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치사한 게 정이란다 눈감은 게 마음이란다

글 입력 2024.09.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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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예전에 나온 드라마 한 편을 봤다.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한 드라마는 아니고, 유튜브를 통해 송출한 웹드라마인 듯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과거 학교 폭력을 당한 적 있지만, 그것을 숨기고 싶은 주인공의 이야기. 혼자 꼭 숨기고는 말하고 있지 않으니 당연히 갈등과 오해가 생기고, 그걸 풀어나가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줄거리를 덧붙이면 주인공의 과거를 누군가 들추고 조작하려 하며 사건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인공에게는 과거 친했던 친구 하나가 있었고, 멀어졌다가 그를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가깝게 지낼 일이 생긴다. 주인공과 악역 사이 갈등이 일어나며 그 사이에 절친했던 친구가 끼는데, 주인공과 절친의 대화 속에 이런 대사가 있다.

 

  
끝까지 모른 척을 했었어야지. (...) 진짜 나를 위해서 그랬다면 끝까지 모른 척을 했었어야지. 나를 위한답시고 걔를 만나고 있었을 게 아니라 차라리 나한테 왜 말을 안 해 줬냐고 욕하고 따져서 물었었어야지.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은 어려운 마음이었다. 내가 밝히지 않는 부분에 기꺼이 모른 척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살다 보면 종종 발생한다. '들키고 싶은 비밀' 정도 인걸까. 대신 모두에게 들키는 건 안 되고, 망신적으로 공개되고 싶지도 않고, 후련함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들킴이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를 보며 많은 고민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 일에 대해 물어야 할까, 입을 스스로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어느 쪽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렇다. 대체로는 말할 때까지 모른 척 하고 기다리는 방법을 택하기는 했다만 결과를 놓고 보면 직접 물어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중학교 때 어느 친구가 알려 준 시가 하나 생각난다. 나태주 시인의 <패랭이꽃빛>이라는 시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치사한 게 정이란다 눈감은 게 마음이란다
 

 

당시에 이걸 보면서 누군가에게 치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정 때문에 그런 것이고, 어떤 좋은 마음이 있으니까 눈감아주는구나 라고 시를 읽은 기억이 난다. (시가 짧기도 하고 시인이 이에 대해 말한 바가 없어 시인의 해석은 아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친구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라면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주인공에게 알려 주면서 도와줄 것이 있는지 물어봤을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신경쓰이는 게 있다면 그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것.

 

사실 최근에도 물어볼까, 모른 척하고 있을까 사이에서 고민했던 일이 하나 있고, 아직까지 고민 중에 있다. 그는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랄까. 돕거나 확실해지고 싶은 마음과 그를 위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흔들리고 있다.

 

치사한 정에 더 무게를 둘지, 눈감는 마음에 무게를 둘지는 정말 어려운 주제인 것 같다.

 

 

[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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