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치, 박치 그리고 춤 [문화 전반]

춤은 잘 추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 입력 2024.09.0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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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버킷 리스트를 작성할 때면 아주 추상적이지만 꼭 리스트에 넣고 꼭 지키는 항목이 있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해보기.’


어떤 일이든 처음을 앞두면 두렵고 망설이게 되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꽤 재밌다. 무엇보다 나의 경험과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2024년, 버킷 리스트를 이뤄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은 ‘힙합 댄스 배우기’로 정했다.


내가 본 몇몇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억압당하는 현실 속에서 마지막에 춤을 추며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춤은 자유로울 때 추는 거야.’ 나는 그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상황에 있는데 왜 춤을 추지 않는지 의문이 들곤 했다. 그래서 춤추는 그들의 몸짓과, 함께 춤추는 카메라 앵글을 보면 때때로 춤을 추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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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춤이란 어떻게 추는 것일까? 나는 춤추는 방법을 몰랐다. 그렇게 힙합 댄스를 배울 결심을 했다.


다양한 장르의 춤 중에서 ‘힙합’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뱅크 투 브라더스(BANK TWO BROTHERS) 라는 댄스 크루를 빼놓곤 얘기할 수 없다. 이들은 스트릿 맨 파이터라는 댄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힙합 댄스 크루다.


내가 그들로부터 접한 힙합 댄스란 묵묵히 본인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적은 방송 분량과 덜한 인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승 트로피는 그냥 지나쳐버리고 대신 싱잉볼을 두드리며 명상한다. 그러다 탈락할 위기 앞에서도 잘했다는 말보단 재밌었어? 라는 말을 건넨다. 그들에겐 항상 여유가 넘쳤으며 다른 크루를 이기기 위한 경쟁과 비교 대신 자신들만의 춤을 추는 것 그 자체에 집중했다.


그들을 통해 본 힙합 댄스는 자유분방했다. 같은 동작을 해도 각자의 스타일로 해석해서 추기 때문에 다 다르게 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안 맞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개성을 담은 것이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칼군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여러 사람이 완전 똑같이 추는 것은 중요한 평가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모두 같은 타이밍에 같은 각도와 거리로 움직여야 하고 누구 하나 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가 아는 춤을 잘 춘다는 여러 정의 중 하나였다. 항상 규칙적이며 남이 보기에 틀려서는 안 되는 것.


언제나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이 추는 춤은 잘 추는 춤이었다. 그래서 뱅크 투 브라더스에게 있었던 차별점은 각각이 원하는 대로 자유로이 즐기며 추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틀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서로 다 다른 방식으로 춤을 춘다. 그것이 힙합 댄스의 매력이었다. 하나의 동작을 하더라도 다 다르게 본인만의 색을 담아 소화해 내는 것. 그것이 개성인 장르. 그래서 정답이라는 것이 없다. 그저 리듬을 타고 같이 춤을 추며 음악을 즐기고 싶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 꿋꿋이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며 최종까지 간다. 마치 묵묵히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좇아도 좋다고 증명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내가 아는 힙합 댄스가 되었다.


그러자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런 힙합 댄스를 춘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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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난 박치, 음치, 몸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춤춘다는 것을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로 여기게 되었다. 춤은 사실 막상 하게 되면 재미있는 일인데 말이다.

 

춤출 일이 별로 없는 일상 속에서 춤추는 것은 어색한 일이 맞다. 사람들로 빽빽해서 내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비좁은 지하철, 8시간 앉아서 일하느라 서 있을 일도 별로 없는 회사, 지쳐서 돌아와 침대부터 찾아 누워 버리는 집. 그 어느 곳에서 어떤 때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래서 댄스 학원을 등록했다.


내가 학원을 등록한다고 했을 때, 잘 못 춰서 댄스 학원을 한 달 다니고 말았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저 더 재밌게 즐기며 살고 싶었다. 잘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잘 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상대적인 것은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항상 비교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남들이 어떻든 상관없이 틀리더라도 티 나지 않는 춤, 애초에 틀렸다는 것이 없는 춤. 매번 달라도 괜찮은 춤.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춤. 이 개성 넘치는 장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첫 수업을 받았다. 역시나 거울 속 내 모습은 웃겼고, 내가 내딛는 한 발자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박자 느렸다. 마음만치 따라오지 않는 몸이지만 어찌 됐든 웃었으니 좋은 일이고, 음악에 맞춰 손과 다리를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괜히 즐거웠다. 그 속에선 템포에 맞춰 움직이기 위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내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음악에 귀 기울여줄 태도까지 배우는 중이다.

 

선생님은 그냥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만의 컨셉을 잡고 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답이랄거 없이 본인만의 스타일대로 즐기며 추는 것이 잘 추는 춤이라는 힙합 댄스처럼, 앞으로 하는 모든 것들에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며 즐기는 것이 잘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거울 속 내 모습이 웃긴다는 이유로 춤 배우기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수업을 한 번밖에 듣지 않았지만 잘했다기보단 재밌었기 때문이다. 나의 스타일을 찾아 스스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 음악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는 묵묵히 해보지 않을까 싶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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