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간을 안고 있다는 확신 [공연]

썸데이페스티벌, 참 좋았다
글 입력 2024.09.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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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통째로 행복했던 날은 특별한 날로써 오랫동안 기억되곤 한다. 하루의 매 순간이 행복하기에는 쉽지 않으니깐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아주 약간 더 행복감을 쉽게 받아들인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온종일, 매 순간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매 순간 행복을 느낀다면, 건강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은 행복했던 순간들을 오랫동안 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행복감의 강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투명하리만큼 활짝 웃을 때가 있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좌절과 슬픔을 느낀다. 어떤 감정의 순간들일지라도, 우리가 간직하고자 다짐한 순간들은 특별한 날로써 기억된다.

 

지구를 우주 멀리서 보면 거짓말 같이 푸르르고, 찬란한 것처럼, 우리의 순간들도 모이면 빛날 거다. 하하하 웃는 순간이든, 으앙 울어버리는 순간이든 상관없이. 나는 조각조각 모인 순간들이 우리를 밝혀줄 거라고, 구해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기록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오감으로 그리고 글로써, 영상으로써, 사진으로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

 

"I feel the love 순간을 안고 있어"

 

하현상 곡 magic 속 해당 가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작년 새해 첫 곡이 매직이었고, 그해 새해 목표를 "순간을 안고 살아가기"라고 세웠을 정도로. 곡이 발매된 22년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이 가사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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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1년 간의 해외 생활로 인해 지난 9월, 첫 번째 단독콘서트가 마지막이었던 하현상을 보기 위함이 이번 페스티벌의 가장 큰 예매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공개된 최종 라인업 속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져 주시는 분들이 함께했다. 그렇게 나는 약 두 달 동안 설레며 고대했던 썸데이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썸데이 페스티벌은 내가 이제껏 가본 페스티벌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테이지를 나눔과 동시에 공간 자체를 분리했던 보통의 페스티벌과 달리, 썸데이 페스티벌의 두 스테이지(유니크, 터치)는 붙어있었다. 스탠딩 구역만 나뉘어 있을 뿐, 피크닉 구역에선 모든 스테이지의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유니크 스테이지에서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터치 스테이지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 태양 아래에서 사운드체크 시간을 빙자한 무한 대기를 하지 않아도 되어 행복했다. 썸데이 페스티벌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세상의 소음들을 가득 모아봐요" - 리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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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리도어의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우연히 만난 노래 한 곡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년 초에 발매된 ep 앨범 "Wanna be"의 3, 4, 5번 트랙을 닳을 만큼 열심히 들었다. 리도어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기회가 닿았다.

 

리도어의 모든 곡을 아낀다. 리도어의 곡들에선 리도어의 향이 담뿍 풍긴다. 물을 머금고 있는 듯한 보컬 등대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밴드 사운드는 조화롭다. 꾹꾹 담아 부르는 가사는 찾아서 다시 한번 읽어볼 정도로 진심이 담겨있다. 분명 다양한 소리가 들리고, 연주가 몰아치는데 정신 사납지 않다. 오히려 평온하고, 위로가 된다. 리도어만의 담담하고도 아련한 감성으로 좌중을 압도하고, 공기를 감싼다. 보송한 공기로 가득한 돔 형태의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보컬뿐만 아니라 기타, 드럼, 베이스 모든 멤버의 실력이 엄청나다. 썸데이 페스티벌에서는 드럼 주상욱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미소년의 얼굴로 강하게 드럼을 치는 모습이 말 그대로 청춘이었다.

 

발매된 곡들이 아직 많지 않으니, 실력파 밴드의 노래가 듣고 싶다면 리도어의 음악을 주저 없이 재생하길 권한다. 곧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여 미리 "영원은 그렇듯"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이 세상 사람의 흉터들은 너무나도 다양해요

난 그저 그렇게 흘러갔음 해요

많은 것도 바라지 않을 거예요

세상의 소음들을 가득 모아봐요

아름다운 소리도 꽤나 있을걸요

 

- 리도어 "세상: 소음" 중

 

 

 

"너무도 아름다워" - 하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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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스탠딩에서 즐기기까지 많은 고난이 따른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3~4시간을 기다리다 아파져 오는 허리에 사과한다. 안전 요원들은 주기적으로 생수를 나눠주기도 하고, 무대 위 아티스트들은 관객들이 물을 마시도록 멘트를 하기도 한다. 페스티벌에서는 더위에 지쳐서, 탈수로 응급 처치를 받으시는 분들을 매번 마주하곤 한다.

