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뒤돌아 볼 수 있도록, '하나 그리고 둘' [영화]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글 입력 2024.09.0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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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신의 뒷모습을 볼 일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극히 적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얼마 전, 기회가 있기는 했다. 미용사가 나의 뒷머리 라인이 이쁘게 다듬어져 있어 자르기 아깝다고 얘기해, '그래요? 저도 봐도 될까요?'라며 청하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소심한 탓에 뒤 문장을 미처 말하지 못했고 나의 이쁜 뒷머리 라인은 그렇게 내가 볼 틈도 없이 잘려 나갔다. 어쩔 수 없었다. 미용사나 옷 가게 점원에게 말을 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모두 알지 않나. 알지 않나?

 

자신의 뒷모습을 보기란 이렇게 힘든 일이다. 웃기려는 말이 아니다. 혹여 보고 싶더라도 보기 힘들다. 두 개의 거울을 놓는 방법이 있지만 자세하지 못하다. 홀로 카메라를 들고 찍어도 구도를 맞추기 쉽지 않다. 누군가가 찍어준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다. 하나가 아니라 둘일 때 가능한 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2000)'은 이 같은 존재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가 그렇듯 등장인물들은 혼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같이 봐주려 한다. 지나간 삶의 후회, 애인의 숨겨진 마음, 풋사랑을 향한 열정… 뒤로 감쳐둔 각자의 애환을, 그 뒷모습을 깨우치고 달랜다.

 

그리고 하나 더. 에드워드 양 감독은 NJ의 아들인 ‘양양’의 입을 빌려 관객에게 영화가 그러한 의지적 존재이길 소원한다. 수려한 영상미와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대사에 취하느라 놓칠 만하지만, 이는 꽤나 거리낌 없다.

 

아빠인 NJ에게 아빠와 나는 왜 서로의 절반만을 볼 수 있는지 되묻고 이에 대한 해답으로 카메라로 사람들의 뒤통수를 찍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가장 미련한 인물로 나오는 아디에게 그의 뒤통수를 찍은 사진을 건네주는 신 또한 웃음을 터지게 한다.

 

살면서 부담이 되면 뒤로 치우는 편이다. 옷을 좋아해 종종 화려한 프린팅이 들어간 옷을 시도하는데, 거울 앞에 서면 괜스레 내가 작아 보여 프린팅이 뒷면에 있는 옷으로 바꿔 입고는 한다. 조금 더 영화와 결부하자면 떠난 사랑을 잡았어야 했다는 혹은 그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랑의 불완전성을 탓하기도 한다.

 

마주하기 어려운 기억이 삶을 하나둘 뒤덮어 갈 때, ‘하나 그리고 둘’은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라 말한다. 감독 자신이 영화에게 위로받았듯, 팅팅이 할머니의 무릎에서 잠들듯, NJ가 오타에게 삶의 영속성을 배웠듯 말이다. NJ의 데이트와 딸인 팅팅의 데이트가 교차하는 신에서 우리가 무력할 정도의 찬란함을 느낀 이유는 분명 이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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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내가 어리석다 믿는다면 ‘하나 그리고 둘’은 그 구덩이에서 꺼내줄지 모른다. 같은 의미에서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패스트 라이브즈‘도 그러하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도 살아가는 힘을 준다.

 

진정 작중의 양양이 연설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를 통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다면 아차 싶을 테다. 팅팅이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오타가 부르는 ‘Sukiyaki’의 뜻이 그것이었음을.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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