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극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해방시켰다 – 도서 ‘해방자들’

우리는 어떻게 그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
글 입력 2024.09.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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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이 책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가족이기도, 연인이기도, 어떤 이름을 붙이지 못하더라도 그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역사 속 전쟁과 점령, 분열 등으로 얼룩진 어두운 상흔의 시대를 살았다. 이 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한국을 떠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로망을 지니고 있었다. 늘 보던 풍경, 항상 듣는 언어,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떠나 새로운 자극들을 만나면 보다 넓은 세계를 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엘리스처럼, 마치 동화 속에 존재하는 모험과 신비의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엘리스가 기나긴 여정 끝에 집으로 돌아왔듯이, 아무리 넓고 높게 가지를 치려 애써도 뿌리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나무처럼,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은 나에게 안정감을 느끼는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도전보다는 안정과 익숙함을 찾게 되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지금은 알을 낳으러 고향을 찾는 연어처럼 가장 한국스러운 것에 취향을 두고,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그렇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생활 터전을 마련했음에도 여전히 조국의 상황으로부터 고통받으며, 국가가 겪는 역사적 상흔들이 각 개인들에게도 커다란 흉터로 남게 됨에 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의 흐름은 바뀌어도 강바닥은 그대로였다. 강바닥이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p.34)


 

성호가 인숙에게 언젠가 한 말처럼, 비극으로 얼룩졌던 역사는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호수처럼 절망의 강바닥을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물줄기는 흘러흘러 바다를 만나는 것과 같이 결국 해방은 찾아 왔고, 언제 그랬냐는 듯 국가는 얼룩을 씻어낸 맑은 강줄기처럼 희망을 맞은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등장 인물들, 나아가 국가가 그어 놓은 경계 안에 살아온 우리들은 해방자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 해방자들 속 이야기는 희망의 편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제목과 다르게 국가적 비극이 개인에게 남긴 흉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또 그 흉터를 가지고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한(恨)스러운 생활을 낱낱이 고발한다.


 

“어떤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싫어하기는 힘들죠. 그것도 정성이에요. 어머님 마음도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을 걸요.”

 

“싫어 했던 게 아니다. 네가 필요했던 거지.”

 

(p.152)

 

 

그럼에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삶은 이어지고, 그 속에서 각 개인은 오랜 시간을 들이더라도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작은 화합과 이해에 있음을 깨닫게 되는 듯하다. 서로를 향한 적개심과 공격을 서슴지 않았음에도 결국은 서로의 존재가 필요했음을, 원망하는 마음 뒤편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숨겨두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던 인숙과 후란의 관계처럼 말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신념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경계를 짓고 때로는 대립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적 위기 앞에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일을 응당 해야할 일로 여겼던 인숙, 개인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성호는 결혼을 했음에도 다른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엇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후란의 죽음 이후 성호와 인숙의 대립과 그로 인해 위태로웠던 가정은 안정과 치유를 맞이한다. 증오 밖에 없는 줄 알았던 관계 뒷면에 서로를 의지했던 마음이 숨어 있었듯, 다시는 과거의 애틋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에도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서로를 향한 끌림을 당해낼 수 없었던 그들의 첫 시작과 같던 희망이 찾아왔던 것이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그리고 같은 역사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은 대립하고, 날을 세우고, 공격하고, 극단적으로는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더라도 고통과 비극으로 얼룩진 그 시절을 함께 견디고 지나왔기에 서로가 있어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그 기억들로부터 서로를 해방시켜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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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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