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은 둘을 위해 하나를 다지는 과정- 영화 사랑의 탐구

글 입력 2024.09.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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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난제 앞에서 내가 처음 내린 결론, 그리고 현재까지도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유사 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고개를 세운 명제가 있다. '사랑은 나와 네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 나를 나로, 너를 너로 굳혀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 명제 위에 붉은 엑스표를 그릴지도 모르겠다. 사랑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는 것이라는 묽은 진리에도 애써 도전장을 내밀고 싶어하는 우리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나의 명제에도 나름의 근거는 존재한다. 내밀한 개인적 경험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사랑이란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진부한 명제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서로로 인해 나의 나다움과 너의 너다움을 발굴하거나 새로 정의하게 되는 것, 그 즐거움에 빠져 서로가 온전한 한쪽으로서 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해야지만 폭력이 쉽사리 사랑의 탈을 쓰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인류가 과대평가해온 사랑이라는 단어가 미약하게나마 그 빛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연약한 기대가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꽤 당당히 포문을 열었지만, 나 역시 나의 이 정의를 끝없이 수정하고 보충해나가며 성장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정의를 엿보고 사고하고 토론하는 과정 역시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각자만의 사랑 사전을 써내리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시도는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여전히 이 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지금, 이 영화를 만났다. '가장 지적이고, 유쾌하고, 섹시한 로맨스'라는 카피라이팅으로 홍보되고 있는 <사랑의 탐구>는 그 제목부터 사랑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 것을 선언하는 듯하다.

 


메인 포스터.jpg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철학 강사로 일하는 소피아는 남편 자비에와 함께 지식 노동자인 지인들과 교류하며 안정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둘 사이에는 눈에 띄는 갈등도, 불안도 흐르지 않지만 되려 그 완벽한 균형 때문인지 새로운 설렘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취침 전,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열린 문을 통해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심지어 대화 내용도 남다르다. 저녁 모임에서 만난 여성이 얼마나 자비에의 이상형에 걸맞는지에 대해, 마치 평범한 친구 사이의 대화인 듯 가볍게 웃으며 나누는 그들 사이에는 기분 좋은, 그러나 조금은 지루한 안정감이 흐른다.

 

그러던 중, 소피아의 사랑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별장을 수리하기 위해 찾아온 인테리어 시공업자 실뱅에게서 짜릿한 사랑의 감각을 느낀 것이다. 지금껏 사랑의 가장 좋은 지점을 잊고 살았다는 듯, 소피아는 게걸스럽게 실뱅의 사랑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는 비밀스럽고도 야시시한 사랑의 고백들이 오간다. 소피아는 점점 더 실뱅을 원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나름의 갈등을 이어가다 끝내 자비에에게 실뱅의 존재를 고백하고 만다.

 

<사랑의 탐구>는 무엇보다 여성의 욕망에 집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소피아는 뻔뻔할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뿐 아니라, '나는 이 관계를 통해 어떠한 사랑을 얻고자 하는가'에 대해 끝없이 확인하는 듯하다. 성적인 욕구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충족까지 얻고 싶은 그녀는 여느 여성 주인공들이 그랬듯 '이것이 내 욕심에 불과한가?'라고 의심하고 끝내 희생적 사랑 쪽에 몸을 기울이는 법이 없다. 애초부터 두 욕망 모두 당연히 충족되어야 할 것, 당연한 나의 욕구로서 받아들인 후 그 완성을 위해 힘있게 나아갈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뻔뻔함, 변덕스러움 정도로 설명 가능한 소피아의 행동들을 미소를 머금으며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소피아를 철학 강사로 설정해 사랑의 철학적 의미를 강의하는 장면을 중간중간 삽입한 것이 이 영화를 보다 지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그 저명하다는 철학자들도 사랑 앞에서는 하릴없이 방황해왔음을 보여주며 관객은 자신에게 묻고 만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기꺼이 당신을 그 주체로 내어주겠느냐고.

 

영화에서 제시하는 주요한 구도 중 하나는 '에로스적 사랑 VS 플라토닉적 사랑'이다. 실뱅과 정신없이 에로스적 사랑의 달콤함에 빠지다가도 소피아는 자신이 그의 세계에 온전히 포함되기는 어려운 사람임을 실감하기도 한다. 둘만의 세상에서는 완벽했던 관계가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는 순간 어지러지는 상황이 연달아 발생하기 때문이다. 플라토닉적 사랑은 굶주림에 울부짖는다.

 

그러다 자비에와 조용한 눈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해당 장면에서 소피아는 아주 안정되어 보인다. 밤새 소리없이 내리다 많은 이들의 아침 창가를 하얗게 물들여주는 눈처럼, 소피아는 익숙하게 웃는다. 결국 무엇 하나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피아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피아는 편안함에 안주하기 보다 불구덩이 같은 사랑과 그가 제시하는 모험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을 수 있는 담대한 여성이다. 그가 보여주는 방황은 그렇기에 매혹적이고, 또 유쾌하다.

 

<사랑의 탐구>는 수많은 로맨스 영화나 소설에서 반복되어 왔던, 흔히 '여성의 욕망을 만족시킨다'고 일컬어져온 클리셰들을 현실적으로 뒤틀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실뱅은 소피아의 가족들 앞에서 기어코 결혼 반지를 내민다. 그러나 그날 소피아의 생일파티는 둘 모두에게 미묘한 밤을 선사했다. 실뱅은 자신과 소피아가 얼마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지 실감하며 묘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소피아는 그런 그를 신경쓴 탓인지 남들 앞에서 당당히 실뱅의 반지를 받는다.

 

그러나 파티가 파한 후, 둘만 남은 차 안에서 소피아는 어쩐지 복잡한 표정이다. 실뱅이 주유를 위해 차 밖으로 나갔을 때, 그는 차창 너머로 실뱅을 바라보다 반지를 빼버린다. 다른 사람들끼리 끌릴 수밖에 없다는 사랑의 로맨틱한 지점을 영원히 긍정하지도, 결혼이 관계를 완전히 할 것이라는 기대를 이어가지도 않는 현실적인 결정이다. 이는 무엇보다 소피아답다는 점에서 온전하다.

 

소피아는 어쩌면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즉, 영화의 끝에 가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철학자들의 뒤를 밟아 소피아만의 사랑을 정의했을지도 모른다. 소피아가 자비에와 실뱅 사이에서, 무엇보다 격렬하게 사랑하고 싶은 자신과 호수처럼 잔잔하고 싶은 자신 사이에서 갈등하며 얻은 답은 '사랑은 둘을 위해 하나를 다지는 과정'에 가깝지 않을까. 둘만으로 완벽해진 세상 속에서도 '나'가, '나의 선택'이, '나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벽의 발치에도 닿지 못할 테다. 소피아의 마지막 선택은 그를 방증하기에 후련하기까지 하다.


명품 제작진과 배우진으로 기대감을 올리고,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영화 <사랑의 탐구>는 새로운 로맨스 작품을 찾는 이들에게 만족스러운 선택지가 되어줄 것이다. 9월 18일 개봉하는 이 영화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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