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질랜드 여행 기록 - 넷. 남섬의 홍길동 [여행]

글 입력 2024.09.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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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으로 끝맺으려고 한 뉴질랜드 여행 기록이지만, 좋았던 기억이 많은 멋진 날을 차마 생략할 수 없어 한 편을 늘리기로 했다. 테카포에서 그레이마우스로 종횡무진하는, 일명 ‘홍길동’의 날(사실은 이틀)이다.

 

테카포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안은 채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 크라이스트처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카포 호수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평탄해야 했을 그날 오후의 작은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썼던 다른 여행객과 말을 트게 되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같은 버스를 타고 크라이스트처치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침 시간을 같이 보냈었다. 근처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호수 위로 힘껏 물수제비를 던지며 기술을 연마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버스 출발 1시간 전 즈음, 버스가 도착하자 짐을 버스 승강장에 대기시켜 두고 함께 주변을 산책했다. 사건은 여기서 시작이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어 버스로 향하던 중, 그 친구가 커피를 마시겠다며 카페로 향했다. 내심 불안했지만, 어제 만난 사이에 오지랖을 부리긴 멋쩍어 서두르라며 말을 덧붙이기만 했었다. 아직도 후회된다. 친구의 커피가 너무 늦게 나온 탓에, 그새 버스 출발 시간이 지나 버스가 그를 두고 출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버스를 놓치기만 한 것이라면 하룻밤을 테카포에서 더 묵을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짐이었다. 버스 앞에 쌓인 짐들이 꽤 있었는지, 기사가 짐을 묵묵히 화물칸에 모두 실어두었던 것이다. 친구는 짐도 없이 테카포에 덜렁 남겨지게 됐다. 다행히 서둘러 호스텔 측에 문의해 그날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는 다른 여행객들의 차를 얻어 탔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그가 차를 얻어 탔다는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크라이스트처치를 여행하는 내내 걱정으로 가득한 디엠을 보냈을 테다. 천만다행이었다.

 

*

 

다사다난한 하루의 반이 홀라당 지나갔을 무렵, 남섬 최대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걱정과 불안으로 정신이 없던 탓에 주위의 풍경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는 어느 복합터미널에서 정차했고, 그 길로 시내버스에 올라 공항 근처의 숙소로 향했다. 서투른 손으로 뉴질랜드 동전을 세어가며 구글 지도를 꼭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내가 이 도시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트란츠알파인’이라는 관광 열차다. 트란츠알파인은 크라이스트처치와 그레이마우스를 잇는 열차로, 헤드폰 해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관광 상품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머무는 3일간 숙소를 3번 옮겨 다니는 기행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든, 내 나름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크라이스트처치와 그레이마우스를 이 트란츠알파인으로 왕복했느냐? 안타깝게도 내 지갑 사정으로 인해 왕복은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비행기와 열차의 조합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호키티카로 날아 (내 인생에서 가장 작은 비행기를 탔다!) 호키티카에서 그레이마우스까지는 버스를, 크라이스트처치로는 트란츠알파인을 타고 돌아왔다.

 

 

 

작은 모험


 

비효율의 극치라고 할만한 동선이지만, 나는 열차 승강장으로 향하는 그 짧은 여정이 참 좋았다. 처음 가는 호키티카 공항은 상상 이상으로 조그마해 낯설었고, 버스 승강장까지 자그마치 30분의 거리를 저벅저벅 걸어가는 내 행색은 조금 우스웠지만 말이다.

 

고지대의 공항에서 저지대의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보았던 무성했던 가로수길, 멋진 은퇴 부부가 살고 있을 것만 같았던 테라코타 타일의 집, 산책을 나온 듯 표지판을 따라 걷고 있던 부녀가 생각난다. 누가 봐도 주택으로 가득한 주거 지역을 무거운 배낭을 멘 채로 뚜벅거리고 있으니, 비행기에서 뚝 떨어져 낯선 마을을 탐험하는 비행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 주거 지역에서 동양인을 아무도 못 마주쳤기 때문에 외따로이 떨어진 느낌이 더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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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Hokitika라고 적힌 표지판과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정경, 날이 흐려서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걷기에도 편하고 좋았는데,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유일하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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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tan St.라고 적힌 표지판 위 놓은 흰 운동화, 오른쪽 사진에는 작은 야외 책장에 '공공 도서관'이라고 적혀있다. 길을 가다가 발견한 신기한 것 두 가지. 신기하게 버려진 운동화와 작은 공공 도서관이다.

 

 

짐가방의 무게가 꽤 나갔던 탓이었을까, 결국 길의 중간, 잠시 멈춰서 쉴 곳이 필요해졌다. 흠, 이 주택만 빽빽한 마을에 앉아 쉴 만한 카페가 있을까? 다행히 상시 운영하는 푸드트럭을 찾았다. 멋진 브라우니를 판다는 리뷰가 달렸던 카페 트럭은 이동식 코인 세탁방과 함께 운영되는 신기한 곳이었다. 꾸덕꾸덕해 보이는 브라우니를 고르자 금방 따듯하게 데워주신 사장님은 가게 앞 벤치에 잠시 쉬었다 가도 되겠냐는 물음에 선뜻 그러라고 답해주셨다. 단언컨대, 뉴질랜드에서 먹었던 브라우니 중 가장 맛있었던 브라우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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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베어문 브라우니가 찍힌 사진. 브라우니 너머로 작은 집들이 늘어선 거리가 보인다. 한 입을 베어문 후 감동받아 찍은 브라우니의 사진

 

 

다시 길을 나서 어느새 마을의 중심가, 그레이마우스로 가는 버스 승강장은 상당히 찾기 어려웠다. 구글 지도에 승강장이 두 곳으로 나타난 탓이다. 관광안내센터가 있어 길을 물었더니, ‘둘 중 하나는 상행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행인데, 어느 쪽이 무엇인지는 우리도 확실히 모르겠다.’라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아뿔싸!

 

느낌상 어느 쪽이 그레이마우스로 가는 쪽일 것 같냐며 직원의 직감을 물어 다행히 맞는 승강장에 올 수 있었지만, 아니었다면 두 승강장을 이리저리 오가며 공황에 빠졌을 것 같다. 잠시 짐을 맡겼던 키위 센터 직원분께도, 승강장 앞에서 같이 기다리던 행인 분께도 여쭤본 후에서야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레이마우스로 가는 호키티카 버스 승강장은 국립 키위 센터 앞이므로 헷갈리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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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kitika라고 적힌 시계탑. 호키티카 마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시계탑.

 

 

그렇게 장장 하루 반의 ‘홍길동’ 일정을 끝내고, 트란츠알파인의 시작점인 그레이마우스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하늘이 흐린 것이 살짝 불안했지만, 마법 같은 날씨를 기대하며 하늘을 슬쩍 노려봐 주었다.

   

호키티카에 머물렀던 것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나를 위해 브라우니를 데워준 푸드트럭 사장님의 친절과 안내센터 직원의 정확한 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기꺼이 내 짐을 맡아준 키위 센터 직원의 상냥함 덕분에 그 짧은 시간이 작은 탐험이 될 수 있었다. 얼렁뚱땅 짠 동선 계획이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아주 멋진 마을을 만난 덕에 정신없었던 홍길동의 날이 참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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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을 찍은 사진. 흐린 하늘과 바다, 초원이 보인다. 하늘이 영 흐린 것이 불안하더니, 결국 열차를 탈 때까지 날이 개이지 않았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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