 

언제나 페스티벌의 다음 날은 몸살이 난 것처럼 근육통으로 인해 고생했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날 무리하지 말 걸 하는 후회를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번 썸데이 페스티벌에서도 나는 스탠딩에서 하현상과 순간을 함께했다. 뒤쪽 순서가 다가올수록, 하현상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점점 더 스탠딩에 사람들이 많아졌고, 점점 더 사람들과의 간격이 좁아졌다. 분명 지쳤는데, 하현상의 무대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해맑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하현상의 무대가 시작되자 햇살 또한 다시 무대를 비췄다. 기타 없이 두 손을 바지 뒷주머니에 고이 넣어놓고 열창한 심야 영화, 비눗방울 덕분에 더욱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던 Magic, 선선한 여름 끝자락 저녁에 어울리는 밤 산책, 처음 라이브로 들은 겨울 ep 앨범 타이틀 Pain, 시동을 거는 것 같은 도입 리프와 하현상의 무심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파랑 골목, 맑고 투명한 목소리에 속에 힘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증명한 하루가, PAN(하현상 팬덤명)과 함께 완성해 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어떤 이의 편지, 마음이 저리는 Koh Samed, 하현상의 대표곡이자 언제나 우릴 위로해 주는 등대, 그리고 확신의 엔딩곡이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듯 기타 치는 파도까지 총 열곡을 선보였다.

 

나는 정말이지, 순간을 안았다. 벅차게 행복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행복해 보이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또한 자연스럽게 벅차고, 배로 더 행복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건강한 관계임이 느껴져 든든하다. 내게 하현상이란 존재는 참으로 힘이 되는 존재인데, 반대도 그러하다는 걸 공연을 통해 확인받을 때마다 뭉클하다. 하현상은 본인을 잔잔하게 좋아할 수 있게 해주는 굉장히 단단하고 다정한 가수다. 애정 표현을 과하게 하지 않고, 본인만의 스타일로 진심을 보여준다. 요란하거나 오글거리는 걸 잘 견디지 못하는 내게 하현상의 담백함은 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 꾸미지 않는 그의 진솔한 마음이 소중하다.

 

언제나 그의 무대와 노래는 "너무도 아름다워"

 

 


 

 

시들어 가는 건

후회 없지는 않겠죠

절대 쉽지도 않겠죠

그래도 아름다워

-

또 다신 오지 않을 날들이여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여

 

- 하현상 "어떤 이의 편지" 중

 

 

 

"Be Be Your Love" - 레이첼 야마가타



 

 

썸데이 페스티벌에 특별한 아티스트가 함께했다. 밝은 달 아래에서 황홀한 무대를 펼친 레이첼 야마가타. 이날 난지한강공원에서 그녀의 라이브를 들은 관객들은 집에 돌아와 그녀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담았을 거다.

 

돗자리에 앉아 레이첼 야마가타의 노래를 들었던 일요일 밤의 공기를 잊을 수 없다.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 울컥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나의 몸과 마음을 맡겼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다정한 눈빛으로 우리를 따스하게 감싼 레이첼 야마가타를 파워풀한 밴드 사운드와 자유롭게 춤을 추던 레이첼 야마가타를 두 눈에 소중하게 담았다.

 

 

 

여름의 끝자락을 함께 해준 아티스트들


 

슈퍼밴드를 통해 알게 된 홍이삭의 라이브를 드디어 들을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황홀해질 만큼 울림 있는 노래 덕분에 잠깐 천국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가 정말 단단하고, 올바르다.

 

이어서 등장한 최유리는 지난달에 갔었던 페스티벌 리뷰 글에서 밝혔듯이 무척이나 아끼는 아티스트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여름의 끝자락에서 최유리의 노래를 들었으니 이번 여름은 무사히 잘 보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힐링했다. 홍이삭과의 깜짝 즉석 듀엣은 설레면서도 편안했다.

 

너드커넥션 보컬 서영주의 싱어게인 출연 당시, 열렬하게 오디션 영상을 돌려 감상했었다. 특유의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와 기타 한 대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금세 더 멋진 아티스트로 성장해 있었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도 종종 너드커넥션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았고, 사실 라이브 공연으로 두 번째 만남이지만, 이번에 처음 실물 영접을 한 것처럼 또 한 번 그들의 퍼포먼스에 압도당했다. 앞으로 더욱더 멋진 락밴드로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펼치길 기대한다.

 

이들의 곡을 음원으로, 이어폰을 꽂고 들어본 적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들의 곡이 페스티벌에서 울려 퍼지면 자연스레 따라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기에 모든 페스티벌의 라인업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멜로망스와 십센치가 노을 진 하늘 아래에서, 깜깜한 맘 하늘에서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돗자리에 앉아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노래들을 들으며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 매너부터 라이브 실력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던 페스티벌 베테랑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끝으로, 썸데이 페스티벌의 막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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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에서 정말 행복한 순간들을 안았다. 썸데이 페스티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믿고 싶다. 걱정스러우리만치 여름의 무더위가 길다. 하지만 이따금씩 가을 냄새를 맡았다. 부디 하늘이 높아지길. 선선한 가을이 성큼 찾아오길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독자분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힘들고 지치고 슬픈 날도 있겠지만, 최악은 아니길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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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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