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삼순이라는 이름에 얽힌 슬픈 전설을 아시나요 [드라마]

'삼순이'라는 이름을 긍정하는 과정
글 입력 2024.09.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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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은 본디 주인장의 이름 석 자를 내건다고 했던가. 8부작 감독판으로 돌아온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생각했다. 1화부터 대사가 귀에 착착 감기는 것이 대사 맛집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가족과 함께 <내 이름은 김삼순>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감독판을 감상하기 전부터 <내 이름은 김삼순>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키워드와 대사가 있다. 우선은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로 시작하는 OST,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며 양푼에 비빔밥을 맛깔스럽게 비벼 먹는 삼순, 한라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외치는 사랑 고백, 사랑에 상처받지 않게 가슴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는 삼순이의 대사, 그리고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 구절.

 

기존의 16부작에서 8부작으로 돌아온 감독판을 보면서 기억과 다른 부분도, 2024년에 여전히 유효한 지점들도 많았다.

 

우선 '노처녀'와 '통통하다'는 키워드로 극 중에서 삼순이 캐릭터에 대해 언급되는 부분이 현저히 줄었다. 그리고 현빈이 연기한 현진헌 캐릭터가 폭력성을 보이는 장면이 대폭 편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테로 로맨스에서 남자 주인공의 조건으로 '안전'이 무엇보다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현진헌 캐릭터는 여전히 문제적인 행동을 보이긴 한다. 이야기의 흐름 상 남아있는 부분 중에는 화가 났을 때 삼순과 희진 앞에서 물건을 때려 부수거나 고함을 치는 장면이 있다. 진헌이 던진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에 움츠러드는 희진을 보며 눈살이 찌푸려지고, 요새 같았으면 당신은 남주 탈락입니다, 경찰을 불러야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도에 방영된 드라마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하지만 2024년에 여전히 낡지 않은 지점들 역시 많았다. 무엇보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 드라마가 중요하게 다루는 지점이 '싸가지' 없지만 사연 많고 부자인데다 잘생긴 현진헌과의 성공적인 사랑이 아닌, 삼순이가 자신의 이름과 모습을 긍정하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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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라는 이름이 왜 좋은가


 

삼순은 자신의 이름을 싫어한다. 살면서 친구들에게 이름으로 놀림도 많이 받았고, 언니들의 이름과 다르게 세련된 맛이 없는 이름이라 싫어한다. 그렇다고 삼순이라는 이름이 아니기만 하면 아무 이름이나 좋은 것은 아니다. 삼순은 진헌의 레스토랑에서 파티셰로 일하는 조건으로 자신을 '희진'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이는 공교롭게도 진헌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가 버린 전 애인의 이름과 같다. 진헌과 실랑이 끝에 결국 희진으로 불리게 된 삼순은 후에 왜 희진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는지 밝힌다.

 

셋째딸인 삼순은 언니들이 피아노 학원에 다닐 동안 자신도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서 학원에 따라가서 서성인다. 세 딸을 모두 피아노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어서 삼순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원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어느 날, 언니들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그런 삼순을 안쓰럽게 여겼는지 젓가락 행진곡을 가르쳐준다. 그 선생님의 이름이 바로 희진이다. 미니스커트에 롱부츠가 잘 어울리는 그 피아노 선생님을 떠올리며 삼순은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삼순이 이런 고백을 하는 시점에 시청자들은 이미 삼순이가 상처받았거나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다정한 인물임을 안다. 레스토랑에서 남편의 외도 현장을 발견하고 통곡하는 여성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위로하고, 진헌을 만나러 레스토랑 브레이크 타임에 찾아온 낯선 사람인 희진에게 케이크와 커피를 건네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되었던 희진을 향한 원망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진헌에게 '아직 사랑하잖아'라며 희진을 붙잡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삼순은 진헌이 신경 쓰임에도, 자신보다 그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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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후반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이름이 무엇인지 더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이름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좋다고 해주는 사람도 등장했으며 과거 실연의 아픔도 극복했다. 게다가 삼순이라는 이름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몇 번이고 정답게 불러주던 이름이다.

 

삼순은 '삼순이라는 이름에 얽힌 슬픈 전설을 아시나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개명 신청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개명을 취소한다. '희진'으로 개명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진헌과의 사랑에서도 누군가의 대체가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이 많고 거침없이 행동하면서 가끔 엽기적이며, 사랑의 아픔에 눈물도 흘리지만, 파티셰로서 자신의 꿈을 관철해 나가는 것. 지나온 모든 희로애락의 순간과 모습들. 그것이 '삼순이'라는 이름 하나에 담겨 있다.


마지막 화에 나오는 삼순의 내레이션을 통해 시청자들은 알 수 있다. 삼순과 진헌의 사랑도 끝날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고. 연인의 배신이라는 동병상련으로 시작해서 계약 연애라는 과정으로 무르익은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난다면 분명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두 쪽 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끝을 미리 두려워하며 현재를 망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 아니라 사랑에 상처받아도 계속 사랑하는 힘을 간직한 삼순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삼순이 자신의 이름을 긍정하기까지는 진헌의 사랑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지만, 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건 삼순 본인이다. 자신의 이름과 화해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삼순 본인이다.

 

여자 주인공의 투박한 이름 석자를 내걸고 그 이름을 긍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은 2024년도의 시청자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사랑에 울고 웃는 삼순의 모습은 어찌나 사랑스럽고 공감가는지.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삼순이라는 이름이 그 어떤 이름보다도 멋지고 사랑스럽게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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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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