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편식 없는 저의 플레이스트를 소개합니다 [음악]

프로필 뮤직 플레이리스트 톺아보기 프로젝트 -ep.1
글 입력 2024.09.0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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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어폰 없이 못 사는 사람이다. 가끔은 귀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대부분의 시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이것은 어쩌면 나의 오랜 예민함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지 않나 싶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소음에 참 취약했다. 보통 사람들은 흘려보내는 소리들, 그러니까 도로 위 차들이 내는 소음, 사람들의 말소리 등이 나에게는 너무 큰 자극으로 다가왔고 때문에 귀를 틀어막는 이어폰이 내게는 필수불가결인 안정 장치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음악은 내 일상의 당연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나는 장르 구분 없이 내 취향의 멜로디이기만 하면 즐겨 듣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자주 듣던 음악임에도 가사를 잘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질리지 않고 오래 들었던 음악들은 프로필 뮤직으로 등록해두곤 했는데, 문득 이 기회에 그 음악들을 들었던 시절 나의 기억, 그리고 몰랐던 가사들을 속속들이 뜯어보면 어떨까 싶어 이 에피소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Mirro(미로) – 계절 범죄


 

 

 

괴로운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베어 물은 듯 추억만 고이 남은 채

지샌 새벽 끝 옅어진 달빛처럼 흐려지는

기억은 슬픔도 잊어버린 채

내 생에 지어라 가장 짙은 여름아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계절을 불러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들을 때 종종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날은 영화관에서 평소 자주 보지 않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여느 때와 같이 이어폰을 귀에 꽂았고, 공교롭게도 알고리즘은 나에게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수의 이 곡을 추천해주었다.


평소라면 애니메이션스러운 썸네일과 ‘Jpop 느낌나는 한국 곡’이라는 문구를 지나쳤을테지만, 그날만큼은 이 곡을 들으며 영화의 여운을 남겨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곡은 전주를 채 듣기도 전에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겼다. 전주 멜로디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풍경 소리, 자전거 바퀴가 헛도는 소리는 여운을 남기다 못해 애니메이션 영화 속 인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가져다 주었다.


평소 가사보다 멜로디를 중시하는 나지만, 이 곡의 가사는 멜로디만큼이나 참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모든 가사가 한글로 이루어져 곡의 서정적인 호흡이 끊기는 법이 없었다. 곡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계절 끝자락의 어느 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준비했던 모든 것을 쏟아낸 수능 시험이 끝나던 날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노을을 마주한 순간,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보낸 친구가 동네를 떠나가던 날 코끝을 시리게 했던 겨울의 향까지, 이 노래는 매번 돌아오는 계절 속에 숨겨두었던 기억들을 불러와 향수에 젖게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추억들을 떠올리는 게 씁쓸하다기보다 반가운 걸 보면 어쩌면 정말 계절은 괴로운 감정들만 가지고 날아가나 보다.

 

 

 

스텔라장 – 어떤 날들


 

 

 

어떤 날들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어떤 날은 하늘만 봐도

가슴이 벅차네

 

(중략)

 

우연히 들은 노랫가락에 눈물이

아침에 낸 짜증에 후회가 가득

저녁시간 동네 친구와 급만남

썩 좋은 오늘 하루

 

 

평소에도 스텔라장의 노래는 즐겨 듣는 편이다. 이 곡은 스텔라장의 딩고 라이브 영상을 듣던 중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기게 되었다. 그녀가 영상에서 소개한 여러 곡들 중, 이 곡을 부르던 순간 나는 버스를 탄 채 한강 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이 곡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풍경인데 곡을 곁들이는 순간 풍경에 필터를 씌운 것처럼 새삼 참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니까 이 곡은 평범한 일상을 이루는 조각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 가사처럼 우연히 들은 노랫가락으로 오늘의 시작으로 회귀해보고, 또 오늘의 마무리를 기대해보게 된다. 잔뜩 지쳐 집에나 가고 싶은 순간에도 이 노래를 들으면 굳이 가던 길을 되짚어 한강변에 가서 캔맥주라도 마시면서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멋지게 마무리 지어보고 싶어진다.


어떤 날들은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어떤 날은 하늘만 봐도 가슴이 벅차다는 가사처럼, 나는 사실 감수성이 참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외면하고 살았다. 버석버석하게 살다 보면 무뎌지는 줄 알았는데 이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어쩌면 그 감정에 충분히 충실하도록 나를 내버려 두는 것이 때로는 더 후련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낙수 – 버둥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

쏟아내는 몸에 밴 사랑이

나의 어깨에 닿아도

사실 뭔가 해결되는 게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은

절대로 너에게서 찾을 수 없는데

 

 

이 곡은 전주부터 절대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우울이 찾아 올 때는 차라리 끝도 없이 그 우울에 빠져들어 보는 것이 모순적이게도 위안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이 곡을 통해 알았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노랫가락과 가사이지만 그래서 위안을 준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온 몸으로 사랑을 받고 자란 티를 내는 사람. 그러니까 그건 철이 없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세상의 밝은 면을 볼 줄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을 보고 있다 보면 부러움과 열등 사이의 그 어떠한 검은 감정이 나를 덮치곤 했다.


그 사람의 사랑스러움이 나에게 닿아도 절대 스며들 수 없는 나는 방수 인간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긍정 보다는 비관이 아이덴티티에 가까운 나이기에 빛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얼굴엔 그늘이 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못된 나의 심보에 괴롭던 순간 이 곡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모습조차 나이기에 인정해주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길이라는 걸 말이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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