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색소폰이 낯선 이들에게 [공연]

글 입력 2024.09.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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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탁하면서도 쨍한 소리, 음의 높낮이가 확실하면서도 그사이를 운전하듯 노니는 주법.


어릴 적부터 일상에서 자주 접하던 피아노/기타가 연상되는 특징은 아니다. 오히려 소거법으로 추려낸 요소들에 가깝다. 음이 흘러가는 피아노와 퉁퉁 튕겨져나오는 기타는 이와 사뭇 다른 인상을 자기 때문이다.


소리의 정답은 색소폰이다. 연주자에 따라 천차만별의 소리가 난다.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 '색소폰'은 익숙한 악기는 아니다.


트럼본•호른과 같이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는 못하지만,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적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는 악기들도 있다. 그리고 흔히 이러한 낯선 악기들에 익숙함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되는 '치트키'가 있다. 멜로디가 익숙한 디즈니, 지브리를 연주해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이 풍부한 사운드로 재탄생할 수 있단 걸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3대 팝 색소포니스트 워렌 힐 역시 '헤이주드', '위 아더 챔피언스' 등 곡 안에서의 흐름이 다채로워 색소폰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음악들을 다수 채택해 연주해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만의 장치들을 마련해, 색소폰의 매력을 대중이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2014년 이후 10년 만에 열린 내한 공연에서 워렌 힐이 어떻게 색소폰의 매력을 연주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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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워렌 힐 공연장 입구에 세워진 가판대. 사진 직접 촬영

 

 

 

선을 칠하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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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내한공연에서 앵콜곡 '헤이주드'를 연주하고 있는 워렌 힐의 모습. 사진 직접 촬영

 

 

공연은 또 다른 재즈 아티스트 '대니 정'의 연주로 시작했다. 간드러지는 끝음과 어딘가 끈적이는 듯한 전개가 특징이다. 가창으로 치면 쇳소리가 섞인 바이브레이션이 연상되는 연주다.

 

그래서 곧이어 등장한 워렌 힐과의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워렌 힐 연주를 들을 때 다가오는 첫인상은 유려하지만, 동시에 한음 한음 유영하듯 음을 짚어나간다는 점이다.


워렌 힐은 함께 등장한 밴드와의 조화를 통해 매력을 극대화했다. 밴드 사운드와 절묘하게 호흡맞춰 색소폰의 매력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때론 경합하듯, 때론 합쳐지듯 악기의 소리가 어우러진다. 색소폰이라는 단일한 악기로 모든 템포를 맞춰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색소폰은 분명 관악기이지만 타악기와 견줄 정도의 텐션감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워렌 힐이 보여주는 연주의 특이점이다. '색소폰을 소프라노처럼 다룬다'는 말이 무척 적절하게 들리는 이유다.


연주를 보고 듣다 보면 굵기를 최대로 높인 펜으로 지체없이 스케치를 이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곡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는 언덕 위를 오가는 자전거의 형상도 엿보인다.

 

 

 

사람 냄새 나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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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힐의 사인이 담긴 앨범. 사진 직접 촬영

 

 

워렌 힐의 공연이 마냥 낯선 악기의 연주 대신 흥미로운 장면으로 남는 이유는 또 있다. 연주에 앞서, 혹은 연주 중에도 이따금씩 그가 들려주는 스토리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딸아이를 위해 스크램블 에그를 해주며 덩실덩실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음악으로 치환했다. 그 작은 아이가 훌쩍 커서 2024년에는 아버지만을 위해 노래를 작곡했다.


워렌 힐의 딸 올리비아 록스는 실제로 가수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딸에 대한 자부심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공연을 이어가는 워렌 힐의 연주에서 딸을 향한 사랑이 짙게 묻어나왔다.


그 밖에도 아내와의 결혼식을 위해 선물한 노래 등, 그의 연주를 접하다 보면 이런 일련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함께 상상하게 된다. 아내와의 불꽃 튀는 로맨스를 떠올리고, 딸과 함께 나눠 먹는 땅콩잼 샌드위치를 그리워한다. 심지어 우리는 아침에 땅콩잼 대신 계란후라이를 해 먹곤 하는 문화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상상이 연주의 결과 부합할 때, 더 큰 공감이 이뤄진다.


관객과의 소통도 놓치지 않았다. 느릿느릿, 여유롭고 조금은 서글픈 느낌의 블루스 템포에서 점점 경쾌해지는 음악을 관객과 함께 만들어간다. '이번 곡은 블루스에서 시작해, 점점 더 빠른 템포로 흘러갈 거야'라는 친절한 안내를 빼놓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툭툭 던져내면서도, 듣는 관객들이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나하나 신경 쓴다는 의미다.


이처럼 다채로운 특색으로 채워진 워렌 힐의 공연에 박수 치다 보면, 어느새 색소폰의 매력에 단단히 설득당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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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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