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디 시카고, 회화를 통해 다시보다 [미술/전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주디 시카고 개인전 《Revelations》 리뷰
글 입력 2024.09.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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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초에 막을 내린 주디 시카고 전시를 회고하며 글을 쓴다.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렸던 《Revelations》 전시는 주디 시카고의 60년에 걸친 작업을 ‘드로잉’을 중심으로 살펴본 전시였다. 런던에서 열린 작가의 가장 큰 개인전이라고 소개하고는 있지만, 서펜타인 갤러리가 큰 규모의 전시장은 아닌 만큼, 여태껏 이정도 규모의 전시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했다. 하지만 컴팩트한 공간 덕분에 초기부터 현재까지 시카고의 작업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주디 시카고는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소개된다. 그중에서도〈디너 파티(The Dinner Party)〉(1974-79) 라는 대형 설치작품이 대표작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어, 작가의 평면 작업은 대중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일생에 걸친 평면의 실험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작가의 일관된 ‘색’에 대한 관심과 실험, 그리고 ‘평면의 확장’이라는 관점으로 시카고의 작업을 다시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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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nner Party, 1974–79. Brooklyn Museum; Gift of the Elizabeth A. Sackler Foundation. 

© Judy Chicago. (Photo: Donald Woodman)


 

전시는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종이 작업으로 시작한다.

 

미니멀리즘이 번성하던 60년대, 주디 시카고도 상당수의 미니멀리즘/옵아트적인 작품을 남겼지만 오랜 기간 평가절하되어 왔다. 이 시기 동안에 시카고는 색을 통해 형태, 주제, 감정을 전달하고자 색에 대한 실험을 거듭했다.

 

종이에 색연필 작품으로 시작해 80년대 그림자 드로잉(Shadow drawings)과 텍스타일(The Birth Project) 시리즈를 거쳐 다시 대형 색연필 작업으로 돌아오는 구성의 전시를 통해 초기의 색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기초가 되어 여러 매체를 거치면서도 계속되는 색의 활용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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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Ladies Transforming Themselves into Butterflies, 1973, sprayed acrylic and pen on canvas, 

《Revelations》 전시

 

 

텍스타일과 자수는 여성적이라고 폄하되어 왔던 매체의 전유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그 이전과 이후의 작업과 나란히 놓고 감상했을 때 비로소 텍스타일 또한 회화의 연장으로, 도상과 색의 실험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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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of the World: Embroidery, 1984, 《Revelations》 전시

 

 

신화적 도상들이 가득한 드로잉, 텍스타일, 콜라주 작업들은 낸시 스페로, 키키 스미스 등의 다른 여성 작가들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여성의 자궁으로부터 화산이 폭발하듯 마그마처럼 쏟아지는 생명체들은 강렬한 시각적 잔상을 남겼다. 반추상적으로 그려진 여성의 몸은 마치 매직아이처럼 땅의 지형처럼 보이기도, 산의 등고선처럼 보이기도 했다가 다시 신체 형상으로 남는다. 이 세상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근원이며 자연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선언적인 이미지였다.


전시 제목 'Revelations'는 그녀가 70년대 <디너 파티>를 기획하면서 작성했던 원고에서 가져왔다. 오랜 기간 역사 속 삭제되어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복구함으로써 인간사의 근본적 “다시 말하기(retelling)”를 시도한다. 여신 숭배와 여성사(史)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바탕으로 인간 역사의 서사를 다시 세운다.

 

남성성과 권력, 탄생과 창조, 여성성과 기후 위기의 주제를 아우르며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문제를 짚어내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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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eginning, from Birth Project, 1982, 《Revelations》 전시

 

 

실험을 거듭하고, 그러나 그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 속에서 하나로 꿰어지는 중심을 가진 작가들의 이름이 필자가 좋아하는 작가 목록을 채운다. 이번 전시를 보고 주디 시카고의 이름을 적었다. 자신만의 언어가 분명하고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다. 여성중심적 시각, 근본적인 질문과 급진적인 작업 태도. 그것을 잊을 수 없이 강렬한 이미지로 전달한다.


가부장적인 전통을 거부하고자 결혼 후의 성을 버리고 본인의 탄생지명을 새로운 성(氏)으로 삼은 주디 시카고의 전시를 보며 또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작품과 전시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예술가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예술을 보고 자란 개인이 모인 사회 공동체는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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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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