원이 된다.

 

이 소설은 가난과 관련된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중에는 가난을 짊어지게 된 중심인물이 있고 가난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죽은 인물도 있다. 가난을 경험하고자 가난을 선택한 인물도 있다. 인물들이 가진 가난은 냄새로 나타나기도 하고 초라한 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들의 행동과 말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가난이 몸에 밴 이상 가난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인상 깊었고 기억에 오래 남았다.

 

 

 

1. 가난


 

중심인물은 가난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가난을 가지게 된 인물이다. 가난은 중심인물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다가 결국 마음까지 망가뜨리고 만다. 좁은 방, 통장에 얼마 있지 않은 돈 또한 중심인물의 가난을 상징하지만 중심인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난을 상징하는 것은 ‘냄새’이다. 중심인물이 설음질을 하는 공간은 항상 ‘연탄가스’와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중심인물은 ‘이 냄새는 방에도 옷에도 이부자리에도 배어 있었다.’라고 말한다. 중심인물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는 중심인물이 가난해야만 날 수 있는 냄새이다. 중심인물이 길들여지는 것은 연탄가스와 음식 냄새가 아닌 가난인 것이다.

 

중심인물의 가족은 중심인물과 다르다. 그중에서도 중심인물의 엄마가 가장 가난을 두려워했다. 엄마는 중심인물과 다르게 본인의 몸에 가난의 냄새가 배이지 않기를 바랐다. 알거지가 되었을 때도 엄마는 가족의 처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중심인물이 지켜본 엄마의 행동을 보면서 엄마의 마음이 가난하다고 느꼈다. 그저 창피하다는 이유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마다하고 본인과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비교한 후 열등감을 느끼는 게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보면서 읽었다.

 

여느 가난한 사람들과 다르게 중심인물의 가족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가난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 들었다. 중심인물의 아빠가 사장 노릇을 하며 회사를 세우고 엄마가 그런 회사에 전화를 걸며 ‘사장님 댁’이라는 걸 과시했던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장님 댁’이라는 단어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난을 숨겨주며 동시에 열등감을 가졌던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엄마는 계속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화를 걸면 본인의 가난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중심인물을 뺀 가족 모두가 죽었을 때는 가난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이 죽음밖에 없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인물의 가족에게 가난이란 숨기려하지만 이미 몸에 배어 있어 결국엔 사람들에게 들통 나는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2. 계급차이


 

소설이 시작될 때 상훈은 허연 멸치 눈깔을 징그럽다고 한다. 눈감고 죽은 멸치가 한 놈도 없다는 상훈의 말에 중심인물은 ‘제명에 못 죽었으니’ 그렇다며 상훈을 나무란다. 이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중심인물의 가족이 가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장면이 떠올랐다. ‘눈을 동자 없이 하얗게 뒤집어쓴’ 주검은 상훈이 질겁했던 멸치와 비슷하다. 부자들이 본 가난은 점잖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가난과 마찬가지로 부자 또한 그들의 오만한 태를 숨길 수 없다고 보았다. 중심인물은 상훈을 보며 그에게서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같은 가난을 짊어지며 상훈은 삼만 원이 넘는 돈을 쓰고도 아쉬워하지 않고 중심인물은 두고두고 떠올린다.

 

그 이유는 상훈에게 있다. 상훈이 짊어진 가난은 그가 선택해 짧게 경험한 가난이고 중심인물이 짊어진 가난은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평생을 짊어지게 될 가난이다. 부자들에게 가난이란 잠깐 경험하고 말 한 번의 선택에 불과하다. 가난을 경험했으니 성장했다고 말하는 그들의 오만한 행동은 숨길 수 없다. 가난했던 잠깐의 경험을 ‘귀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상훈은 그의 태를 숨기지 못하는 인물일 뿐이다.

 

중심인물은 가난의 냄새가 몸에 배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중심인물이 가난을 부끄러워하게 만든 건 중심인물과 한 방에 지냈던 부자 상훈이다. 상훈이 돌아간 후 비로소 중심인물은 본인의 처지를 실감한다.

 

가난했던 엄마와 가난했던 이웃들이 있어도 실감하지 않았던 본인의 처지를 상훈의 말 몇 마디로 실감하게 된다. 상훈과 함께해 돈을 절약할 수 있었던 방은 그저 가난한 이의 초라한 방으로 보인다. 상훈이 훔쳐간 가난은 중심인물의 삶의 터전이다. 중심인물이 살아가는 삶, 중심인물의 방, 잡동사니, 중심인물이 모아온 돈과 중심인물을 둘러싼 모든 가난인 것이다.

 

상훈은 부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의해 가난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중심인물은 가난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 상훈은 가난을 감상할 수 있지만 중심인물은 그럴 수 없다. 중심인물은 본인이 살아갈 곳도 선택할 수 없고 본인의 미래를 마음대로 정할 수조차 없다. 매사에 절실해져야 하고 악착같이 굴어야 가난을 조금이나마 이겨낼 수 있다.

 

부자와 가난한 이의 계급차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부자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선택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와 돈을 건넸던 상훈은 쉽게 방을 나가지만 중심인물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방으로 돌아와 가난을 느낀다. 슬프게도 가난은 가난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중심인물과 상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많은 소설 사이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들이었다.

 

 

 

김예은 아트인사이트.jpg

 

 

[김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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