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 오슬로에서 온 남자 [공연]

글 입력 2024.09.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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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시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와 동시에 혐오의 시대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틀림과 다름을 배울때 존중도 같이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양한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요즘 시대를 바라보다 보면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다름의 인정과 존중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떻게든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비난하고, 기준을 세워 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선 밖으로 내치는 여러 상황을 목격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존중이 사라지는 혐오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돌이켜보니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오슬로에서 온 남자라는 연극을 알게 되었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5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으로,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경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 피해왔던 그리고 잊고 살았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과 상처, 그리움의 기억들이 담겨있다.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첫 번째는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남녀가 우연히 서울의 등산로에서 만나 산티아고에서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그곳에서 만난 벨기에 노인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벨기에 노인은 한국인은 왜  자기 것을 잘 쓰고 잘 간직하고 잘 키우지 못하고, 왜 걷는 것까지 남의 나라에 와서 하는 것이냐며 시비조로 대화했는데 그 이유를 그의 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 많은 아이들이 국제 입양되었다고 한다. 수치로는 약 45만 명인데 그중 절반 이상인 25만 명의 아이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벨기에 노인의 눈에는 한국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도덕한 나라로 비친 것이다. 극 중에서 벨기에 노인은 shame on you라는 말을 던진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부끄럽고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연극을 보며 받았던 느낌을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부끄러움은 이러한 아픈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그리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실망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벨기에 노인의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너무 빨리 잊어버린 게 아닐까.

 

 


오슬로에서 온 남자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네 번째 이야기였다. 주된 내용은 노르웨이로 입양 간 뒤  늦은 나이에 생모를 찾고자 한국에 왔다가 결국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욘 크리스텐센의 이야기였다. 극을 보며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에는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미셸자우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랜 시간 생모와 함께 자란 미셸 자우너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데 어렸을 때부터 생모와 떨어져서 자란 욘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힘들어했을까.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며 더 깊이 집중해서 극을 바라볼 수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전홍기혜기자님은 입양은 생부모와의 헤어짐을 기반으로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부모와의 만남에만 초점을 두고, 실제로 많은 입양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를 통해 국제 입양되는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짊어지고 갈 상처, 혼란, 어려움 등을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어서 한국은 해외입양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입양에 대해 너무 숭고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그 이면에 있는 크고 작은 아픔들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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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회차에는 연극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프로그램에는 해외입양에 관해 오랜 시간 취재한 전홍기혜 기자, <오슬로에서 온 남자>를 연출한 박상현 감독 그리고 이동영, 이상홍 배우가 함께했다. 사실 극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과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욘 크리스텐센을 연기한 이동영 배우는 답답함을 가지고 연기했다는 말을 했고,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에서 남자역을 연기한 이상홍 배우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스스로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연기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배우가 느끼는 그 감정은 어쩌면 모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이동영 배우가 답답함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한 것처럼 극을 관람하고 난 뒤 이유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는데 이는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느낄 답답함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답답함을 가지고 살아왔을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잠시나마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들의 감정을 느끼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 경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옛날 얘기 싫어하잖아


세 번째 이야기였던 <노량진-흔적>에서 나오는 대사다. 일상 속에서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문장이었지만 극을 통해 들으며 결국 누군가의 아픔, 상처가 계속되는 이유는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지나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일들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하지만 우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공동체 밖에 위치한 경계에 머무르는 소수 사람들의 이야기기 때문이 아닐까.


박상현 감독은 본래 사회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을 주로 연출했는데,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서는 우리가 가진 아픔, 부끄러움을 다 품어보자는 마음으로 극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섯 번째 <의정부 부대찌개>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가 모여 하나의 부대찌개가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기도 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임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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