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하는 나혜석① [도서/문학]

[구미만유기]로 나혜석 톺아보기
글 입력 2024.09.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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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근대 한국의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미술과 문학 활동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며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도전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비참한 말년으로 인해 퇴폐적이고 비극적인 인물로 오랫동안 치부되어 오기도 했다. 이는 그녀가 강요된 모성애, 자유연애 등 동시대의 신여성과는 구별되는 급진주의적인 자유주의 여성해방론을 생활 태도에도 저돌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런 그녀의 발자취를 문학적으로나, 최초의 여성 화가로서 미술사적으로 분석하는 글은 꽤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구미 여행에 대한 문화 지리적 접근을 바탕으로 한 분석은 미미한 상황이다. 나혜석은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 서구의 가족제도와 여성의 지위를 목격하며 서구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토대로 새로운 정체성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그녀의 서구 체험과 재현 방식은 여행 이후 현실로의 복귀와 좌절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혜석의 구미 여행기에서 드러나는 서구 문물과 근대성에 대한 인식과 체험을 특정하고, 이런 서구 문물에 대한 체험이 이후 나혜석의 여성주의적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과 함께 1927년 6월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하얼빈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유럽의 파리, 제네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지를 여행하고 1929년 3월 부산에 도착하였다. 이 부부 동반 여행은 1921년 9월부터 일본 외무성 소속으로 만주 안동현 부영사를 지내던 김우영이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일종의 포상이었지만, 동시에 나혜석에게는 서양의 미술 세계를 탐구하는 유학의 성격도 띠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혜석은 여행과 관련한 다수의 글을 발표하는데, 그중 1932년 12월부터 1934년 9월까지 『삼천리』에 총 9회에 걸쳐 「구미만유기」라는 제목으로 구미 여행기를 발표하게 된다. 이 글은 나혜석이 어떤 관점에서 서양을 인식했는지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나혜석_파리풍경_1927-1928_2974.jpg

 

 

「구미만유기」에서 나혜석은 동시대의 서구 여행기와 변별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나혜석이 ‘여행자’로서의 시선으로 서양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당시 서구로 여행을 떠난 식민지 지식인들은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떠올리고 교육과 계몽에 대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나혜석은 서구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대부분 조선의 현실과 연결 짓지 않는다. 또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보다 호화로운 ‘여행’ 자체를 보고 즐기는 ‘여행자’ 본연의 모습에 충실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여성과 가족제도 문제와 만나면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때의 서구 체험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연결되어 서구 여성의 삶과 가정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드러내고, 조선의 여성 현실을 개선하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처럼 여성과 가족제도와 관련된 서구 체험은 이후 나혜석의 여성주의적 가치관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나혜석이 남긴 여행기 서두의 ‘떠나기 전 말’을 통해 그녀의 여행 동기가 새로운 해외여행으로서의 만유(漫遊)였음을 알 수 있다.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즉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나. 둘째, 남녀 간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이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나의 견식, 나의 경험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면서도 돌연히 동경되고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태리나 불란서 화단을 동경하고 구미 여자의 활동이 보고 싶었고 구미인의 생활을 맛보고 싶었다.


나혜석, 「쏘비엣露西亞行, 歐米遊記의 其一」, 『삼천리』 제4권 제12호

 

 

물론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이 서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혜석이 동시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강한 서구중심주의에 입각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과 다른 세계를 널리 보고 싶은 시각적 욕망에서 출발하는 만유를 새로운 여행의 동기로 제시하는데, 이는 서구의 진보를 확인한 후에 낙후한 현실에 대한 좌절과 각성으로 이어지는 남성 지식인의 여행기와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즉 남성 작가는 사회 계몽이라는 동기를 들어 여행의 개인적 욕망을 감추었으나 나혜석은 자신의 여행이 구경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나혜석이 서구의 기술이나 도시는 동경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도 하는 반면, 서구 여성의 삶에는 주목하며 한없이 부러워한다는 점도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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