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충실하게 기능하는 몸 - 서울세계무용축제, 일렁일렁&거대구조

글 입력 2024.09.14 14: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SIDance2024포스터.jpg


 

지난 9월 7일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SIDANCE)에 방문했다.

 

SIDANCE는 시댄스는 매년 가을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 등에서 전 세계 최정상급 무용단 및 국내 무용단의 초청공연, 국가 간 합작 프로젝트 및 다양한 부대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문화예술행사이다. 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댄스있송-일렁일렁과 거대구조 두 가지 공연을 관람했다. 무용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두 가지 작품을 소개한다.

 

 

 

댄스있송 - 일렁일렁 (성승정)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든 잔에는 물이 넘칠 듯 말 듯 넘실거리고 춤을 추다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잔을 놓으면 더 자유로이 더 격렬하게 춤을 출 수 있겠지만 그 무게가 마치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안무가는 잔을 놓지 않는다.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혹은 잔과 함께 춤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뒤로 군무 형태의 안무가 합쳐진다. 춤의 형태는 잔 속 물 같기도 하고 운명을 압도하는 무언가 같기도 하다.

 

놓을 수 없는 잔과 함께 추는 춤은 형벌이자 하나의 쇼이다. 인물의 춤이 멈춰도 군무는 계속된다. 그러다 물은 완전히 쏟아지고 운명에 잔을 뺏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시 춤춘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면 다시 잔은 채워져 있으니. 군중의 모습을 한 운명이 반복하는 안무 역시 묘하게 느껴진다. 물을 찰랑이는 개인에게는 야속한 운명이지만 관객의 시야에서는 운명이 그를 에워싸며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앞뒤 다른 운명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댄스 있송은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도입된 프로그램이다.  그 중 안무가 성승정이 지휘한 작품 일렁일렁은 운명에 움직여지고 무너지면서도 계속 춤추는 개인을 형상화한다. 단체 군무와 함께 연극 같은 개인의 모습이 돋보이면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매력을 전달한다. 운명은 우리의 선택에 상관없이 다가오고 인간이 계속 무너지고 복종하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그 모습에 왠지 위로를 받는다.

 

물을 쏟아져도 잔이 깨진 건 아니기에 춤은 계속될 것이다. 영원히.

 

 

성승정_안무가프로필1.jpg


 

 

거대구조 (사라 발칭어&이사야 윌슨)


 

아무런 말 없이 공연이 시작된다. 관객들의 옆으로 안무가 사라 발칭어와 이사야 윌슨이 입장하자 인터미션 후 잠시 어수선했던 공기가 잠잠해진다. 아무런 세팅이 없는 홀에서 무용수들의 동작들은 시선을 단숨에 압도한다. 음악도 없이 오직 신체의 움직임에서만 나는 소리가 음악이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무용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관객 앞에 그려진다. 집착적일 정도로 유연한 신체를 활용해 안무를 수행하지만 그로테스크하거나 섹슈얼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몸을 보며 로봇같이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의 것처럼 느껴진다. 일상적인 옷을 입고 그러지 않은 춤을 꺾고 기대며 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움직임, 숨소리만이 공간을 가득하게 채운다.

 

무대에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아무런 장치 없이 오직 신체로만 표현하는 그 모습을 경이로운 채로 바라보게 된다. 숨소리와 발소리, 스치는 피부 소리로 만드는 비트는 이미 음악처럼 들린다.

 

약 30분 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장내에는 박수가 가득했다. 이미 공연 후반 안무가 이어질 때부터 간헐적으로 환호와 박수가 있을 정도로 이 고요한 무대가 주는 에너지를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무용을 완성하는 건 무대 장치와 효과, 의상, 음악 등 종합적인 요소라고 생각해 왔지만, 거대구조 공연을 보고 우리의 모든 움직임은 예상을 벗어나는 매 순간, 예술로 승화될 수 있겠다는 신선함을 맛봤다.

 

청바지와 티셔츠만 입은 채 춤을 추던 그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메인 by Bohumil KOSTOHRYZ 0025.jpg


 

충실하게 기능하는 몸을 보며 상상한다. 우리의 몸은 일상을 벗어났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따라 해본다. 전혀 도달할 수 없지만 그 성실하고 충실한 몸. 그 몸들이 움직이며 만드는 예술을 즐겁게 향유할 시간이었다.

 

공연을 보며 몸의 기능이 얼마나 다양한지 가늠했다. 살아가고 놀고 웃고 울고 춤추는 몸에 대해서. 나는 몸을 잘 알지 못했고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실험적이고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용과의 거리감은 부쩍 가까워졌다. 앞으로의 현대무용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며 춤을 춘 적 없는 나의 몸에도 궁금증이 더해진다.

 

우리 다 함께 움직여보는 건 어떨까. 아주 색다르게.

 

 

 

에디터 노현정.jpg

 

 

[노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