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나요? ③ - 옥탑방 왕세자 [드라마]

글 입력 2024.09.08 20: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맷변환][크기변환]20240721174411_brqhuoof.jpg

 

 

11회차에서 이각이 연꽃을 어항에서 화분으로 옮겨심을 때 박하가 "그냥 물고기들이랑 같이 살게 두면 안 되는 거야?"라고 묻고, 이각이 "원래부터 따로 옮겨심을 생각이었다"라고 답하는 장면은 300년간 이어진 이각과 박하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장면이다.

 

8회 초반에서, 박하는 어항 속 물고기들을 보고 조선에서 온 이각과 신하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물고기들이 닮았다고 말한다. 그때 이각은 박하를 연꽃 씨앗에 비유하며, 콩알만 한 연꽃 씨앗이 박하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 후, 연꽃 씨앗을 물고기들이 있는 어항에 넣는다. 이 장면은 박하(연꽃 씨앗)와 이각 및 신하들(물고기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11회에서 이각은 어항 속에 넣었었던 연꽃을 화분으로 옮기며 "처음부터 따로 옮겨심을 생각이었다"라고 말한다. 이는 이각이 박하를 밀어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각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자빈(홍세나)과의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이각은 이미 박하에게 스며들었지만, 자신이 조선에서 온 이유가 ‘세자빈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여겼기에 박하를 자신의 곁에서 떼어놓으려는 마음이 비유적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이렇게 옮겨 심어야 죽지 않고 잘 큰다"라는 말은, 박하가 이각과 신하들과 함께 있다가 받을 상처들을 걱정하며 박하가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밀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들의 관계의 끈은 부용이가 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이 운명의 고리는 300년 전인 조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조선에서도 이각과 부용이 이어질 운명이었으니 결론적으론 부용이는 자신이 연모하는 저하(이각)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살아도 죽고 죽어도 살아 몇 백 년이 지나도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결국 부용이의 희생으로 이각도 300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로 올 수 있게 된 것이고 서울에서 부용의 환생인 박하를 만나 사랑하면서 결국 조선에서 자신이 부용과 이어져야 했던 운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결국 부용이가 모든 키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이각이 박하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과 별개로 이 관계의 시작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도 죽고 죽어도 사는 것'='부용(연꽃)'이니까 살아도 죽고 죽어도 산다는 말이 결국 이 드라마 전체를 통하는 주제였던 것이다. 후에 이 얽힌 관계들이 풀려야만 했고 관계들이 풀린 것은 좋지만 그게 부용이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단 점은 너무 마음이 아픈 지점이다. 또한 부용이가 만든 영견에 있던 나비. 그게 이각과 박하 이각과 부용 용태용과 박하를 이어주던 '끈'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세자빈이 죽었을 때(부용이가 대신 죽음) 이각이 들고 있던 영견에 있던 나비는 눈물을 맞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선 그 나비는 미국에 있는 박하에게로 갔다. 이각이 옥탑방에 온 순간 박하와 만났기 때문에 영견에 없어졌던 나비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비는 그들을 이어주고 있었다.

 

박하와 용태용의 결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의 엔딩이 과연 진정한 해피엔딩이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시청자 입장에서 본 결말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진짜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용태용은 이각의 환생인 인물이고, 용태용과 박하가 남산타워에서 다시 만났을 때 용태용이 이각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용태용과 이각이 완전히 같은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박하가 그동안 사랑한 존재는 조선의 왕세자인 이각이지 이각의 기억을 가진 현대의 용태용은 아니다. 용태용이 아무리 이각의 기억을 가지고 환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둘이 동일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각은 조선에서 죽을 때까지 박하만을 그리워하며 살아갔을 것 같다. 박하는 이각의 환생인 용태용을 만나긴 했지만, 박하가 진정으로 사랑한 존재는 이각이었기에 이 드라마는 온전한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결국 이각과 박하의 사랑은 시간과 운명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새드엔딩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하가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용태용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은 간단히 "예" 또는 "아니요"로 정의될 수 없을 것이다. 300년을 걸친 사랑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오롯이 박하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각과 박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들처럼 어딘가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람을 죽을 때까지 못 만나는 것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볼 수 없는 것과 뭐가 더 슬플지 생각해본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슬프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는 전자가 더 힘들 것 같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고, 살아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죽을 때까지 볼 수가 없다는 것이 참 슬픔을 넘어 비참할 것 같다.


'기억만 있다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야'

 

이 대사가 처음에는 세자빈을 두고 한 말이지만 결국에는 이각과 박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둘이 함께했던 기억들이 남아 평생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했음에도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고다현.jpg

 

 

[고다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