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이징도 예술합니다 - 798 예술구(1) [공간]

글 입력 2024.09.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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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권력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 기약은 있어도 명백한 '거주함' 앞에서, 매번 휘둘렸던 시간을 이젠 내가 어찌해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4개월간의 어학연수 생활. 유치원생들과 나란히 하교를 한 후 남는 시간들은 베이징의 미술관으로 흘러들어간다. 나의 도시 서울에서는 전시회 나들이를 과업 취급하더니 이제서야 예술을 찾는 이중적 면모에 자조하지만, 그 입꼬리가 끝내 호선을 그리기를 바라며 첫 번째 행선지인 798 예술구로 향해보았다.

 

양쪽으로 즐비한 갤러리와 노천카페,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화방.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허세 섞인 느긋함과 결국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라는 조급함 사이, 생경한 템포의 걸음을 걷는다. 눈에 띄는 갤러리 문은 어디든 두드려보고, 공간과 작품을 눈에 담고, 팸플릿을 수집해 돌아와 온통 모르는 글자뿐인 전시 서문을 번역하는데 들인 시간은 평소 같았음 형편에 맞지 않는 사치였겠으나, 시한부 권력자 인생에서는 '나를 위한 선물'쯤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을 듯하다.

 

난 저명한 예술가들의 나라 프랑스도, 자본과 현대미술로 대표되는 미국도 가본적 없다. 이제 겨우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본 참이지만, 베이징 또한 예술 여행을 떠나와도 좋을 도시라는 증거를 모으고 또 이렇게 글로 펴내보려 한다.

 

 

 

베이징 예술의 중심, 798 예술구(798艺术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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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예술구는 베이징시 차오양구 다산쯔 지역에 위치한 예술 거리다. 이곳은 원래 구소련의 지원을 통해 지어진 무기공장 밀집 지대로, 신중국 공업화 역사를 써내려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더 이상 무기생산의 필요가 없어지자 공장들은 하나 둘 철수하였고 706, 707, 718, 751, 798 등의 일부 공장이 남아 전자공업제품의 생산 공장이 조성될 계획이었다. ('798’이라는 숫자 역시718 연합 공장 중 ‘798단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던 와중 1995년, 북경중앙미술학원(CAFA) 조소과 교수가 706호 공장을 임대하여 작업장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며 이곳 다산쯔에 새로운 가능성이 싹 튼다. 이후 북경중국미술학원 교수 및 디자이너, 출판업자, 음악가 등이 임대료가 싸고 넓은 798거리에 속속들이 모여들었으며, 2001년 화가 황루이(黃銳)가 ‘재생 프로젝트 베이징 798 예술구’라는 전시를 개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훗날 그는 '다산쯔798' 총책임자를 역임한다.) 더불어 미국 텍사스 출신의 로버트 버넬의 서점과 출판사 설립, 많은 예술가들의 특색있는 공간 조성 및 다양한 예술행사 개최 등에 힘입어 798 공업단지는 현대미술의 요충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2006년 중국 정부는 798예술구를 최초 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하였으며, 이 지역은 "창의지구(創意地區), 문화명원(文化名園)" 의 슬로건과 함께 베이징 예술의 심장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비기간 동안 이곳을 새로운 예술 아이콘으로 등극시키고자 하는 시정부의 야욕아래, 다시 한번 대대적인 지원과 정비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뉴욕의 소호, 서울의 성수동을 꼽고는 한다. 모두 버려진 공장지대와 싼 임대료, 예술가들의 방문을 근간으로 재탄생했고 이에 더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기도 한 곳이다.

 

성수동 또한 근대 산업의 발전과 함께 1960년대부터 공업 단지로 조성된 곳이었다. 한강을 접하고 있어 강남과도 가까웠고, 이전 시대에 목축을 하던 넓은 대지는 공업 단지를 조성하는데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제조업이 점차 쇠퇴해 가면서 버려진 공장들이 생겨났고, 2000년대 들어 성수동은 낡은 공장 단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때 예술가들이 '장소의 역사적 특색과 건축적 특징을 지우지 않고' 성수동 공업 단지 곳곳에 버려진 공장과 빈 창고에 터전을 마련한 것이 지금의 성수를 있게 했다. 그야 말로 '신의 한 수'다. 성수동을 재건한 젊은 예술가들의 자취는 조금 흐릿해진 감이 있지만, 지금의 성수동은 젊음이 넘쳐나는 팝업스토어의 성지로 회자될 만큼 '낡은'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작별을 고했다.

 

조성된 배경이 유사하다고 해서 이들의 장소성이 일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의 성수가 확실히 더 상업적이고 특정 세대 중점적이고 불변한다. 그에 반해 이곳 798예술구는 젊은 세대와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고루 있으며, 길어야 반기마다 기존의 전시는 사라지고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아무쪼록 비슷한 배경에서 전혀 다른 정취를 가지게 된 공간들은 항상 흥미롭다.

 

 

 

798 예술구를 즐기는 팁


 

중의적인 의미로서 '가는 날이 장날'일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798예술구는 언제라도 색다른 모습으로 당신을 반겨 줄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날씨나 인파에 크게 구애 받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맑은 날, 비오는 날의 나름의 운치가 있을 것이며 무더운 날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갤러리를 피난처로 삼고, 선선한 가을철에는 노천 카페에 앉아 통유리창 너머의 그림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티켓을 구매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관심있는 갤러리, 작가의 전시를 한 두개 정도는 미리 구매해서 보아도 나쁠 건 없다. 주제 넘게 원하는 건, 어느 한 전시를 봄으로 이곳에 온 목적을 모두 달성한 것으로 여기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곳은 정처없음을 즐기기에 매우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다. 발길이 닿는대로 걷다가 문이 열린 곳은 어디라도 들어가보고, 닫힌 곳은 두드려 보는 묘미가 쏠쏠하다. 대부분 갤러리들은 무료로 개방하거나, 10위안에서 30위안 사이(한화 2,000원~6000원 상당)로 현장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으니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어느 곳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되도록 '혼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잠시간 언어와 동떨어져 있고자 함이다. 작은 갤러리들은 유수의 작가들을 모아둔 특별전과 달리 작품마다 설명을 친절히 적어놓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있다한들 중국어로 쓰여 있어 완벽히 이해하기도 힘들다. 오히려 텍스트가 사라진 자리를 비워두니, 작품을 멍 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작가의 유명세도 작품의 메시지도 알 수 없지만 시선을 빼앗기고 마는,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직접 방문한 5개의 갤러리와 현재 개최되고 있는 전시 설명이 후속편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임지영 (1).jpg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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