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국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 소설 해방자들

글 입력 2024.09.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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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떠난 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소설 <해방자들>은 한국을 떠나온 이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아픔과 희망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딛고, 생계와 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지구 반대편, 낯선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이들은 끊임없이 한국에서의 기억을 지니고, 또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시하며 살아간다. 군부 독재 시절, 주인공 인숙의 아버지 요한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목숨을 잃었고, 국가적 억압과 통제의 경험은 성호를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일본 식민 통치와 제주 4.3은 로버트 어머니 고일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어, 삶을 망가뜨린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경험은 로버트를 통일이라는 대의와 신념에만 매달리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의 삶을 아픔과 상처로 얼룩지게 만든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 이러한 경험들은 이들을 결코 한국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한국에 닥친 변화의 바람, 크나큰 사건 사고들은 물리적으로 한국과 떨어진 이들을 또다시 고국과 연결한다. 서울올림픽의 봉화는 어린 헨리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후란에게 큰 충격을 준다.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햇볕정책 등 한국 사회의 변화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해방자들_앞표지.jpg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이민자의 시선이었다.

 

한국을 떠나왔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과 변화의 바람을 직접 겪을 수는 없다. 그들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런 변화와 사건들을 접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기억과 상처가 한국이라는 고국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들에게 고국의 소식과 변화는 자신들과 분리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을 직접 겪어내고 보아오진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과 감회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많은 시간을 살아왔기에 그들은 한국의 급격한 변화가 낯설게, 실체 없는 어떤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살아왔던 외국인처럼.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 한국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안고 한국과 끊임없이 연결되면서도, 자신들이 한국을 떠나온, ‘그 이후의 한국’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한 이민자의 시선을 견지한 채 한국의 민주화, 남북 관계, 산업화, 경제성장 등 한국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신선했다.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삶을 다룬 작품들은 많지만,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그것을 그려낸 이 작품만의 독특함이 있다.


소설 <해방자들>의 주된 갈등이 모두 한국인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고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어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민자들을 향한 시선, 인종차별 등 새롭게 정착한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상처는 사랑과 이해로 봉합되고, 치유된다. 이 작품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아픔과 함께 희망을 그리고 있다고 소개한 이유다. 인숙과 후란의 고부갈등은 서로를 끝내 이해함으로써 해결되고 서로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았던 인숙과 성호는 후란의 죽음을 계기로 진정한 대화를 시도하고, 이 둘의 지난했던 갈등과 서로를 향한 불신도 해소된다. 소설의 결말 역시 가족 간 사랑과 신뢰가 세대를 넘어 이어짐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어떤 이유로든 떠나온 사람들.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 고국을 떠난 이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보인다. 이들은 고국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떨쳐낼 수도 없었고, 떠나온 이후에도 고국과 끝없이 연결됐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이 초래한 과거의 상처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사랑과 공감, 연대로 치유해 냈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해방’됐다. 소설을 덮은 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이유다.

 

 

[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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