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개인의 삶을 통해 풀어나간 역사의 결속, 끝내 해방 - 해방자들

도서 <해방자들>을 읽고
글 입력 2024.09.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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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살고 싶다는 건, 조금은 죽고 싶다는 거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이민자 가족 집단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 놓인 처지와 환경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는 그들의 관계 속에서 첨예한 역사의 상흔을 마주할 수 있다. 각 인물을 각각의 세대로 치환하여 생각하면, 우리는 개인의 삶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 분단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은 인숙, 성호, 헨리, 후란, 이 네 명의 인물의 삶을 한 명씩 차례대로 조명한다. 인물의 이름으로 챕터가 나뉘어져 있으며, 독자는 해당 챕터의 제목이 되는 인물의 시점에서 서술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제주민 학살 현장에서부터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땅에서 바라본 한국의 역사를 <해방자들>은 섬세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만큼 독자가 읽어내기 쉬우나 여러 번 숙고하고, 곱씹어야 할 문장들이 많다.

 

<해방자들>의 저자인 고은지 작가는 디즈니+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진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관해 드라마에서 미처 다 털어놓지 못한, 남은 이야기를 이 소설 안에 가득 담아내고 있다.


작품을 읽으며 특히 성호와 헨리의 서사가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정확히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성호는 인숙의 남편이자 헨리의 아버지이며, 미국에서의 성공을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성공과 인정 욕구 또한 강하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의 품보다 아메리칸드림의 허울 속에 더 깊게 빠져 산다는 점이다.

 

그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아메리칸드림에 심취하여 살아가는 건 꽤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성호가 소설 속에서 살아온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았을 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의 수는 (예측을 능가했다) '아메리칸드림'만을 바라보았을 때 이는 허울과 허상에 머무르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스스로 삶을 이어 나가고자 낯선 땅에 발을 디딘 한국인들은 새로운 관점에서의 개척자이다.


헨리는 자신의 부모님이 살아온 이전 세대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미래 세대 사이에서 격한 혼란을 겪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헨리가 마주하게 된 환경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헨리는 굳건하다. 어릴 적부터 부모 세대의 갈등을 직접 마주하며 자라온 세대로서 더 이상의 혼란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고, 스스로 본인만의 새 세대를 개척해 나가려는 욕구가 강한 인물이다.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의 성호와 헨리가 지금 이 땅에 발붙인 채 살아가고 있다. 어디로 간지도,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이들이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아메리칸드림과 같은 것을 꿈꾸며, 또 다른 누군가는 과거 시대 사상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잔재해 있는 구시대적 사상과 물밀듯 쏟아지는 새로운 사상이 격돌 중이다. 과거 성호와 헨리가 그랬듯,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치열하게 부딪히고 있다. 성호와 헨리는 (무거운) 역사를 뒤로한 채 새 삶을 개척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다만 각자 살아온 세대와 환경이 두 사람 사이의 분열을 일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개인을 탓하기에도,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탓하기에도 답답한 가슴이 뚫릴 것 같지 않다. 우리는 매 순간, 매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냈으니까.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마음은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안고 가야 할 가치다.

 

이 책의 제목처럼, 길고 긴 역사를 살아온 이들은 과연 해방되었을까. 아니면 그저 역설적인 제목으로만 남을까. 그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보편적인 개인의 삶이 모여 비로소 큰 획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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