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 뿌리, 우리, 거리

글 입력 2024.09.0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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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날이 선선해지나? 싶던 일요일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을 관람하러 갔다. 최근 고민하고 있는 주제인 공동체, 연결, 뿌리와 같은 키워드를 보고 꼭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연극에서 또한 나와 같은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이 극은 지난 2022년 공연되어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일상을 들여다보면 입양과 다문화, 성소수자까지 우리가 언급하고 싶지 않았거나, 잊고 있던 기억들이 녹아있다.


연출 및 각본은 박상현 한예종 연극원 교수로, <명왕성에서>, <모든 것을 가진 여자> 등을 집필하고 연출한 능력있는 작, 연출가이다.

 


포스터.jpg

 

 

작품에 대한 리뷰는 공동체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다.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속감은 또 무엇일까?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평생 해외를 안가봤다고 한국 공동체의 속한 사람일까?

10년을 한 직장에서 일했다고 소속감이 자동으로 생길까?

3박 4일 영어 캠프는 공동체가 아닌가?

일주일에 한번가는 성당은 공동체인가?


결국 어떤 공동체를 공동체라고 부르고, 개인이 그곳에 속하기 위해서는 소속감과 관련된 정서와 법적인 제도가 모두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 극은 정서적인 부분에 집중해 소속감이란 뭘까, 우리란 뭘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남녀가 서울의 등산로에서 다시 만나는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이태원의 부동산을 배경으로 하는 '해방촌에서', 아버지 땅 문제로 누나 집에 모여 어릴 적 살던 곳을 추억하는 '노량진에서', 해외입양인에 관한 연극을 연습하는 '오슬로에서 온 남자', 부대찌개집 할머니의 기일에 모인 가족 이야기인 '의정부부대찌개집'으로 구성된 옴니버스형 연극이다. 극들은 서로 은근하게 연결되는 거 같긴 하다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품의 제목인 오슬로에서 온 남자 '욘 크리스텐센'의 이야기이다. 중년의 나이, 생모를 찾고자 한국에 온 그는 끝내 찾지 못하고 한국의 단칸방에서 가지런한 맥주와 소주병에 둘러싸여 생을 마감한다. 그는 생전 한국땅에 묻히고 싶다고 했고, 그의 양부모는 시신양도를 포기한다. 그는 소원대로 한국땅에 묻히게 되었다.


2차 대전 이후 국제 입양된 아동 45만 명 중 25만 명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아이를 팔아 성장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 시간이 흘러 30대-50대가 된  입양아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찾지만, 그 과정은 녹록치 않은 것도 말이다. 조작된 서류, 각종 불법 및 인권침해 사례까지 수많은 언론사를 통해 과거 한국이 행했던 불법적인 해외입양의 사례를 보고 들었다.


욘은 결국 모두가 지상 낙원이라고 하는 북유럽, 노르웨이로 돌고 한국 땅에 묻혔다. 그 어떤 기억도 없는 땅에. 대체 생모가 무엇이고, 뿌리가 무엇이기에 그런 것일까. 극 중 욘은 남성인데 왜 생부는 안 궁금해하고 생모를 궁금해할까. 인류에게 엄마란 무엇인가. 입양아들의 아픔은 무엇일까. 입양을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난 나의 엄마에게 가서 물었다. 낳은 정 vs 기른 정.

 

엄마는 200% 기른 정이라고 한다. 다만 뱃속에 품은 10개월, 태어난 후부터 기른 정은 또 다른 느낌이라고 한다. 낳기 전, 돌잔치, 초등학교 입학, 결혼 등등 인생의 모든 관문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감회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걸 우리 모두는 알기에, 함께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아픔이 입양아, 그리고 부모들에게 모두 있을 거라고 말이다.


결국 나는 모르겠다. 아이를 잉태해 본적이 없으니.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이 가지고있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이제는 준비가 되었어야 한다.

 

*


난 연극을 위한 연극, 예술을 위한 예술적 결론을 좋아라한다. 모든 예술은 현실에 한계를 두고있기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있고 말이다.


이번 극은 우리 현실에 존재하지만,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이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현실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그렇기에 난 이 극의 결론이 과연 어떻게 될까. 연극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그렇기에 현실의 쓴 맛을 더 강하게 감지해낼 재치있는 재치있는 마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만 내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우리 함께 잘 살아봐요' 같은 결론을 보고 너무나 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가들이 보는 미래가 이렇게나 친사회적이고 모범적이라니, 강한 문제 의식에서 시작한 듯한, 지극히 시사적이고 동시대적인 이슈를 가져온 것 치고는 너무나 피상적인,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같은 결말이었다.


예술가들은 기자가 아니다. 교장 선생님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다. 내가 연극을 보러 올때 기대하는 것은 교훈, 기사, 정보 전달이 아니다. 특히나 이처럼 지극히 사회문제적인 이슈를 소재로 다루는 극을 볼 때는 말이다. 예술가로서 실재 사건은 취재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그 재치를 좀 더 기대하고 싶다.

 

결국 우리 모두는 뿌리와 시대라는 필연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어있다. 그러다 눈길이 한번 더 가는 물건이 생기고, 옷깃을 스치는 사람이 나타나고, 흥미진진한 사건을 만나면서 우린 또 우연처럼 살아간다.

 

다시 한번 되내인다.

 

너그러워지자. 우리는 같기에 연대하고 다르기에 존중한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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