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쩌면 세상에 무감하고 싶었던 - 이방인

소설을 연극으로, 눈 앞에 펼쳐진 <이방인>
글 입력 2024.09.06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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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시작을 어떤 단어로 시작해야 할지 하루 종일 고민했다. 아니 며칠인가. 이곳저곳, 이 입 저 입에서 극찬받는 작품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것은 꽤 부담스럽다.

 

스무 살 학교 내 영화 학회원으로서의 소속감이 가득했을 때, <봄날은 간다>에 대한 비평의 탈을 쓴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을 남긴 적 있다. 5년이 겨우 넘은 최근 다시 읽어보니 엉망 그 자체였다. 아주 어렸던 나이에서 오는 경험의 부재로 영화의 핵심을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 나의 해석은 어딘가 얕으면서 참으로 삐딱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모든 작품이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진다는 것 또한 참 슬픈 일이므로. 연극을 회고하며 조심스레 리뷰를 남겨본다.

 

*


오늘 엄마가 죽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이기에 이를 표현하는 배우가 어떤 말투, 높낮이, 쉼을 가지고 뱉을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처음 그의 음성을 듣는 순간 딱히 기대한 목소리는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울림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아- 이 연극에 몰입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극의 흡입력을 느끼지 못하고 놓쳐버렸다. 그래서 내용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배우가 뱉은 문장 하나하나 의심하기 시작했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나로서, 뫼르소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회의적인 성격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연극에서 어떠한 실마리를 얻을 구체적인 배경을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상황에서 왔을까,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있었을까. 그런 의심 때문에 그의 말이나 태도를 문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배우에게서 무척이나 세상을 사랑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 무한히 방어하는 어린양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큰 세상에서 벌벌 떠는 것을 감추려 노력하는 작은 인간을 연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은 극의 후반부에 가서 더욱더 강해졌다. 소위 ‘그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법정에서 증언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어쩌면 뫼르소는 사람들은 완벽한 내 편이 아님을 진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대중에게 한 증언이 과연 뫼르소를 위한 것이었는가? 겉으로는 엄청난 편인척하며 막상 불리한 이야기만 늘어뜨릴 뿐이었다.

 

감옥에서 혼잣말을 미친 듯이 뱉어내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위로하는 신부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상은 너를 품는다고 온갖 사탕발림들로 진정시키려 했지만, 결국은 위선적인 사람이었다.

 

어쩌면 뫼르소는 세상을 무감하게 살고 싶어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을지도. 그리고 죽음 앞에서 끝끝내 무너져버린 약한 사람이었을지도. 그렇기에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애인을 만들었던 이유, 자신이 마리와 결혼하려했던 이유 모두를, 어쩌면, 정말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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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가 감옥 안에서 머리를 잡아 뜯고, 땅바닥을 구르며 처절하게 외쳐대던 대사들을 귀로 들어 참 슬프다고 생각했다. 앞 문장을 곱씹기도 전에 뒤따라오는 문장들을 이해하려 애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망가지고, 그러면서도 담담한 뫼르소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공포 최고조에 올랐다면 오히려 머리와 마음에 모든 힘이 풀려 차분히 행동할 것 같았다. 원작 소설을 꼭 읽어봐야지 다짐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매체로 끌어오는 것은 건강하고도 좋은 방식이다. 연극으로 구현해 내기 위해 엄청난 구상을 했을 터인데, 대중적으로는 이런 장면을 떠올리는 구나, 반면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꼭 원작을 미리 읽고 감상해야겠다는 작은 다짐과 함께 리뷰를 마친다.

 

 

[박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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