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을 위한 삶의 제사 - 서울세계무용축제, 듀이 델 '봄의 제전' [공연]

글 입력 2024.09.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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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탄생'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필자의 머릿속에는 어미와 자식, 씨앗과 꽃, 해와 달, 자연과 대지 등 소위 아름답다고 취급되는 유려한 것들이 떠오른다. 때로는 고귀한 것으로, 때로는 엄숙한 것으로, 때로는 기쁨이 충만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봄 아니겠는가.


그러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발레곡 <봄의 제전>을 통해 그 편견을 깨고 굉장히 날 것의 격동적인 봄의 모습을 선보였다. 선사 시대를 배경으로 작곡한 이 곡은 <봄의 제전>이라는 제목과 같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제물로 처녀를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특히 타악기 외의 다른 관현악기도 타악기와 같이 사용하여 원시의 느낌을 더욱 강화해서, 우아할 것이라는 발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좋게 이야기하자면 자유롭게, 그보다 조금 진솔하게 이야기하자면 광기 어리게 공연을 진행한다.


이 파격적인 음악에 초연에 수많은 관람객이 야유를 보내고 극장을 나가기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유명한 이야기며 당시 보스턴 헤럴드지에는 <봄의 제전>에 대한 풍자시가 실릴 정도였다.

 

 

악마와도 같은 봄의 제전을 누가 만들었는가?

도대체 누구에게 이딴 것을 쓸 권리가 있단 말인가!

무력한 우리들의 귀를 거역하고 소음을 마구 내던질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더욱이 이것을 봄의 제전이라 하다니!

봄이란 무릇 기쁨으로 날개치고, 새들이 상쾌하게 재잘거리는 계절이 아닌가.

‘봄의 제전’을 쓴 인간은 (만약 나의 바람이 그른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교수형에 처해야 하리라!

 

- 1924년 보스턴 공연 이후 보스턴 헤럴드지에 실린 풍자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의 제전>은 우리가 외면하지만, 필히 존재하는 봄의 일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평소 꿈꾸는 이상적인 봄보다도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그렇기에 외면하고 싶어 하는 봄의 존재를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가 보기 좋게 꾸며내는 봄의 모습보다도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봄의 제전>이 세상으로부터 선보인 지 111년 후, 이탈리아 댄서 그룹 듀이 델은 <봄의 제전>을 '인간의 제사 행위'에서 벗어나 거대한 자연의 순환으로 재해석하여 우리 앞에 선보였다. <봄의 제전>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전에, 나는 사전에 새삼스럽게 그 핵심 단어들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네이버 사전상으로 나와 있는 단어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제전] 제사의 의식

[제사]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

[원시] 시작하는 처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 초연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원시의 제사란 자연을 향한 인간들의 경외심이었다. 그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에서 인간에게 자연이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신이 분노하자 땅이 갈라졌고, 신을 슬프게 하자 폭우가 내렸다.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무력하게 마주하는 인간은, 자신의 생과 사를 오가게 하는 이 상황을 납득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내일이란 자연이 기꺼이 하루 더 살게 해주는 자비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코 살아 나가는 인간들의 억척스러움, 그리고 비과학적인 행위를 통해서라도 하루를 더 살고 싶어 하는 생에 대한 갈망, 그로 인해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하는 봄을 맞이하는 그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어쩌면 '광기'가 느껴진다고도 볼 수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이 담긴 제사 행위를 통해 말이다.

 

 

 

듀이 델의 <봄의 제전>


 

듀이 델은 <봄의 제전>은 이로부터 사뭇 다른 시각에서 봄을 바라본다. 그들이 해석한 <봄의 제전>은 '자연을 향한 살기 위한 인간의 아첨'보다는 '모든 생명의 삶 그 자체'에 가까웠다.


그들의 첫 시작은 한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된다. 애벌레가 알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꿈틀대고, 그 보상으로 세상에 탄생하여 자연이 선사하는 공기를 마신다. 그런데 이러한 애벌레의 탄생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된다. 다른 생명체들은 원치 않았던 외부인의 탄생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며, 이러한 방어 행위를 통해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다.


듀이 델이 재해석한 <봄의 제전>에서 이야기되는 제사 행위는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과 사, 그리고 그 과정에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었다. 그들에게는 특별히 무언가 제사 도구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아주 하찮은 미물로 이야기되는 애벌레부터 고등 생물인 인간까지, 그 모든 존재가 '살기 위해' 행하는 것들이 바로 생명의 목숨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는, 지극히 원시적이면서도 필사적인 제사 행위였다.


그렇게 생명들이 부대끼며 살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 그렇다면 봄은 종말을 맞이하는가. 전혀 아니다. 사체는 퇴비가 되어 다른 생명력이 이 우주에 태어나는 힘이 되고, 그렇게 또 다른 봄이 탄생하게 된다.



Le Sacre du Printemps by Lorenza Daverio.jpg

 

 

격동적이고, 거대하며, 파격적이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봄의 제전>은 결국 근본적인 '봄'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꽃의 향기만 맡을 때 그 아래에서 벌어지던 치열한 제사 행위들을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애정이 가고, 그렇기에 더욱 공연에 빠져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벗어난다는 것이야말로 모순 아닐까. 우리의 삶은 <봄의 제전>의 연장선이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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