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잠시 보이다 사라지고 말 안개처럼 - 연극 이방인

글 입력 2024.09.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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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방인>이다. 소설을 읽지 않고, 기본적인 줄거리만 파악한 후 관람한 연극 <이방인>은 일반적인 상식과 감정을 가진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지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이방인>이 오랜 시간 동안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유, 그리고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진 이유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사실 그 정확한 이유를 연극을 보는 동안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물론 연극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내 얕은 견해를 통해, 소설과는 별개로 그저 이번 연극만 놓고 보았을 때 느낀 개인적 감상을 전달하고자 한다.


뫼르소는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어쩌면,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감정을 가지지 않은 것인가, 생각될 정도로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래프로 그려보자면, 누군가는 그 폭이 굉장히 클 수도, 누군가는 비교적 잔잔할 수도 있지만, 뫼르소의 감정선을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거의 x축에 수렴하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잔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굉장히 뜬금없이, 어처구니없는 사유로 누군가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원한이 있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100 퍼센트 완전한 실수도 아닌 명백한 '살인' 사건이었다. 그 애매한 사건을 중심으로 극은 전개된다.


극은 뫼르소를 완전한 선인으로도, 완전한 악인으로도 묘사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관람객의 판단에 맡겨진다. 나 또한 이 오묘한 극의 전개를 지켜보며 뫼르소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가도,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대체 이 연극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정답이 없는 고민이 나의 머릿속을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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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의 결론이 나지 않은 김에, 나는 그저 '뫼르소'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순서는 바로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땠을까? 그가 평생을 살아온,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그에게 나타났을까?


보통, 기분이 좋은 날에 산책을 나가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다. 반대로 기분이 축 처지는 날에는 우중충한 날씨에 기분이 더 나쁘기도, 심지어는 날이 좋아도 그 좋은 날씨마저 삐뚤게 바라본다. "난 이렇게 힘든데, 날씨는 왜 이리 쓸데없이 좋아?"하고 말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기 기분에 따라 세상을 본다. 감정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씌워지는 필터인 것이다. 그럼 여기서 잠깐,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뫼르소가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사용한 필터를 장착해 보자. 뫼르소는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크게 분별하지 않았고 기쁨과 슬픔의 온도가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서 그의 세상은, 어쩌면 아무런 필터도 끼지 않은 '투명'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는 투명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바라보았다. 좋고 나쁨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구분할 수 없었던) 자신과 달리 살인 사건으로 인한 '본인의' 재판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무엇이 맞고 틀린 지 증명하고 확인받기에 급급하다.


모든 것이 중요한 듯하게 흘러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재판의 당사자인 뫼르소는 그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간다. 과반수의 사람들이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것을 뫼르소는 이해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좋다'라고 자리매김되어 있는 것에 그는 동조하지 못한다.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자신을 설득하러 온, 하늘에 용서를 빌고 구원을 받으라는 신부의 말에 그가 끝까지 설득되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제 곧 죽는다는 (단두대 처형) 사실 또한 좋고 나쁨이 없는 '투명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매일 밤 자신이 처형될까 두려워하며 잠에 들지 못했지만, 종국에는 뜨는 해를 바라보며 차라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길 바랐듯이. 처음부터 그에게 호와 불호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떤 것이 좋고, 그 좋은 것이 정의되기 위해 반대로 나쁜 것을 규정해야 하는 단순한 이원성의 세계 안에서, 뫼르소는 곧 사라질 안개처럼 살다가 걷혔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을 수증기일 뿐이지만 잠시 우리 눈에 보이다 사라질 안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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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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