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의 몸에 회귀할 'motherland' [미술/전시]

이주, 여성, 자연, 모국을 횡단하는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
글 입력 2024.09.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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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land'란 직역하자면 모국, 엄마의 땅이며, 사회문화적 측면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이때는 '사상이나 운동의 근원지로 생각되는 국가'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에는 아무리 한국이 한민족 국가라고 주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양한 모국을 가진 한국거주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으며, 한국이 모국인 외국거주자도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며 사회의 다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엔 다양한 이동, 이주가 익숙한데, 그 이유는 대체로 '대중이동'인데, 이때 대중이동이란 소규모의 개척이동이 성공하게 되면 뒤이어 커다란 인구이동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고, 사람들은 쉽게 이와 같은 거대한 물결에 휩싸여 이동하는 경향을 부른다.


대중이동이 대부분 전 세계화된 경향에도 아직 비자발적인 이동을 겪는 사람들과 자발적인 이동에서도 새로운 국가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적 어려움이 남아있다. '노스탤지어'와 '향수병'의 개념을 유년기에 모국을 떠난 쿠바 출신 작가인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의 작품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망명과 유학이란 양면을 가져다준 미국으로의 이주


 

아나 멘디에타는 1948년 쿠바에서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을 지지했지만, 반 카스트로 반혁명 세력에 가담했다. 목숨의 위협을 두려워한 그의 가족은 쿠바 청소년을 위한 미국 정부 망명 프로그램인 '피터팬 작전(Operation Pedro Pan)'을 통해 그들을 마이애미로 보냈다. 그는 아이오와주 듀뷰크에 있는 보육원에 배치되었고, 자매와 헤어져 한 위탁 가정에서 다른 위탁 가정으로 옮겨갔다.


어린 시절 가족과의 분리와 고향상실을 경험한 멘디에타는 그 아픔을 해소하려는 방법으로 예술을 택한다. 1966년부터 아이오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졸업 후, 한스 브레더가 조직한 Intermedia 프로그램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문화 증가와 제한된 학제 간 경험에 반대하는 입장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예술적 창의성과 지속적인 도전을 강조하기 위해 예술 중심이 아닌 예술가 중심이 되는 것이 초점이었다. 한스 브레더는 10년 이상 그의 멘토이자 연인이 되었고, 브레더는 그에게 개념미술과 그의 모든 작품을 기록하는 아이디어를 소개하며 그가 전개한 다학제적 미술의 전제가 될 수 있었다.

 

 

 

1970-80년대를 살아가던 '여성 예술가'


 

1968년의 68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사상적이고 실천적인 특이점이 된 시점이다. 그런데도 1970년대와 1980년대 북미의 백인 남성이 대부분인 예술계에서 여성의 몸은 소수자적이었다. 그렇기에 멘디에타가 또한 주요하게 다뤘던 주제는 '여성의 몸'이다. 여성의 몸은 예술가라는 주체와 오브제가 된다는 전통적 예술관에 의해 객체가 함께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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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 Mendieta, Chicken Movie, Chicken Piece, 1972

 


여성에 대한 폭력을 주제로 삼은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72년의 〈Death of a Chicken〉과 〈Chicken Movie, Chicken Piece〉가 있다. 앞선 작품들은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재료인 생명과 죽음을 피로 연결하게 해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탈구하고 오브제가 되는 것은 유기체로서의 몸을 지시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상징으로 강력하게 사용된 빨간 물감, 닭은 후에 많은 페미니즘 예술가가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오브제로서 영향을 주었다. 이로써 멘디에타는 자연 그 자체가 됨으로써 에코 페미니즘의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모국인 쿠바에서 영원성을 찾다


 

멘디에타가 미국으로 망명한 1950-60년대는 쿠바와 미국은 정치적으로 반대의 노선에 있었다. 그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이주가 동시에 일어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상실, 소속감, 잃어버린 정신적-물리적 고향에 대한 강박관념의 감정선은 이후에 그의 작업인 '실루에타 시리즈(Silueta series, 1973-1990)'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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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 Mendieta, Alma, Silueta en Fuego, 1975, silent film transferred to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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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 Mendieta, Imagen de Yagul, 1973, Lifetime colour photo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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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 Mendieta, Untitle, 1976, Colour photograph

  

 

'실루에타 시리즈'의 직관적인 알레고리는 '존재-소멸, 있었는데 없어진'이다. 땅이나 바위 같은 자연에 남겨진 흔적들은 완전히 존재하지도, 완전히 소멸되지도 않은 상실감을 떠올리게 한다. '노스텔지어'의 감정과 이와 비슷한데, 노스탤지어란 사람이 과거의 특정 시기 또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그리워 하지만, 이제는 그 대상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향수'라는 감정은 똑같은 그리움을 느끼고 상황적인 이유로 대상에 다가갈 수 없지만 대상은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는 멘디에타의 개인적인 서사와 겹쳐 자신의 고향인 쿠바는 존재하지만 정신적인 '모국'을 잃어버렸다. 그 때문에 노스탤지어와 향수 사이에서 분열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아프로-쿠바 의식과 같은 범신론적 고대 종교에 대한 관심을 바디 아트, 퍼포먼스 아트와 같은 현대적 관행과 융합함으로써 그녀는 쿠바 유산과의 유대감을 유지했다.

 

멘디에타의 말처럼 "곤충에서 인간까지, 인간에서 유령까지, 유령에서 식물까지, 식물에서 은하까지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보편적 에너지"를 찾으려는 시도인 영원성은 1985년 뉴욕시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마감한 그의 비극적인 죽음과 달리 그가 남긴 사진과 영상, 개념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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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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