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시간은 부끄럽지 않다. -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글 입력 2024.09.0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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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초연한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를 2024년 여름의 끝 무렵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다시 만났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5가지의 이야기가 작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확장되어 간다. 기억 속 아픔을 꺼내며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기도 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 아픔을 조금 희석하는,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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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는 서울의 산에서 다시 만난다. 추억을 나누고 묘한 기류가 흘러가다 식당에서 만난 벨기에 노인의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식당에서 만난 그가 한 “코리안들은 왜 자기 것들을 잘 쓰고 잘 간직하고 잘 키우지 못하고, 걷는 것까지 남의 나라에 와서 하는 거지?” 라는 말에 남자는 밤이 되도록 주변을 걸었다는 기억을 돌아본다. 노인과 남겨졌던 여자는 그의 딸이 한국에서 온 입양아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을 하는 여자도, 듣는 남자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자식의 생전 첫 기억이 울며 깬 비행기 안이라는 것을 안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누구에게나 서사가 있지만 우리는 전부 알 수 없기에 서로를 오독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종종 연극 속 남과 여처럼 서로를 서로답지 않게 만드는 관계를 만나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의 세계를 침범해야만 서로를 알 수 있는 순간, 누군가는 뒷걸음질 치고 누군가는 나아간다.

 

노인의 말이 그들을 멈춰 서게 할 수는 없기에, 그리고 그의 전사를 안 후에는 오히려 그를 이해하게 되기에, 그들은 순례길에서도 한국에서도 걷는다. 같은 감정을 맞닥뜨린 기억을 다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들의 등 뒤로 묻어난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슬로에서 온 남자


 

욘은 자신의 생물학적 어머니를 찾으러 한국에 왔지만 끝내 무연고자로 눈을 감는다. 연극은 욘의 목소리 없이 그를 기리는 말들로 채워진다. 그의 친구와 연출가, 배우가 그 시간을 따라간다. 처음에는 그저 궁금증을 가지고 시작한 생모 찾기 4년 간의 시간을 돌아본다.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아요.’ 라는 그의 편지에는 생모 찾기에 점차 간절함을 느꼈을 순간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욘을 기리는 연극이 곧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연극 같다는 점에서 이 연극의 이름이 오슬로에서 온 남자인 이유를 찾는다. 누군가를 기리기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을 내재한 채 있다는 찝찝함이 남는다. 우리가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를 보며 많은 생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입양을 간 한국 아동은 약 25만 명이다. 그 수많은 삶이 겪었을 차별을 잊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과 함께 얼마나 많은 욘이 세상에 있을지 떠올린다. 연극은 현실과 맞물리고서 암전된다.

 

 

   

의정부 부대찌개


 

무채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의정부 아줌마 부대찌개 집 할머니의 1주기, 할머니를 기리며 가족들은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다. 여기서 유일하게 무채색 옷이 아닌 셔츠와 치마를 입은 사람이 있다. 할머니의 식당에서 일한 띠하다. 친부의 가정폭력을 피해 베트남인 어머니와 도망친 그녀는 단단하다. 어디서나 자신의 자리를 찾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 말 없이 밥을 내어준 할머니의 가게에 정착한다.

 

가족들의 기억만큼이나 띠하가 할머니에게 가지는 애정 또한 막역하다. 어찌 보면 혈연 가족보다 더 할머니의 뜻을 잘 알고 닮았을지 모른다. 피가 섞인 것이 중요할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삶을 살아 나가는 굳건함은 할머니의 다정함까지 닮아 쑥쑥 뿌리내린다. 띠하는 자신이 결정한 성과 이름으로 2대째 식당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연대는 계승된다. 뒤섞인 부대찌개와 함께.

 

 

 

우리의 시간은 부끄럽지 않다.


 

누구나 약자가 된다.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에 따라 뻗어나가는 방향은 달라진다. 하지만 약자로 마주하는 차별만큼이나 연대의 힘도 크다. 낯선 땅에서 마음이 놓이는 순간은 함께 서 있는 누군가의 존재 자체이다. 사리아에서 만난 남과 여, 생모를 찾아 헤맨 욘,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띠하가 그리고 연극을 보는 우리는 연결고리를 본다. 연극 속 모든 관계가 연결된 듯한 복선도 이 모든 경험이 우리 삶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방증이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발화되는 순간부터 조각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화하는 나비효과를 만든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도 그렇다. 지난 시간을 뭉개버리지 않은 이들이 함께 기억하고 웅성거리며 새로운 힘을 만들어낸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렇기에 계속 이야기하고 기억하자고.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9월 8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얼른 극장을 방문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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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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