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간극에 굴하지 않는 삶 - 연극 이방인

글 입력 2024.09.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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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은 몰라도 첫 문장만큼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든 소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다. 솔직하게 굴자면, 읽은 지 꽤 되어 기억이 흐릿한 참이었다. 뫼르소의 행동과 사고방식도 놀랍지만 구시대적 가장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살라마노의 행동과 발언도 가히 충격적이었다는 점만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소설 속 인물들을 배우들이 어떻게 재연해 낼지 호기심이 가득한 채 산울림 소극장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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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피곤하다’는 말부터 먼저 꺼내고, 장례를 치른 뒤 여자와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간다. 주변 사람이 이런 2일을 보냈다고 고백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다. 결코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지 않는 감정선을 지닌 것 같기에.

 

하지만 일상을 살아내는 뫼르소는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타인에게 절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랑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확답을 주지 않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지레짐작과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 당장의 기분과 감각을 묘사할 뿐, 자기自己를 위해 타인을 함부로 이용하는 -path는 결코 아니다. 방에 무턱대고 찾아온 레몽을 쫓아내기는커녕 서로 와인잔을 채워주며 대화를 나누고 상실감에 빠진 살라마노 영감에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네는 대목을 통해 본인에게 주어진 당장의 순간에 집중하는 사람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감각에 충실하고 솔직하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가며 돌려 말하지 않고,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몸 상태와 기분이 어떤지 설명한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과 교제하고 있었어도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거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장면은 정말 입이 쩍 벌어진다. 하지만 관객은 이어지는 대사 내내 변함없는 요소 하나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고 지금의 감각이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해 내는 뫼르소의 성격. 들어차는 욕구는 제때 해결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 말과 행동은 단연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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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회는 그런 뫼르소를 인정하지 않는다. 총을 쏜 행위보다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직후임에도 침울함 혹은 애도 그 언저리의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태도와 일련의 행위만을 논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인간은 사형선고를 받아도 무방한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목이 잘려 나가야 마땅한 것처럼. 방아쇠를 당긴 뫼르소의 손보다 어머니의 관 옆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받아 들고 관리인에게 담배를 건넨 손이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다.


더 이상의 할 말은 ‘없다’고 고백한 뫼르소는 감옥에서 한참을 오열한다. 포효 같기도 하고 절규 같기도 한 외로운 외침은 이성만이 가득하다.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간극에 대한 깨달음과 그에 대한 근거만 담은 대사가 쉼 없이 이어진다. 무신론적 대사는 더없이 논리적이고,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생각은 절망적이나 괴리를 해결할 도리는 없다. 더없이 이성적인 인물임을 쉬이 알 수 있는 장면이 계속되고 배우의 호흡이 존경스러워지는 토막이다.


무심해 보이지만 실은 거짓 하나 없이 매 순간에 열정적이었던 한 인간의 삶은 본인들의 잣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회에 섞일 권리를 박탈당하고 종내 인간으로서의 권리까지 빼앗긴 채 끝이 나고 만다. 다만, 마지막까지 사제의 손을 잡지 않은 뫼르소의 선택이  삶을 파괴하기에 ‘빼앗겼다’고 할 수 있을지는 아리송하다. 스스로 박탈한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시간이 갈수록 뫼르소는 용감하지만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배우는 그런 양면성을 막이 내릴 때까지 풀림 없이 보여준다. 무심과 열정, 굳센 이성과 삶에 대한 미련을 동시에 표현해낸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는 서사를 상연 내내 적당한 위트(특히 레몽의 감초 같은 대사가 그랬다)와 열연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무대 가장자리를 둘러싼 동그란 설치물은 바가, 방 안의 의자 혹은 소파, 그리고 감옥의 창살과 벽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장치로 수많은 공간을 연출해 내는데, 공간 연출의 한계성을 단순하면서도 똑똑하게 뛰어넘어 놀라웠다.


소설 <이방인>을 재밌게 보았다면 소극장 산울림에서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이방인’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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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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