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밤을 보다 - 도서 '화가가 사랑한 밤'

어둡고, 밝은, 밤
글 입력 2024.09.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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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어느 정도의 '클리셰'가 있는 법이다. 보통 은유할 때의 의미가 확립되어 있는 단어들이 꽤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용어의 대표격은 '밤'이다.

 

밤은 어둡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시간, 대부분의 생명들은 잠을 잔다. 그렇기에 이 밤을 바라본다는 것은 꽤나 적적하고 쓸쓸하여 괜시리 고독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 밤을 인용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밤만큼 어두운 것은 많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밤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다.

더 나은 절반을.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생각해보면, 밤만큼 우리 삶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많지 않다. 낮이 있는 만큼 밤이 있기 때문에 딱 절반 정도의 삶을 밤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밤을 왜 '더 나은 절반'이라고 표현한걸까.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아진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어둡고 절망적인 밤이 있기에 희망은 더욱 빛나는 법이고, 밝고 활기찬 낮이 있기에 그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따라서 우리가 이정표로서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힘은 밤이라는 시간 덕분인 것이다. 따라서 밤은 어둡고도 밝다. 우리는 이런 걸 모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순은, 세련된 표현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게 해준다. 밤은, 밝다.

 

밤의 시간을 사랑하고 그린 화가들이 있다. 도슨트 정우철은 그 작품들을 소개한다. 도서, <화가가 사랑한 밤>에서 말이다.


 

화가가 사랑한 밤 평면 표지.jpg

 

 

<화가가 사랑한 밤>에서는 밤을 그린 화가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작가가 직접 '이 책의 결'을 언급하며 잘 어울린다고 언급한 고흐와 뭉크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밝은 화풍이 특징인 알폰스 무하, 빛의 인상을 그린 모네 등의 다양한 화가들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다. 특히, 단순히 화가 - 작품의 형식을 띄는 것이 아니라, 밤을 그려진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므로 미술 서적을 읽는 것이라기 보단 밤에, 밤과 어울리는 책을, 밤을 떠올리며 읽는 듯한 고요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필자는 유독 알폰스 무하의 <황야의 여인>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알고 있던 무하의 작품들은 화려하고, 밝고, 환상적이었다. 곡선을 주로 사용하고 장식적이면서도 탐미적인 스타일의 아르누보를 이끈 거장으로서의 무하가 남긴 작품들은 대부분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닮은 황금색의 색채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야의 여인>은 언뜻 보면 그림체만 비슷한 아예 다른 화가가 그려낸 작품같다. 칠흑같은 배경에 여인이 주저 앉아 있는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연함을 이끌어낼 만큼 처절해보인다. 그러나 여인의 뒤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달은, 무하가 러시아 소작농의 고통을 보며 제시하고 싶었던 희망을 나타내기에 여인을 뒤에서 감싸 안고 있다. 평소 생각했던 무하의 상업적인 아르누보풍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밤이기에 더욱 진솔하게 그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또한 장 베로의 <대화>는 밤이기에 더욱 화려하고 은밀한 남녀의 대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낮이었으면 이토록 묘한 흥분감이 없었을 대화가, 밤이라는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과 함께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밤은, 따라서, 마냥 어두운 것이 절대 아니라 더욱 피어오르는 화려함을 가진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화가가 사랑한 밤>에서 가장 인상 깊은 화가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그래도 역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인 고흐를 고르겠다. 최근 재개봉한 <러빙 빈센트> 영화를 관람하고 와서 그런지 고흐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느꼈을 생각들이 더욱 와닿는다.

 

고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게 명확한 것이라곤 없지만,

밤하늘의 별을 보면 항상 꿈을 꾸게 된다.

 

- 빈센트 반 고흐

 

 

불타오른 짧은 생을 살았던 고흐의 작품을 보며 우울했던 삶에 희망을 품은 거장이 한 명 있으니, 뭉크다. 뭉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우울함 속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았고, 그를 보며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똑같이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동명의 작품을 그려냈는데, 고흐가 바라본 밤하늘과 닮게도 푸른빛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그렸다. 고흐는 자신의 코발트 블루 색 밤하늘이 누군가에게 삶을 살아내는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알았을까.

 

<화가가 사랑한 밤>은 101개의 밤에 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고찰을 담아낸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바란다. 당신의 102번째 밤은 밝게 빛날 것이며 그것을 기다리겠노라고. 당신의 밤은 어떠한가. 그림자가 쉬어가는 시간인가, 화려함이 불타는 시간인가? 그 시간을, 화가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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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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