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이 나아가는 그 길 위에, 해방자들

글 입력 2024.09.16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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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_앞표지.jpg

 

 

'우리'라고 묶을 수 있는 것에는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 도서 《해방자들》를 읽으며, 한 개인의 삶과 이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및 환경적 영향 등에 대한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나아가서 소설 속 인물들은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나아갔다. 이는 단순히 과거에서 앞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그 기억 속의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해방자의 삶은 계속되었다. 그들이 나아가는 길을 떠올리며, 비로소 '해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헤아려 보았다.

 

책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의 문장과 저자의 감사의 말이 담겨 있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무언가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단어들. '선''빛'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 때, 다시금 '현실적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경계들을 위해'의 문장을 떠올리곤 했다.


한편 저자가 남긴 '언어의 마법'은 보이지 않는 선들 / 동물의 왕국 / 빛의 군락 / 마지막 개체로 나열되었다. 각각[선 - 왕국 - 군락 - 개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 뜻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 싶어서 사전을 찾았다.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

ㆍ그어 놓은 금이나 줄.

ㆍ다른 것과 구별되는 일정한 한계나 그 한계를 나타내는 기준.

ㆍ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맺고 있는 관계.

【왕국】

ㆍ하나의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군락】

ㆍ같은 지역에 모여 생활하는 많은 부락.

ㆍ(식물) 같은 생육 조건에서 떼를 지어 자라는 식물 집단. 겉보기의 특징에 따라 수림ㆍ초원ㆍ황원ㆍ수생 식물 군락 따위로 크게 나뉜다.

【개체】

ㆍ전체나 집단에 상대하여 하나하나의 낱개를 이르는 말.

ㆍ(생명) 하나의 독립된 생물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독립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ㆍ(철학) 단일하고 독립적인 통일적 존재. 철학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이 통일성은 물질적ㆍ양적 측면, 또는 정신적ㆍ질적 측면 따위의 여러 관점에서 고찰되었다.

 

 

이처럼 책의 차례를 비롯하여 이야기의 분위기와 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장치를 발견한다는 것은 '읽기'의 즐거움은 보다 풍성하게 해준다. 작가만의 표현력이 돋보이는 문체와 이 표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언어적 감각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또한 '언어의 마법'은 장면을 '상상'하는 것에 온다. 떠오르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 《해방자들》은 시적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라일락 나무줄기가 드리운 그림자는 방을 가로질러서는 예의 바르게도 뒤편에 있는 문까지 닫아줄 것 같았다. 빛이 쭉 드리우면 바닥 먼지가 풀풀 날리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_p.18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자, 가지가 물 밑에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차가운 물이 내 발목까지 올라와 둘로 갈라졌다. 석호에서 날개가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놀이터에서는 아무도 타지 않은 그네가 앞뒤로 움직였다. 내 뒤쪽으로는 꺾인 능선이 넓게 펄쳐져 평평한 골짜기를 이뤘다. 길게 갈라진 잎들이 공기를 모양대로 찍어냈다. 아래쪽에 자라난 풀들 사이로 물결 모양 하늘이 보였다. 별은 꼭 드넓은 회색 방수포에 뚫린 구멍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구름들이 꼬리를 흔들며 부서졌다. (···) _p.182


 

(···) 꼭 키 큰 풀이 흔들리는 길을 가로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산처럼 펼쳐진 야생화에 발이 얽히고 붉은 동백나무가 바스락거리고 근방에서는 동물들이 풀을 뜯고 앞에서는 개울이 흘러가고 강둑은 모습을 감추고 멀리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_p.242

 

 

시대적 배경 및 인물 간의 관계성으로 점철되는 깊은 감정선, 그리고 국가와 가족 등 자신이 속한 곳에서 부여된 역할 및 개인의 정체성 사이에 선 사람의 이야기

 

초반만 하더라도 '요한'이 소설을 이끌어가며,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해방자'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은 요한이 진정으로 해방에 이르렀는지, 온전히 '해방자'로 부를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가장 모호해진 답을 떠올린다.

 

그의 실종과 죽음 이후에는 이와 비슷하게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부여하는 인물인 '로버트'를 만났다. 로버트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을 끝으로 그의 이야기는 잠시 멈춘다. 다시 한국을 찾아서 비로소 자신의 '이상'을 만났을까.

 

두 인물의 삶은 같은 듯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들은 무엇을 스스로 선택하고, 또한 무엇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한과 로버트가 만났던 인물들, 요한의 딸인 '인숙', 후란의 아들인 '성호'. 그리고 인숙과 성호의 아들인 '헨리'에게 그들의 이름과 생애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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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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